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이 아니라는데, 이미 가슴은 도려냈고”…뒤바뀐 라벨 하나에 무너진 30대 여성의 삶
위탁검사 시스템 치명적 허점…단순한 실수인가, 명백한 과실인가?…누가 책임 지나?

암 확진 판정을 받은 A씨는 곧장 서울의 대형병원 암센터를 찾았고, 수술 전 추가 검사를 받았다. 그 결과는 뜻밖이었다. “암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의료진 역시 “확실치 않다”며 결단을 A씨에게 맡겼다. 결국 A씨는 불안과 공포 속에서 유방 종양과 인근 정상조직까지 약 5cm를 제거하는 유방 부분절제술을 받았다.
수술은 2시간 넘게 이어졌고, A씨는 신체 일부와 함께 출산과 수유 기능까지 위협받는 중대한 피해를 입었다.
“그 종양, 당신 것이 아니었습니다”…오진의 충격적 진실
그러나 충격은 그 이후에 찾아왔다. 수술 후 시행된 재조직검사 결과, 절제한 종양은 악성종양이 아닌 양성 섬유선종이었다. 더는 제거할 필요조차 없는 조직이었다.
그리고 밝혀진 진짜 문제의 본질은 A씨의 원래 검체는 다른 환자의 것과 뒤바뀌어 있었다는 것이다. 진단 결과는 A씨의 것이 아니었고, 그로 인해 A씨는 암이 아님에도 유방 일부를 절제당하는 의료사고의 피해자가 됐다.
오진의 원인은 검사기관인 녹십자 의료재단의 ‘검체 라벨링 오류’였다. 환자 검체에 부착해야 할 식별 라벨이 검사 과정에서 잘못 붙은 것이다. 이 같은 실수는 검체 관리 시스템 전체에 대한 신뢰를 송두리째 흔든다.
피해자 A씨는 YTN과의 인터뷰에서 “처음 검진했던 조직 슬라이드와 내 재검사 슬라이드는 전혀 달랐어요. 암도 아니었고, 그건 제 것이 아니었습니다”라고 했다.
녹십자 의료재단은 해당 사실을 인정하고, “라벨링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다. 이번 사건을 매우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재발 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A씨는 이미 수술을 받고 일상생활이 무너진 이후였다.
A씨는 극심한 불면과 대인기피, 정서불안을 겪고 있으며, 결국 직장도 그만뒀다. 현재는 녹십자 의료재단과 검사 위탁을 맡긴 B의원을 상대로 민사 및 형사 소송을 준비 중이다.
시스템의 사각지대…수탁검사 체계, 제대로 된 감시 있나?
이번 사건은 단지 한 사람의 비극에 그치지 않는다. 문제는 검체 오진이 결코 ‘우연한 예외’일 수 없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단순 실수로 보기에는 구조적 허점이 너무 크다고 지적한다.
한국의 건강검진 체계는 대부분의 병·의원이 자체 검사 인력을 갖추지 못한 탓에, 검체를 민간 수탁검사기관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검사 의뢰기관(병원) → 수탁기관(재단)으로 하루 수백 건의 검체가 이동하며, 진단과 결과 통보가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한 줄의 라벨이 잘못 붙는다면, 오진은 물론 불필요한 수술까지 이어질 수 있는 구조다. 특히 유방암처럼 생존률과 수술 여부, 심리적 충격이 큰 질환일수록 그 결과는 치명적이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이번 건은 단순 행정 착오가 아니다”면서 “검체 관리 시스템 전반에 대한 전수조사와, 라벨 식별의 이중확인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단순 실수인가, 명백한 과실인가”…책임 구조가 보이지 않는다
녹십자 의료재단은 국내 수탁검사 시장에서 상당한 점유율을 차지하는 민간기관이다. 그만큼 책임도 막중하다. 이번 사건을 두고 전문가들은 “라벨 실수 하나로 수술에 이르게 한 의료과실은 형사 책임까지 검토할 사안”이라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사건 발생 한 달이 넘도록 녹십자 의료재단은 내부 시스템 점검이나 책임자 조치 결과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
기자는 ‘녹십자의료재단의 유방암 오진’에 관한 공식 입장과 향후 대응을 확인하기 위해 녹십자 측에 질의서를 보냈으나 반응이 없었다.
검사를 맡긴 병원도, 결과를 보낸 재단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A씨는 암 진단을 믿고 가슴 일부를 도려냈다. 그러나 진실은, 애초에 그 암이 '자기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누구의 실수였는지 명확하다. 하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가 더욱 절망스럽다.
이제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검사 결과 하나가 목숨을 가르는 시대, 시스템은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결국 이번 사건은 단순한 진단 오류를 넘어, 한국 의료제도의 위탁 검사 신뢰성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한 줄의 라벨이 뒤바뀌었을 뿐이지만, 그 결과는 한 사람의 삶 전체를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다음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철저한 법적 책임과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김혜연 하이뉴스(Hinews)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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