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C녹십자의 ‘배리트락스주’는 기존의 세포배양 방식이 아닌 유전자재조합 기술 기반으로, 안정성과 보관 편의성 향상이 특징이다. 사진은 GC녹십자 전경.
식약처가 2025년 4월 단 한 달간 총 145개의 의료제품을 허가하며, 국내 바이오·헬스 산업의 확장성과 기술력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의약품·의약외품·의료기기 전 부문에 걸친 포괄적 허가 확대는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 가운데에는 생물테러 대응용 백신, 중증 희귀질환 치료제, 국내 최초의 디지털 치료기기까지 포함돼 있어, 정부의 규제혁신이 실질적 의료서비스 개선과 산업 육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식품의약품안전처(처장 오유경)는 4월 한 달 동안 의약품 39개, 의약외품 5개, 의료기기 101개 등 총 145개 의료제품을 허가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월평균(124개) 대비 116.9%, 올해 1분기 월평균(110개) 대비 131.8% 수준으로, 허가 속도와 품목 다변화 모두에서 뚜렷한 증가세를 보였다. 특히, 이번에 허가된 주요 품목은 바이오헬스 산업이 직면한 글로벌 과제, 즉 감염병 대응, 만성·희귀질환 치료, 정신건강 관리를 정조준하고 있어 주목된다.
가장 상징적인 사례는 국내 기술로 개발된 흡착탄저백신 ‘배리트락스주’의 신약 허가다. 탄저는 생물테러 가능성이 있는 고위험 병원체로 분류되며, 국제사회에서도 전략물자로 간주된다. 그동안 국내에는 국산 탄저 백신이 없어 국가방역 역량에서 취약한 부분으로 지적돼 왔다. 배리트락스주는 유전자재조합 기술을 적용해 안전성과 면역반응을 높인 백신으로, 국내 감염병 대응 역량의 자립도를 크게 높이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평가된다.
의약품 허가 중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진전은 중증 전신근무력증 치료제 ‘리스티고주(로자놀릭시주맙)’의 희귀의약품 지정 및 허가다. 희귀질환은 환자 수가 적어 시장성이 낮은 탓에 치료제 개발이 상대적으로 더디다. 그러나 식약처는 이 분야에서도 적극적인 허가 정책을 펴고 있다. 리스티고주는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인 중증근무력증의 면역경로를 차단해 증상을 조절하는 최신 표적 항체 치료제로, 국내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 옵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가장 눈길을 끄는 혁신은 디지털 치료기기 분야에서 나왔다. ‘엥자이랙스(ANZEILAX)’는 불안장애 환자의 증상 완화를 위한 ‘수용전념치료(ACT, Acceptance and Commitment Therapy)’를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구현한 정서장애 치료 소프트웨어다. 이는 디지털 치료기기(Digital Therapeutics, DTx) 분야에서 국내 최초로 정신질환을 대상으로 허가된 제품으로, 향후 관련 시장 확대의 신호탄으로 평가된다. 기존 약물 치료와 병행하거나 대체 가능한 치료 수단으로서, 개인 맞춤형 정신건강관리 시장의 본격 개화를 예고하고 있다.
전체 145건 중 의료기기 허가 건수가 101건으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 것도 주목할 점이다. 이는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를 포함한 중저위험 등급 제품군에서 규제의 선별적 완화 및 패스트트랙 제도가 적극 작동한 결과로 해석된다. 특히 디지털 기술 접목이 늘어나면서, 헬스케어 스타트업과 중소 의료기기 기업의 시장 진입 속도도 과거보다 훨씬 빨라지고 있다.
-국산 첫 탄저 백신 ‘배리트락스주’
제품명: 배리트락스주(흡착탄저백신, 유전자재조합)
허가사: GC녹십자
용도: 탄저균 감염 예방 (생물테러 대응)
GC녹십자는 이번 허가로 국산 탄저 백신의 최초 상용화에 성공했다. 탄저는 WHO가 지정한 생물테러 고위험 병원체로, 글로벌 방역물자 및 군수의약품 시장에서 전략적 가치가 크다.
국산화 성공으로 정부 비축시장 수요 확보는 물론, 미국·중동 중심의 방산의료시장 진출 기반도 마련됐다.
‘배리트락스주’는 기존의 세포배양 방식이 아닌 유전자재조합 기술 기반으로, 안정성과 보관 편의성 향상이 특징이다. GC녹십자는 식약처 허가 직후 방위사업청·질병관리청과 공급 협의를 본격화한 것으로 전해진다.
-중증근무력증 희귀약 ‘리스티고주’
제품명: 리스티고주(로자놀릭시주맙)
허가사: UCB Korea (한국유씨비제약)
용도: 전신 중증근무력증 치료 (희귀의약품)
리스티고주는 FcRn 억제제 계열 최신 항체의약품으로, 면역계가 자가항체를 제거하지 못해 생기는 희귀 신경근질환 치료에 특화돼 있다. 국내 추정 환자 수는 1,000명 내외로 소수지만, 치료 접근성이 매우 낮았던 분야다. 이번 허가로 고가 치료제 수입 의존도 완화와 신속 투여 가능성 확보라는 의미가 있다.
‘리스티고주’는 동일 계열 약물이 미국에서 연 1,000억 원 규모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어, UCB는 국내외 병용 적응증 확대를 통해 매출 볼륨을 빠르게 키울 전망이다.
-국내 첫 정신질환 디지털치료기기 ‘엥자이랙스’
제품명: 엥자이랙스 (ANZEILAX)
허가사: 에임메드(aimmed)
용도: 불안장애 증상 완화 (수용전념치료 기반 디지털치료기기)
‘엥자이랙스’ 허가사인 에임메드는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진과 공동 개발한 앱 기반 치료소프트웨어로, 수용전념치료(ACT)를 환자 맞춤형 콘텐츠로 구현했다. 디지털 치료기기 중 최초로 정신과 적응증 획득에 성공함에 따라, 국민건강보험 적용을 위한 시범사업도 논의 중이다.
이번 제품은 ‘처방 기반 소프트웨어’로 분류되며, 미국 FDA의 디지털 치료기기 승인 모델을 벤치마킹했다.
우울·불면·ADHD 등 후속 적응증 확장도 준비 중이며, 디지털헬스 스타트업과 병원 간 협업 생태계 확장의 단초가 되고 있다.
-기타 산업 흐름과 파생 효과
△의료기기 다변화
4월에 허가된 의료기기 101건 가운데는 인공지능 기반 영상진단보조 시스템, 스마트 재활기기, 수면분석 소프트웨어 등 다수의 첨단 융합형 제품이 포함됐다.
이는 식약처의 ‘디지털 의료기기 전담 심사트랙’ 도입 효과로, 중소 디지털헬스 기업들의 시장 진입 문턱이 낮아진 결과로 해석된다.
△의약외품 허가 확대
방역 및 위생제품 수요의 지속성에 따라 살균·소독 관련 제품군이 다수 허가된 것으로 나타났다. 제조사는 대부분 중소기업으로, 생활방역과 공공조달을 겨냥한 제품화 흐름이 유지되고 있다.
제약·디지털헬스 R&D 가속 유도
전문가들은 “식약처의 고효율 심사와 함께, 산업계는 허가 이후의 시장 진입 전략과 보험급여 연계 플랜까지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허가실적은 연구개발의 ‘결과물’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비즈니스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특히 디지털 치료기기처럼 임상데이터 축적과 실사용 기반 구축이 병행되어야 시장에서 안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식약처는 앞으로도 정기 허가현황 공개 외에, 첨단의료제품 통합심사 지원, 허가 후 사용정보 추적관리 강화 등 후속조치까지 책임진다는 방침이다.
4월의 허가 데이터는, 단순 통계가 아닌 한국 바이오헬스 산업이 ‘기술의 시야’를 넓히고 있음을 입증하는 정밀한 좌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