‘조용한 살인자’ 심부전, 급성기 지나도 안심할 수 없어
의료 전문가들은 심부전을 단순한 노화 현상이 아닌, 관상동맥질환·심근경색·고혈압 등 여러 심장 질환이 누적돼 나타나는 ‘결과 질환’으로 본다. 김범성 건국대병원 심장혈관내과 교수는 “심장은 손상이 누적되면 점점 기능을 잃는다. 이로 인해 전신에 산소와 영양분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는 상태가 심부전”이라며, “특히 관상동맥질환은 심부전으로 이어지는 주요 원인이며, 방치할 경우 심장성 쇼크 등 중증 합병증으로 악화될 수 있어 초기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심부전은 종종 관상동맥의 혈류 장애로부터 시작된다. 주요 혈관이 좁아지거나 막히면 심장 근육이 손상되고, 이로 인해 심장의 펌프 기능이 떨어진다.
심장혈관내과 김 교수는 “이렇게 손상된 상태가 반복되면 심부전으로 진행하게 된다”며 “심장이 혈액을 제대로 내보내지 못하면 전신 장기의 기능도 서서히 무너진다. 급성기에는 심장성 쇼크로 악화돼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심장성 쇼크는 심근경색 이후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 중 생존율이 가장 낮은 위험 요소로 꼽힌다.
◇ 급성기 넘겼다고 안심은 금물
많은 이들이 협심증이나 심근경색 같은 급성기를 무사히 넘기면 괜찮아졌다고 생각하지만, 문제는 그다음부터 시작된다.
손상된 심장 근육은 쉽게 회복되지 않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숨이 차고 쉽게 피로해지는 등 심부전 증상이 서서히 나타날 수 있다.
김 교수는 “심장이 보내는 미세한 이상 신호를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하다”며 “특히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흡연 등 심장 질환 위험 인자가 있는 경우에는 정기적인 심장 기능 검사를 권한다”고 말했다.
심부전은 진행 속도가 느리고 증상이 모호해 흔히 노화나 단순한 체력 저하로 오인되기 쉽다. 그러나 다리 부종, 체중 급증, 운동 시 호흡곤란 같은 증상은 초기 경고 신호일 수 있어 주의 깊은 관찰이 필요하다.

심부전은 단순히 심장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신장, 폐, 간 등 전신 장기에 부담을 주며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린다. 나이가 많을수록 질환 관리도 복잡해진다.
식이 조절, 수분 섭취 제한, 규칙적인 운동과 함께 여러 약제를 병행해야 하므로 자가 관리 역량도 중요하다.
김 교수는 “심부전 환자 대다수는 고혈압, 당뇨병, 관상동맥질환 등을 함께 앓고 있어, 한 가지 치료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며 “심장내과뿐 아니라 내분비내과, 신장내과, 영양팀 등과 협업하는 다학제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는 베타차단제, RAS 억제제, 이뇨제 등 기존 치료 외에도 생존율을 높이는 다양한 신약이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약물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식단과 체중 관리, 유산소 운동 등 일상 속 실천이 함께 이뤄져야 효과가 있다.
◇ 심장을 지키는 첫걸음은 ‘생활 습관과 조기 진단’
심부전 예방의 핵심은 위험 요인을 조기에 발견하고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특히 50세 이상이거나,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이 있는 사람은 가슴 통증, 숨 가쁨, 이유 없는 피로감 등 사소한 변화에도 민감해야 한다.
김 교수는 “관상동맥이 막히기 시작하는 초기 단계에서부터 치료하고, 금연·저염식·규칙적인 운동 등 생활 습관을 함께 개선하면 심부전으로의 진행을 막을 수 있다”며, “조기 진단은 예후를 바꾸는 결정적인 요소”라고 강조했다.
심부전은 뚜렷한 증상이 없이 서서히 진행되지만, 미리 알고 대비하면 충분히 조절 가능한 질환이다. 지금의 작은 증상이 내일의 위험이 되지 않도록, 심장의 변화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임혜정 하이뉴스(Hinews)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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