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시간 노동은 단순한 피로를 넘어 심장 질환부터 불면, 우울·불안 등 정신건강 장애까지 다양한 건강 문제를 유발한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근, 뇌 구조 자체가 변형될 수 있다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이 연구는 특히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현실과도 깊은 관련이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이완형 중앙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의 교수 연구팀은 『Occupational and Environmental Medicine』에 게재된 논문을 통해,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가 단순한 정신적 피로감을 넘어서 뇌의 구조적 변화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 연구는 장시간 노동과 뇌 건강의 상관관계를 규명한 첫 영상의학 기반 실증 연구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과로 기준 초과 근무자 뇌, 17개 영역에서 뚜렷한 변화

이 교수팀은 국내 보건의료 종사자 110명을 대상으로 자기공명영상(MRI)을 통해 뇌 구조를 비교 분석했다. 연구 참여자 중 일부는 주 52시간을 초과하는 장시간 노동자였고, 나머지는 주 52시간 미만의 일반 근로자였다. 참고로 주 52시간은 현재 한국 노동법상 ‘과로’로 규정되는 기준이다.

연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장시간 근무를 하는 그룹의 경우, 그렇지 않은 그룹에 비해 무려 17개 뇌 영역에서 뚜렷한 구조적 차이를 보였다. 특히 주목할 점은 변화가 발생한 부위가 단순한 감정 처리뿐 아니라 논리적 사고, 계획 수립, 문제 해결 능력 등 고차원적인 인지 기능을 담당하는 전두엽, 측두엽 등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우리는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만성 스트레스가 뇌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점은 예상했지만, 특정 영역의 부피가 증가하는 결과는 예외적이었다”며, “이것은 뇌가 증가한 인지 및 감정적 부담에 적응하기 위해 스스로를 조절하는 신경적응반응(neuroadaptive response)을 시도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뇌 변화, 감정 조절·대인관계에도 악영향 가능성

MRI 분석을 통해 나타난 뇌 구조의 변화는 단순히 기억력이나 집중력의 저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서적 안정성이나 감정 인지 능력, 대인 관계 유지 능력 등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감정의 신호를 해석하거나 대인 커뮤니케이션을 적절히 수행하는 능력이 저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장기적으로는 직장 내에서의 생산성 저하는 물론, 개인의 삶의 질과 정신건강 문제로 이어질 수 있어 사회적 손실 역시 클 수 있다. 이미 국내에서도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번아웃, 우울증, 심지어 자살 사례가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 있다.

실례로 2022년 11월, 서울의 한 대형병원 간호사가 과도한 야간근무와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보도는 의료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그녀의 근무표를 살펴보면 한 달에 야간 근무가 10회를 넘는 등 노동 강도가 심각한 수준이었다.

장시간 노동은 단순한 피로를 넘어 뇌 구조의 변화를 초래하고, 이는 감정, 사고, 관계 등 전반적인 삶의 질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클립아트코리아)
장시간 노동은 단순한 피로를 넘어 뇌 구조의 변화를 초래하고, 이는 감정, 사고, 관계 등 전반적인 삶의 질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클립아트코리아)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이 교수는 "이러한 뇌 변화가 일시적인 것인지, 혹은 회복 불가능한 장기적 손상인지에 대해선 아직 단언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표본과 장기 추적 연구가 필요하다. 그는 후속 연구를 통해 “업무량 조절이 실제로 뇌 구조 회복에 도움이 되는지를 규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뇌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사회적 과제가 되고 있다. 이 교수는 “뇌 구조 변화라는 현상이 단순히 개인의 스트레스 관리 능력 부족으로 치부돼서는 안 된다”며 “기업과 조직 차원에서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은 장시간 근로를 억제하고, 스트레스 관리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일과 삶의 균형을 보장함으로써 근로자들의 장기적인 뇌 건강과 생산성을 보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피할 수 없다면, 대응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많은 근로자들이 당장 근무시간을 줄이기 어렵다. 특히 의료, IT, 제조업과 같은 필수 산업군에서는 교대 근무와 긴 시간의 노동이 불가피하다. 그렇다면 개인은 어떤 방법으로 뇌 건강을 보호할 수 있을까?

이 교수는 “수면의 질을 높이고, 규칙적인 신체 활동을 통해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며, “명상이나 심호흡 같은 이완 기법도 인지적 부담을 줄이는 데 유효하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최근 발표한 권고안에서 “일상 속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최소 주 3회, 30분 이상의 유산소 운동과 함께 명상·요가 등의 정서 안정 활동을 병행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또한, 사내에 정신건강 전문가가 상주하거나 정기적인 심리 상담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직장은 근로자들의 스트레스 해소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 여러 메타분석에서 확인되고 있다.

◇정책적 대안은 있는가?

장시간 노동이 사회 문제로 대두된 것은 비단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노동기구(ILO)는 2021년 공동 보고서에서 “주당 55시간 이상 일하는 사람은 심혈관 질환으로 사망할 위험이 최대 35%까지 증가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EU) 국가들은 법적으로 주당 노동시간 상한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으며, 프랑스는 2017년부터 ‘퇴근 후 업무 연락 금지법’을 도입해 근로자 권익을 보호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최근 들어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을 통해 유연 근무제 도입을 시도하고 있으나, 여전히 현장에서는 ‘장시간 근무를 줄이면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강하게 남아있다. 이 교수의 연구 결과는 이러한 잘못된 고정관념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뇌 건강을 위한 사회적 전환이 필요하다

장시간 노동은 단지 피로 누적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그 여파는 뇌 깊숙이까지 침투해 우리의 감정, 사고, 관계, 삶의 질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이완형 중앙대학교 교수의 연구는 이러한 사실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며, “과로는 곧 뇌의 위기”라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제 우리는 개인의 스트레스 관리 수준을 탓하기보다, 조직과 사회 전체가 ‘뇌 건강’을 중심에 두고 노동 문화를 재설계해야 한다. 뇌는 회복이 가능한 장기지만, 회복을 기다려줄 만큼 세상은 여유롭지 않다. 바로 지금이 변화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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