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news 하이뉴스] 황색 바탕에 붉은 형상이 놓이면 우리는 그림을 읽기 전에 부적을 떠올린다. 색만으로 오래된 믿음의 형식이 소환되는 것이다. 스티븐 리가 제시한 “모든 그림은 부적이다”라는 문장은 바로 그 순간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이 작업을 샤머니즘이나 종교미술로 분류하면 작품의 방향을 거꾸로 읽게 된다. 그가 겨누는 것은 부적의 효험이 아니라 효험이 있는 듯 보이게 만드는 이미지의 권위다.
사진=금보성아트센터 제공
전통 부적은 재앙을 막거나 복을 불러오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황색 종이와 붉은 기호에는 그 목적이 결합되어 있었다. 스티븐 리의 이미지에서 색은 그 기억을 불러오지만, 전통 부적의 기능을 이어받지는 않는다. 황색은 인물과 기호가 놓이는 넓은 바탕이 되고 붉은색은 형태와 움직임을 만드는 주된 색이 된다. 이처럼 제한된 색채로 시리즈 전체를 묶는 방식은 주술적 해석보다 현대회화의 색채 실험으로 접근할 때 더 분명해진다. 엄밀히 말해 황색과 적색을 사용한 구상 이미지를 한국 미술사의 특정 흐름인 ‘단색화’와 동일시할 수는 없다. 다만 색을 극도로 절제해 화면의 통일성과 밀도를 높인다는 점에서 단색적 접근을 논할 수 있다.
제시된 이미지에는 예수와 부처, 세종대왕과 거북선, 인공지능 로봇과 한옥 등이 차례로 등장한다. 서로 다른 시대의 형상에 같은 색채를 적용하는 순간, 관객은 그 대상들이 본래 지녔던 의미와 새 화면에서 맡은 역할을 동시에 보게 된다. 십자가는 종교적 기억을, 거북선은 역사적 기억을, 로봇은 미래에 대한 상상을 불러온다. 그러나 어느 이미지도 여기서 기원을 이루어 주는 부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람들이 형상에 의미와 힘을 부여하는 방식을 드러내는 대상이 된다.
작가는 이미지를 점묘의 방식으로 구축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이 시리즈의 장르를 ‘점묘화’라고 부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점은 화면을 만드는 방법이고, 작품이 무엇을 묻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더욱이 미술사에서 쇠라의 점묘법은 서로 다른 색의 작은 점을 배치해 눈에서 색이 섞이도록 하는 광학적 실험과 연결된다. 스티븐 리의 작업에서 주목할 것은 그 계보를 그대로 잇는지보다, 작은 단위의 반복으로 관객에게 익숙한 얼굴과 상징을 다시 세운다는 점이다. 가까이에서는 제작의 단위가 보이고, 멀어지면 하나의 권위 있는 이미지가 나타난다. 권위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화면이 스스로 보여주는 셈이다.
이 지점에서 스티븐 리는 “모든 그림은 부적이다”는 역설이 된다. 부적처럼 보이는 색과 구성을 사용하면서 부적의 힘을 보증하지 않는다. 오히려 묻는다. 우리는 왜 특정한 색 앞에서 신비를 기대하는가. 반복되는 기호를 보면 왜 뜻을 알기도 전에 권위를 느끼는가. 익숙한 성상이나 영웅의 얼굴을 다른 화면에 옮겼을 때도 그 감정은 그대로 남는가. 스티븐 리가 부수려는 ‘허위’는 부적을 간직해 온 사람들의 간절함이 아니다. 이미지의 모양만으로 어떤 효험과 진실을 보증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사진=금보성아트센터 제공
다만 이 비판이 작품에서 설득력을 얻으려면 한 가지 긴장도 감당해야 한다. 모든 대상에 동일한 붉은 원호와 장중한 구도를 부여하면, 작품이 해체하려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다시 강화할 수 있다. 예수의 고통과 반가사유상의 침묵, 로봇의 기계적 질서가 서로 다른 화면의 호흡을 가질 때 비로소 그 차이가 살아난다. 부적의 외형을 빌린 뒤 그것을 어디까지 흔들고 변형하는가. 시리즈의 성패는 그 조형적 선택에 달려 있다.
동서양 미술사에서도 이미지의 기존 의미를 빌려 새 맥락에서 되묻는 작업은 이어져 왔다. 한국의 채색화에는 삶을 보호하고 좋은 일을 바라는 그림의 역사가 있고, 서양 현대미술에는 이미 알려진 이미지를 가져와 그 의미를 바꾸는 차용의 방법이 있다. 스티븐 리의 시리즈는 이 역사들로 설명할 수 있는 지점을 지니지만, 아직 세계 미술사에 영향을 미쳤다고 단정할 단계는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영향력의 선언보다 왜 이 형식이어야 하는지를 각 그림에서 더 선명하게 증명하는 일이다.
그래서 이 작업의 장르를 한마디로 적는다면 ‘부적화’나 ‘점묘화’보다 ‘동시대 도상회화’가 적절하다. 부적은 차용한 외형을, 점묘는 제작 방법을 말한다. 도상회화는 작가가 끝내 다루는 대상, 곧 사람들이 이미지를 알아보고 믿고 다시 의심하는 과정을 가리킨다. “모든 그림은 부적이다”는 그 회화를 여는 도발적인 제목으로 남을 수 있다. 그림은 부적의 힘을 증명해서 강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림에 맡겨 온 힘을 스스로 묻게 할 때 강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