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news 하이뉴스] 서울의 집값을 둘러싼 논쟁은 공급 확대와 대출 규제, 재건축 활성화에 집중돼 있다. 집을 더 짓고 거래 수요를 조절하면 가격이 안정될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 있지만, 해외 주요 도시의 주거정책을 살펴보면 집값과 임대료를 좌우하는 요인은 공급 물량만이 아니다. 정부가 주택을 어떤 방식으로 공급하고, 공공주택을 얼마나 오래 보유하며, 일반 가구가 감당할 수 있는 가격으로 주거 선택지를 제공하는지가 주택시장에 영향을 미친다.
싱가포르와 오스트리아 빈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주거 문제에 접근해 왔다. 싱가포르는 정부 주도의 대규모 공공주택 공급을 통해 자가 보유를 확대했고, 빈은 공공임대와 비영리 주택을 장기간 유지하면서 민간 임대시장까지 영향을 미치는 구조를 만들어 왔다. 반면 홍콩은 공공주택 공급을 확대하고 있지만, 저렴한 주택을 기다리는 가구의 대기기간이 여전히 길다. 세 도시의 사례는 주택을 더 짓는 정책과 시민이 실제로 부담할 수 있는 집을 확보하는 정책이 같은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싱가포르와 오스트리아 빈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주거 문제에 접근해 왔다. 싱가포르는 정부 주도의 대규모 공공주택 공급을 통해 자가 보유를 확대했고, 빈은 공공임대와 비영리 주택을 장기간 유지하면서 민간 임대시장까지 영향을 미치는 구조를 만들어 왔다. 사진은 싱가포르의 모습. 출처는 무료이미지 사이트 픽사베이 제공
싱가포르 주택정책의 중심에는 주택개발청(HDB)이 있다. 싱가포르는 독립 초기 심각한 주택 부족과 열악한 주거환경을 해결하기 위해 공공주택 공급에 나섰고, 현재는 전국에 100만 가구가 넘는 HDB 주택을 공급했다. 정부가 토지와 주택 공급을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신규 주택을 시장의 기존 주택 가격과 별개로 소득 수준에 맞춰 공급하는 방식이 정책의 핵심이다.
공공주택은 저소득층을 위한 임시 거처에 머물지 않는다. 싱가포르에서는 공공주택이 일반 가구의 대표적인 주거 형태로 자리 잡았고, 생애 첫 주택을 구입하는 가구에는 보조금과 우선 공급 등 여러 지원책이 적용된다. 정부는 2026년에도 공공주택 구입 자격의 소득 기준을 높여 더 많은 가구가 지원 대상에 포함되도록 했다. 주택 공급을 늘리는 동시에 누가 공급받을 수 있는지, 구입 자금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는지까지 함께 설계하는 방식이다.
싱가포르의 주택정책이 집값 문제를 완전히 해결한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재판매 주택 가격이 오르고 고가 거래가 잇따르면서 공공주택의 가격 부담과 자산 가치 상승을 둘러싼 논쟁도 이어졌다. 신규 주택을 공급하더라도 입지가 좋은 기존 주택에 수요가 몰리면 가격 상승 압력이 발생할 수 있다. 공급 규모뿐 아니라 공급 시기와 지역, 재판매 조건, 주택 구입 자격을 함께 관리해야 하는 이유다.
싱가포르 경영대학(SMU)의 팡숙용 경제학 교수는 주택 가격의 안정성을 공급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본다. 팡 교수의 연구는 토지 확보와 주택 공급, 금융 지원, 시장 규제가 맞물려야 주거비 부담을 관리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공공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하는 제도와 이를 뒷받침하는 토지·금융 정책이 함께 작동했다는 것이 싱가포르 사례의 특징이다.
오스트리아 빈은 자가 소유를 확대하는 방식과 다른 길을 걸었다. 시 정부가 직접 보유한 공공주택과 공공 지원을 받는 비영리·협동조합 주택을 장기간 유지하면서 임대주택을 주거정책의 중심에 놓았다. 빈 시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시 소유 주택은 약 22만 가구, 보조금을 받는 주택은 약 20만 가구에 이른다. 빈 인구 상당수가 공공 또는 지원 임대주택에 거주하는 배경이다.
빈 모델의 특징은 공공주택을 취약계층에만 한정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일정한 소득과 자격 기준을 충족하면 중산층도 지원 주택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 특정 계층만 공공주택에 몰리는 현상을 줄이고, 주거 여건에 따른 지역 분리를 막으려 한다. 임대주택을 한시적인 복지 지원으로 취급하기보다 도시 전체의 주거 기반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26년 발표한 오스트리아 경제보고서도 빈의 주택정책에서 비영리 임대주택의 역할을 짚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빈의 비영리·사회주택은 민간 임대료 상승을 완화하는 효과를 내 왔다. 빈의 공공·지원주택 임대료가 민간시장보다 낮게 형성되면 임차인이 선택할 수 있는 주택의 범위가 넓어지고, 민간 임대사업자 역시 모든 수요를 높은 임대료로 흡수하기 어려워진다. 공공주택이 직접 입주한 가구만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 임대시장에도 영향을 미치는 구조다.
빈 역시 주거비 상승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토지 가격과 건설비가 오르고 저렴한 임대주택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부담이 커지고 있다. OECD는 공공 지원 주택의 공급을 늘리고 건축 인허가 절차를 개선하는 한편, 공실 토지와 주택의 활용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공공주택을 충분히 확보한 도시도 공급을 지속하지 못하면 주거비 안정 효과가 약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홍콩은 공공주택 공급이 주거난 해소로 이어지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홍콩 정부는 2027~2028년부터 10년 동안 공공·민간주택을 합쳐 42만 가구를 공급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가운데 공공주택은 29만4000가구다. 공공임대주택과 보조금이 적용되는 주택의 공급을 늘려 주거 취약계층의 부담을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공급 목표와 실제 입주 사이에는 간격이 있다. 홍콩 정부가 2026년 8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보조 임대주택의 종합 대기기간은 4.8년으로 집계됐다. 과거 최고치인 6.1년보다 줄었지만, 공공주택 입주를 기다리는 가구가 수년간 대기해야 하는 현실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주택 공급을 늘리는 것과 수요가 집중된 지역에서 적정한 가격의 주택을 제때 배정하는 일은 별개의 과제다.
세 도시의 정책은 한국의 주택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에도 차이를 만든다. 서울은 민간 분양과 매매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반면, 싱가포르는 정부가 주택 공급과 구입 지원을 함께 관리하고 빈은 공공·비영리 임대주택을 장기간 보유해 주거 선택지를 넓혔다. 홍콩의 사례는 공공주택 확대 계획이 있어도 공급 시점과 대기 수요를 관리하지 못하면 당장의 주거 불안을 해소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서울에서 집값을 낮추기 위한 공급 대책이 실제 주거 안정으로 이어지려면 새 아파트를 얼마나 공급할 것인지뿐 아니라 누구에게, 어느 지역에, 어떤 가격으로 공급할 것인지까지 따져야 한다. 매매가격을 낮추는 정책과 전세·월세 부담을 줄이는 정책도 구분해 설계할 필요가 있다. 주택을 소유하려는 가구와 장기간 임대해 살려는 가구 모두에게 선택 가능한 주거 형태가 있어야 시장의 압력이 한쪽으로 쏠리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싱가포르 경영대학의 팡숙용 경제학 교수는 주거비 부담을 낮추는 정책의 핵심을 토지와 공급, 금융, 규제의 연계에서 찾으며 “주택의 적정 가격은 한 번의 조치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시장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