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단순한 효율성 향상을 넘어 생명을 살리는 결정적 도구가 되고 있다. ChatGPT가 등장한 2022년 이후, AI는 업무 방식과 정보 접근 방식을 빠르게 바꿔놓았다. 처음엔 단순한 기술로 여겨졌지만, 곧 정보 보안, 윤리 문제 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히 의료 분야에서는 환자 정보 보호라는 절대 원칙으로 인해 AI 도입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병원들은 자체 AI 시스템을 개발하며 안전하고 효율적인 사용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AI에 대한 시각은 갈리고 있다. 노엄 촘스키는 ChatGPT를 ‘고도화된 표절 프로그램’이라 비판했지만, 실제 의료 현장에서의 평가는 다르다. 진료 기록 작성 시간은 절반으로 줄고, 환자 교육 자료도 손쉽게 제작 가능해졌다. 무엇보다 언제든 질문에 응답하는 ‘지적 동료’를 얻은 듯한 변화가 크다.

구글 딥마인드의 AlphaFold는 단백질 구조 예측을 몇 분 만에 수행하며 신약 개발의 판도를 바꾸었고, 루닛 같은 국내 기업은 임상적 유효성을 철저히 입증하며 의료계의 신뢰를 얻었다. 최근 AI의 인지 능력은 멘사 상위 1% 수준에 도달했으며, 전문가들은 AI의 지능이 3년마다 1000배씩 향상될 것이라 전망한다.
그렇다면 의료진의 역할은 무엇일까? AI가 코딩, 법률, 행정 업무를 대체해가는 것처럼, 의료계 역시 변화를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의료는 인간 고유의 능력이 여전히 필수적인 분야다. 대표적인 예가 ‘느낌’이다. 환자의 고통을 공감하고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네는 능력은 AI가 흉내 낼 수는 있어도 실제로 가질 수는 없다. 감정과 창의성의 뿌리는 바로 이 ‘느낌’에 있다.
암 환자에게 “괜찮아질 거예요”라고 말할 때, AI는 통계로 희망을 제시할 수 있지만, 그 말에 진정성과 책임을 담는 건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다. 결국 AI와 의료진은 경쟁자가 아니라 협력자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의료진은 이를 바탕으로 환자 개인의 상황을 종합해 최선의 결정을 내린다.
서울대병원은 AI와 의사가 함께 CT 판독을 수행하는 더블 체크 시스템을 도입해 진단 정확도를 높이고 있다. 건양대병원의 ‘케어챗’은 24시간 환자 문의에 응답하고, 필요한 경우 의료진에게 연결한다. 이처럼 AI와 의료진의 협력은 이미 실질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다만, 이 시대의 의료 커뮤니케이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투명성이다. 환자들은 AI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의료진의 판단이 어떻게 더해졌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 “이번 진단에는 AI 기술이 사용되었습니다. AI가 초기 분석을 맡았고, 저는 환자의 병력과 증상을 고려해 최종 진단을 내렸습니다.” 이런 설명이 새로운 표준이 되어가고 있다.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한 의료진 사칭 광고 같은 신뢰 훼손 사례도 늘고 있다. 이에 따라 유튜브 등 플랫폼은 AI 활용 여부의 명시를 의무화하고 있으며, 의료계도 AI 사용 사실을 명확히 밝혀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변화의 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현재 AI 관련 논문은 매달 300편씩 발표되고 있으며, 6개월 전 기술이 구식이 되는 시대다. 이런 흐름 속에서 의료진에게 요구되는 역량은 세 가지다. 첫째, 적응력.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학습하고 업무에 적용할 수 있는 능력. 둘째, 비판적 사고. AI의 결과를 맹신하지 않고 임상적 맥락에서 검증할 수 있는 능력. 셋째, 소통 능력. 복잡한 의료 정보를 환자에게 쉽게 설명하고 공감하며 신뢰를 쌓는 능력이다.
지금 우리는 단순한 기술 변화가 아닌, 문명의 전환점에 서 있다. 언어의 출현이 인류 문명의 시작이었다면, 이제는 AI와의 협력이 새로운 문명을 열어가고 있다. 의료계도 이 흐름에 주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기술은 빠르게 진화하지만, 인간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 본질을 지키며 기술과 협력할 때, 우리는 더욱 따뜻하고 정교한 의료를 실현할 수 있다.
(글 : 김국주 헬스인뉴스 아카데미 대표강사)
임혜정 하이뉴스(Hinews)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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