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내려놓고 전력으로 질주…HB호반지주 출범 앞두고 포트폴리오 재편 가속
‘돈줄’ 대한전선 앞세워 제조·인프라의 축 강화, 호반건설은 정비 전담체제 준비

핵심 줄기는 ‘호반산업’의 물적분할이다. 호반그룹은 건축·토목 부문을 떼어내고, 존속법인을 ‘HB호반지주’로 바꿔 지주사로 전환한다. 신설 호반산업은 시공·토목을 전담하는 완전자회사(지주 100%)가 된다. 공정거래법상 지주요건(자회사 주식가액 비중·자산총액 등)이 이미 작동 가능한 상태에서, 법·재무 프레임을 ‘지주+사업자’ 이중 구조로 재배열하는 셈이다.
지주사 전환 의미는 ‘돈길’ 바꾸기
지주 전환의 배경에는 대한전선이 있다. 2021년 편입 이후 해저케이블·송배전 턴키에서 존재감을 키우며 그룹 실적의 중심으로 올라탔다. 연결 기준으로 대한전선 비중이 지주 매출의 40%대 안팎까지 커졌고, 회사채 수요예측 등 자금시장 접근성도 개선됐다.
반대로 호반산업의 분양 매출과 자체공사 잔액은 빠르게 줄었다. 2022년 1조4,556억 원이던 분양 매출이 2023년 3,636억 원으로 감소했고, 자체공사 계약잔액은 7,403억 원에서 116억 원까지 내려앉았다. 같은 기간 전기공사 계약잔액은 1,946억→3,556억 원으로 증가했다. 숫자만 놓고 봐도, 주택에서 인프라·제조로 무게가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HB호반지주는 그룹의 자본조달 구조를 새로 설계한다. 건설이라는 사이클 민감 산업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제조·전력 인프라라는 방어력·성장력을 겸비한 축을 앞세워 밸류에이션 프레임을 바꾸겠다는 취지다. 상장·채권·ABL 등을 아우르는 멀티 채널 조달이 가능해지고, 대한전선 레퍼런스를 활용한 저금리 장기 자금 접근성도 넓어진다. 지주는 ‘현금창출원’으로 작동하고, 각 사업회사는 현금흐름을 자립화한다. 변동성은 지주단에서 흡수·재배치한다.
M&A 플랫폼으로의 진화도 거론된다. 대한전선의 가치사슬—케이블 소재, 시험·인증, 전력망 디지털 장비—를 볼트온(Bolt-on, 인수기업이 자신의 핵심 사업과 연관된 중소기업을 추가로 인수해 사업을 확장하고 시너지를 창출하는 인수합병 전략)으로 추가하면, 송·변·배전 중심의 전력 인프라 생태계가 커진다. 해상풍력·HV 전력망, 마이크로그리드 등 ‘전력망 업그레이드’ 투자 사이클에 맞춰 전략적 인수를 이어갈 토대다.
건설 재배치 ‘서울 정비’를 전면으로
건설 축은 속도를 바꾼다. 호반건설은 자체 분양 침체와 지방 미분양 리스크 속에서 서울 정비사업으로 방향타를 돌렸다. 광진구 가로주택정비사업 수주를 시작으로, ‘서울 사업소’ 단독 편제와 정비 전담 조직 구성이 유력하다. 전략은 투 트랙이다. 중·소 규모 직접 수주로 레퍼런스를 촘촘히 쌓고, 대형지는 컨소시엄으로 리스크를 분산한다.
하지만 정비사업은 난이도가 높다. 조합 의사결정, 보증·PF, 소송·이주 등 비정형 리스크가 수시로 튄다. 호반의 해법은 ‘비금융 리스크의 금융화’다. 보험·보증·초기 PF 구조로 변수를 흡수하고, PM 조직이 공정·원가·분쟁을 수치화해 대체안을 신속히 제시한다. 정책·규제의 변동에 대응할 상시 소통 채널(정부·지자체·금융)을 유지하는 것도 이유다. 서울·수도권 공급부족과 규제완화 흐름이 맞물리는 지금, 정비 레퍼런스의 ‘속도와 누적’이 브랜드 가치를 좌우한다.
막내 지주, 형 건설, 누나 비건설
호반산업은 토목·제조 비중 확대로 주택 영역을 상당폭 비워냈다. 모태가 된 울트라건설의 토목 역량과 TBM(터널보링머신) 자회사(현 호반TBM) 흡수로 인프라 라인이 강화되면서다.
반면 호반건설은 분양·공사 수익이 매출의 절대 다수(2023년 기준 공사 9,108억, 분양 1조1,476억)를 차지하며 건설 본령을 유지한다. 호반프라퍼티는 리조트·임대 외에 비건설 매출(예: 삼성금거래소 매출 1조7,135억, 2023년) 비중이 크다. 이처럼 각 계열사의 캐시엔진이 달라진 것이 분권·계열 분리 관측을 키우는 배경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계열 분리를 가정하면 친족 독립경영 요건(비상장사 상호 보유지분 15% 미만 등), 교차지분 정리, 내부거래 공개화·시장가 전환, 공용 IT·구매·브랜드·공유서비스의 분리 코스트 같은 과제가 남는다. 다만 시장은 ‘소프트 스플릿’, 즉 사실상 분리 운영 후 법·신고 절차를 점진 적으로 처리하는 프리미엄을 부여해왔다. 실행력이 확인되면 리레이팅(재평가)은 앞당겨질 수 있다는 얘기다.
장남인 김 사장 축의 한진칼 지분 18%대는 그룹 외연 확장의 빅픽처로 읽힌다. 항공은 경기민감 업종이지만, 대한항공의 네트워크·화물·MRO·디지털 전환 여지까지 고려하면 지배구조 스토리의 볼륨이 크다. 다만 정책 산업 특성, 규제 당국 스탠스, 기관·외국인 표심 등 변수도 많다. ‘우호적 전략 플레이어’라는 포지셔닝과 기업가치 제고안(주주환원, 비핵심 재편)이 설득력을 얻을수록 시나리오의 실현 가능성은 높아진다.
‘건설사’ 아닌 종합 플랫폼 그룹
가장 큰 변수는 경기 사이클이다. 건설은 분양가·원가 갭 확대 시 IRR(내부수익률)이 급락할 수 있다. 전선·해저케이블은 호황 국면이지만, 원자재 가격·대형 프로젝트 지연이 실적 변동성을 키운다. 금리 고착화는 조달비용 상방을 자극한다. 지주 전환 이후엔 내부거래·순환출자 규제에 대한 선제 설계도 필요하다.
은 뚜렷하다. 현금흐름·공정·정책·금융의 균형이다. 지주는 제조·전력 인프라의 안정 캐시로 그룹 변동성을 흡수하고, 건설은 정비 레퍼런스 누적으로 브랜드·수주 파이프라인을 회복한다. 비건설 축은 외연 확장의 완충재다. 이 균형이 맞물릴 때, ‘분리’는 해체가 아니라 성장 장치가 된다.
HB호반지주의 출범은 호반그룹이 건설사 이미지를 벗고 새 길을 걷는 신호탄이다. 그룹은 제조·전력, 건설·정비, 리조트·비건설로 나뉘어 각각의 축을 세우고, 지주는 자금과 전략을 조율하는 본부 역할을 맡게 된다. 체계가 자리를 잡으면 시장은 호반그룹을 더 이상 ‘건설사’가 아닌 종합 플랫폼 그룹으로 평가할 가능성이 크다. 이때부터 기업가치 재평가의 문도 한층 넓게 열릴 것이다.
김유신 하이뉴스(Hinews) 기자
yskim@hi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