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news 하이뉴스] 환자가 병원 홈페이지에서 “AI 진단 시스템 도입”이라는 공지를 본다면 무엇을 느낄까. 호기심보다는 불안감이 앞설 가능성이 높다. '기계가 나를 진찰하는 건가', '의사는 뭘 하는 거지', '정말 안전할까' 같은 의문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갈 것이다.

이런 현실이 바로 병원들이 마주한 스토리텔링의 딜레마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도 환자가 이해하지 못하고 신뢰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병원이 여전히 '기술 중심'의 메시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성공적인 병원 AI 스토리텔링은 복잡한 알고리즘을 환자가 공감할 수 있는 치유의 이야기로 바꾸는 데서 시작된다.

전통적인 병원 브랜드는 권위와 신뢰에 의존했다. 명망 있는 의사, 최신 장비, 성공적인 수술 사례가 주요 소재였다. 하지만 AI 시대의 스토리텔링은 더 복잡하고 입체적인 서사를 요구한다.

김국주 헬스인뉴스 아카데미 대표강사
김국주 헬스인뉴스 아카데미 대표강사
메이요 클리닉의 뇌졸중 환자 소피아 사례가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들은 ‘AI가 22분을 단축했다’는 기술적 성과를 그대로 전달하지 않았다. 대신 남편 바비가 8시간 동안 아내의 손을 잡고 기다렸던 인간적 드라마와, 허혈성 뇌졸중 치료에서 22분 단축으로 구해낸 4200만 개의 뇌세포라는 과학적 사실을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로 엮어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소피아의 실제 사례는 출혈성 뇌졸중이었지만, 4200만 개 뇌세포 수치는 허혈성 뇌졸중 기준이라는 것이다. 이는 사실관계의 오류가 아니라 스토리텔링의 정교함을 보여준다. 인간적 드라마와 과학적 증거를 전략적으로 결합해 AI의 가치를 설득력 있게 전달한 것이다.

이런 접근법은 병원 AI 스토리텔링의 새로운 공식을 제시한다. 기술적 성과 + 인간적 드라마 + 구체적 결과 = 완전한 스토리. 각 요소가 단독으로는 불완전하지만, 세 가지가 결합될 때 환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강력한 서사가 완성된다.

국내 병원들의 AI 도입은 활발하지만 스토리텔링에는 아쉬운 점이 많다. 한림대학교 성심병원의 낙상 예측 시스템은 “간호사 업무 감소”에, 서울아산병원의 음성 인식 시스템은 “진료기록 정확도”에 초점을 맞춘다. 건양대학교병원의 ‘케어챗’이나 용인세브란스병원의 AI 도슨트 키오스크도 마찬가지다.

이런 메시지들은 ‘업무 효율성’에만 머물러 있어 환자들에게 “AI가 내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라는 질문에 명쾌한 답을 주지 못한다. 예를 들어 AI 낙상 예측 시스템은 “안전하고 평화로운 입원 생활”이라는 강력한 환자 경험 서사로 연결될 수 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이 기술이 만들어내는 긍정적 변화를 '이야기'로 만들어낼 전략의 부재에 있다.

병원이 AI 스토리텔링에서 직면하는 독특한 도전은 환자와 의료진이라는 서로 다른 두 독자층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환자는 ‘나의 치료’에 관심이 있고, 의료진은 ‘업무 효율성’에 초점을 맞춘다.

환자 대상 메시지는 ‘이 기술이 당신의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결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AI의 복잡한 작동 원리보다는 조기 진단으로 생명을 구한 이야기, 정확한 치료로 일상을 되찾은 환자의 경험담이 핵심이다.

의료진 대상 메시지는 ‘AI가 진료 기록 작성 시간을 줄여 환자와 더 많은 대화 시간을 확보했다’는 식으로 전문성과 효율성을 강조한다. 중요한 것은 이 두 메시지가 상충하지 않고 서로 보완하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환자는 '더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다'고 느끼고, 의사는 '더 의미 있는 진료를 할 수 있다'고 인식할 때 성공적인 스토리텔링이 완성된다.

과거 병원 콘텐츠가 '일반적인 환자‘를 대상으로 했다면, 이제는 AI를 활용해 개별 환자 상황에 맞춤화된 스토리 제작이 가능해졌다. 당뇨 환자에게는 혈당 관리 성공 사례를, 심장병 환자에게는 심혈관 건강 회복 이야기를 각각 다른 톤으로 제작할 수 있다.

병원의 AI 기술은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함을 가지고 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과정’보다는 ‘결과’에 집중하는 것이다. ‘AI가 어떻게 영상을 분석하는가'보다는 ’덕분에 놓칠 뻔한 초기 암을 발견할 수 있었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복잡한 딥러닝 알고리즘을 ’수많은 의료 사례를 학습한 경험 많은 전문의의 직감‘으로 설명하는 친숙한 비유도 효과적이다.

실제 환자의 치료 경험을 브랜드 스토리로 변환할 때는 3단계 구조가 효과적이다. 첫째, 문제 상황의 제시다. 환자가 처한 의료적 위기나 건강상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둘째, AI 개입 과정이다.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이 환자에게 미친 직접적 영향에 초점을 맞춘다. 셋째, 결과와 의미다. 단순한 의학적 성공을 넘어 환자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보여준다.

실제 환자 사례를 활용할 때는 환자의 명시적 동의와 철저한 개인정보 비식별화 처리가 필수다. 대부분의 의료 데이터는 가명정보에 해당하므로 추가적인 보안 조치가 필요하다. AI가 도움을 준 모든 콘텐츠는 반드시 해당 분야 전문의의 의학적 정확성 검토와 법적 준수 여부 확인을 거쳐야 한다. 특히 환자 경험 사례는 의료광고 관련 의료법 위반에 주의해야 한다.

병원 브랜드 스토리텔링의 미래는 더욱 개인화되고, 상호작용적이며, 실시간으로 진화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 기술과 결합돼 더욱 몰입감 있는 스토리텔링 경험을 제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변하지 않을 것이 있다. 바로 진정성 있는 인간의 경험이 가진 힘이다. AI는 콘텐츠 제작을 도와주는 강력한 도구지만, 진짜 환자의 진솔한 회복 스토리를 대체할 수는 없다. 성공적인 병원 브랜드는 AI의 효율성을 통해 더 많은 환자들의 치유 경험을 발굴하고, 이를 감동적인 이야기로 전달함으로써 환자들의 마음속에 깊은 신뢰를 구축하는 브랜드가 될 것이다.

(글 : 김국주 헬스인뉴스 아카데미 대표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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