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책임, 처벌에서 공급망 관리로…싱가포르·독일이 택한 산업재해 예방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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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책임, 처벌에서 공급망 관리로…싱가포르·독일이 택한 산업재해 예방책

오하은 기자

기사입력 : 2026-10-21 21:27

[Hinews 하이뉴스]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한 해외의 접근법은 사업주 처벌을 강화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원청과 발주사가 협력업체의 안전관리 역량을 끌어올리고, 소규모 사업장이 위험요인을 직접 찾아 개선할 수 있도록 전문 상담과 교육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산업재해 예방을 기업의 법적 의무로 규정하는 동시에, 그 의무를 실제 작업 현장에서 이행할 수 있도록 지원 체계를 마련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한 해외의 접근법은 사업주 처벌을 강화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원청과 발주사가 협력업체의 안전관리 역량을 끌어올리고, 소규모 사업장이 위험요인을 직접 찾아 개선할 수 있도록 전문 상담과 교육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산업재해 예방을 기업의 법적 의무로 규정하는 동시에, 그 의무를 실제 작업 현장에서 이행할 수 있도록 지원 체계를 마련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사진은 무료이미지 사이트 픽사베이 제공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한 해외의 접근법은 사업주 처벌을 강화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원청과 발주사가 협력업체의 안전관리 역량을 끌어올리고, 소규모 사업장이 위험요인을 직접 찾아 개선할 수 있도록 전문 상담과 교육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산업재해 예방을 기업의 법적 의무로 규정하는 동시에, 그 의무를 실제 작업 현장에서 이행할 수 있도록 지원 체계를 마련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사진은 무료이미지 사이트 픽사베이 제공

싱가포르는 원청과 발주사의 영향력을 활용해 공급망 전반의 안전 수준을 높이는 방식을 도입했다. 독일은 소규모 사업장도 위험성 평가와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갖출 수 있도록 산업재해보험기관 등을 통한 상담과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영국은 사업장별 위험성 평가를 위한 서식과 업종별 사례를 제공한다. 각국의 제도는 차이가 있지만, 안전관리 역량이 부족한 사업장에 책임만 부과해서는 사고를 예방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이 공통으로 깔려 있다.

싱가포르가 2024년 발표한 ‘WSH 어드보케이트(Advocate) 프로그램’은 대기업의 구매·계약 구조를 안전관리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례다. WSH는 작업장 안전보건(Workplace Safety and Health)을 뜻한다. 이 프로그램은 대규모 발주사와 서비스 구매자가 협력업체의 안전 수준을 높이도록 유도하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핵심은 계약을 따내는 과정에서 안전 실적을 평가하도록 하는 것이다. 참여 기업은 협력업체 선정 때 안전관리 성과를 고려하고, 안전 실적이 우수한 업체에 계약상 혜택을 주거나 향후 입찰 기회를 우선 제공할 수 있다. 안전교육과 우수 사례 공유를 통해 협력업체의 역량을 높이는 역할도 맡는다. 안전관리를 하청업체가 알아서 해결해야 할 문제로 남겨두지 않고, 계약을 발주하는 기업이 공급망 전체의 안전 수준에 영향을 미치도록 한 것이다.

싱가포르 정부가 2025년 11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같은 해 9월 기준 이 프로그램에는 37개 기업이 참여했고 이들의 활동으로 공급망에 속한 중소기업 약 2900곳이 혜택을 받았다. 정부는 별도로 중소기업의 안전보건 인증 취득을 지원하는 프로그램과 보조금, 교육 지원도 운영하고 있다. 위험요인을 찾아 개선하도록 돕는 ‘StartSAFE’ 프로그램은 중소기업에 전액 보조 방식으로 제공되며, 안전보건 기술 도입과 교육을 위한 지원책도 마련돼 있다.
이 제도가 주목받는 이유는 원청의 책임을 법적 의무에만 한정하지 않고 거래 관계와 연결했다는 점이다. 협력업체가 안전설비와 교육에 투자하면 비용이 발생하지만, 계약 과정에서 안전 실적을 인정받고 다음 사업 기회까지 확보할 수 있다면 안전관리를 경영 판단의 일부로 받아들일 유인이 생긴다. 다만 참여 기업과 지원받은 중소기업의 수가 곧바로 산업재해 감소 효과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사고 감소 여부는 장기적인 재해 통계와 사업장별 성과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

독일은 소규모 사업장의 안전관리 역량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춘다. 독일 산업안전보건법은 고용주에게 작업장 위험을 평가하고 그 결과에 따라 필요한 안전보건 조치를 마련하도록 하고 있다. 독일 사회재해보험 산하 기관들은 사업주가 위험성 평가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상담과 안내를 제공한다. 법에 따른 의무를 부과하는 동시에, 이를 이행하기 어려운 사업장이 실무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구조다.

독일 연방노동사회부는 2025년 2월 소규모·영세 사업장에 대한 산업안전보건 지원을 강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산업재해보험기관들이 사업 초기부터 사업장에 접근해 안전보건 체계 구축을 상담하고, 교육과 지원을 제공하는 창구를 마련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위험성 평가를 제대로 수행하고 기록하는 일도 중요하게 다뤄졌다. 안전보건 담당 인력과 전문성이 부족한 사업장에 의무만 반복해서 안내하는 대신, 사업주가 실제로 위험을 확인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향이다.

이 같은 접근은 소규모 사업장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 대기업과 달리 별도의 안전보건 조직을 두기 어렵고, 사업주가 생산·영업·인력관리까지 함께 맡는 사업장에서는 위험성 평가가 서류 작업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있다. 작업 공정의 위험을 파악하더라도 어떤 설비를 보완해야 하는지, 작업 절차를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다. 상담과 교육은 이런 공백을 줄이기 위한 수단이다.

영국 산업안전보건청(HSE)은 사업장이 위험성 평가를 수행할 때 활용할 수 있는 서식과 업종별 사례를 제공한다. 사무실과 소매점뿐 아니라 식품 조리·서비스, 자동차 정비, 공장 유지보수, 창고 작업 등 다양한 환경의 사례를 제시한다. 사업주는 작업 과정에서 누가 어떤 위험에 노출되는지, 현재 어떤 조치를 시행하고 있는지, 추가 조치가 필요한지, 누가 언제까지 개선해야 하는지를 점검할 수 있다.

다만 영국 당국은 사례를 그대로 복사해 사업장 이름만 바꾸는 방식으로는 법적 의무를 충족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같은 업종이라도 설비와 작업 방식, 공간 배치, 취급 물질에 따라 위험요인이 다르기 때문이다. 서식과 사례는 위험을 찾아내기 위한 출발점이지, 사업장별 평가를 대신하는 문서가 아니라는 의미다. 이는 안전관리 문서가 갖춰져 있는지뿐 아니라 그 문서가 실제 작업장의 위험을 반영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국제노동기구(ILO)도 중소기업에 맞춘 참여형 안전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ILO가 2025년 3월 공개한 소규모 사업장 안전보건 교육 지침은 사업주와 노동자가 함께 작업장을 둘러보고 위험요인을 확인한 뒤, 비용 부담이 크지 않은 개선책부터 실행하도록 안내한다. 통로에 쌓인 물건을 치우고, 기계의 위험한 움직임을 막는 방호장치를 설치하며, 화학물질 용기에 뚜껑과 표시를 갖추는 것 등이 사례로 제시됐다. 노동자와 사업주가 함께 개선 우선순위를 정하고 이후에도 점검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해외 사례를 국내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각국의 산업 구조와 법률, 산업재해보험 체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사례는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무엇을 보완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법 위반 여부를 따지고 책임을 묻는 절차와 별개로, 위험을 사전에 발견하고 개선할 수 있는 인력과 기술, 교육, 재정 지원이 현장에 갖춰져야 한다는 점이다.

국내에서도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성을 둘러싸고 처벌 수위와 경영책임자의 책임 범위뿐 아니라 소규모 사업장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문제가 이어져 왔다. 해외 사례가 던지는 질문은 처벌을 강화할 것인지 완화할 것인지에만 머물지 않는다. 원청이 협력업체의 안전 수준을 높일 유인을 갖도록 계약 구조를 바꿀 것인지, 영세 사업장이 위험성 평가를 실질적으로 수행하도록 전문적인 지원을 제공할 것인지도 함께 따져야 한다.

국제노동기구의 산업안전보건 전문가 쓰요시 가와카미는 소규모 사업장의 안전 개선을 다룬 ILO 자료에서 “안전한 작업장은 강하고 건강한 사업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며 생산성을 높이고 상업적 경쟁력을 확보하는 이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안전을 생산과 대립하는 비용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사업 운영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하는 조건으로 다뤄야 한다는 취지다.

오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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