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news 하이뉴스] 충청남도의 한 반도체 장비 부품업체에서 생산관리 업무를 맡고 있는 A씨는 최근 발표된 수출 증가 통계를 보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뉴스에서는 반도체 수출이 두 자릿수 증가라고 하지만, 우리 공장은 풀가동과 거리가 멀다. 단가는 압박받고 있고 금융비용은 계속 오릅니다. 매출은 늘었다는데 투자 여력은 어렵다”
그가 말하는 체감 경기는 정부 발표 수치와는 온도가 크.
정부는 2월 1일 발표한 ‘1월 수출입 동향’ 자료에서 수출 회복세를 경기 반등의 분명한 신호로 평가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당시 “수출이 9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가며 우리 경제의 성장 모멘텀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반도체 수출 증가율이 두 자릿수를 넘어 일부 품목에서는 세 자릿수 증가세를 기록한 점을 강조하며 “주력 산업 경쟁력이 글로벌 시장에서 다시 확인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획재정부는 역시 “수출을 중심으로 완만한 경기 회복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기획재정부는 2026년 성장률을 2% 안팎으로 전망하면서 대외 부문 개선이 점차 내수로 확산될 것이라는 기대를 내비쳤다. 무역수지 흑자 확대와 반도체·자동차 수출 증가를 긍정적 지표로 제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시기 내수 지표의 흐름은 다르다. 정부가 수출 증가를 경기 회복의 근거로 제시하는 동안, 민간소비는 여전히 완만한 회복 수준에 머물러 있다. 통계상 소비 증가율은 1%대 초반에 그치고 있으며, 서비스업 일부 업종을 제외하면 체감 소비 심리는 크게 살아나지 못했다. 설비투자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반도체 대기업의 특정 설비 증설을 제외하면 제조업 전반의 신규 투자 계획은 신중 모드다. 글로벌 수요의 변동성, 환율 리스크, 금리 부담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중견·중소기업들은 공격적인 확장 대신 현금흐름 관리에 집중하고 있다. 일부 업종에서는 “수출이 늘어도 단가 인하 압박이 심해 수익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설비 확대를 미루고 있다는 전언도 나온다.
건설투자는 더욱 뚜렷한 부진을 보인다. 부동산 경기 둔화와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의 경색, 미분양 물량 증가 등이 겹치며 신규 착공이 감소했다. 건설업은 고용 유발 효과가 큰 산업이라는 점에서, 이 부문의 위축은 내수 전반에 파급력이 크다. 수출이 늘어도 건설 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면 지역 경제와 자영업, 중소 서비스업으로 이어지는 소비 순환 고리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임금 지표도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 수출이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하는 동안 제조업 평균 임금 상승률은 3~4% 수준에 머물렀다.
수출 호황이 곧바로 고용 확대나 임금 개선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충분히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지난달 24일 오후 7시께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4공장(P4) 현장에서 건설 노동자들이 퇴근을 하고 있다.
"수출 지표에 의해 경기변동 과도하게 설명"
이 같은 괴리는 최근 발표된 거시경제 연구에서도 구체적으로 지적된다.
2025년 9월,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연구진과 국내 거시경제학자들이 공동으로 작성해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워킹페이퍼로 공개한 ‘한국 거시경제 통합데이터를 활용한 경기 변동 구조 분석’은 1980년대 이후 80여 개 거시 변수 장기 시계열을 통합 구축해 수출과 내수의 경기 기여도를 계량적으로 분석했다.
연구진은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한국의 경기 변동은 국내 소비와 투자 지표보다 수출 변수에 의해 과도하게 설명되는 경향을 보인다. 수출 중심 수요 구조는 단기적으로 높은 성장률을 가능하게 하지만, 글로벌 산업 충격이 발생할 경우 거시경제 변동성을 확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특정 산업에 대한 수출 집중도가 높아질수록 국내 수요 회복의 복원력은 제약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수출 우위 구조가 고착화될 경우 경기 하강 국면에서 내수의 완충 기능이 충분히 작동하지 않을 위험이 존재한다.”
논문은 분산분해 분석과 구조적 충격 모형을 통해 경기 설명력 가운데 수출 요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구조적으로 높다는 점을 제시했다. 결론 부분에서도 연구진은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수출이 성장의 핵심 동력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나, 내수 기반이 동반 강화되지 않을 경우 성장의 지속 가능성과 안정성은 제약될 수 있다”
해외 연구도 비슷하다. 지난 2025년 5월, 미국의 산업조직 분야 경제학자들이 국제 학술지에 게재한 ‘수출 강도와 생산성 간 비선형 관계에 관한 연구’는 기업 단위 패널 데이터를 활용해 수출 참여 수준과 생산성 변화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논문에서 연구진은 다음과 같이 밝히기도 했다.
“기업의 수출 참여는 초기 단계에서 생산성 향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수출 의존도에 도달할 경우 그 효과는 점차 한계 체감하는 경향을 보인다. 수출 확대 자체가 산업 전반의 생산성 향상이나 광범위한 고용 확대로 자동 연결된다고 보기 어렵다. 특히 대기업 중심의 수출 증대가 중소 협력업체나 내수 부문으로 자연스럽게 확산된다는 가정은 실증적으로 충분히 확인되지 않는다. 정책 설계 과정에서 수출 선도 기업의 성과가 경제 전체로 자동 파급된다고 전제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수출 9개월 연속 증가라는 기록은 긍정적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그 증가가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는지, 고용과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반도체처럼 자본집약적 산업이 수출을 주도할 경우 생산 증가가 곧바로 대규모 고용 확대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협력업체 단가 인하 압박, 글로벌 공급망 재편, 환율 변동성 등은 중소기업의 수익성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충남 아산의 한 자동차 부품 협력업체 대표 B씨는 “완성차 수출이 늘었다고 해도 우리 납품 단가는 계속 깎이고 있다. 직원 임금을 크게 올릴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울 구로구의 전자부품 중소기업 대표당 C씨 역시 “매출은 통계상 증가했지만 원가 상승과 환율 변동성 때문에 순이익은 생각보다 늘지 않았다. 신규 채용은 아직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A씨는 이런 구조적 간극을 현장에서 체감한다고 말한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이렇게 토로했다.
“우리는 항상 수출이 늘면 경제가 좋아진다고 배웠다. 뉴스에서도 그렇게 말한다. 그런데 왜 직원들은 경기가 나아졌다고 느끼지 못할까?. 잔업이 조금 늘어난다고 해서 생활이 확 달라지는 건 아니다. 대출 이자는 그대로이고, 물가는 여전히 부담스럽다. 회사도 설비를 크게 늘리거나 사람을 더 뽑겠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