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news 하이뉴스] 의료 현장에 인공지능이 스며들면서 병원 경쟁의 본질이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뛰어난 임상 능력만으로도 환자를 끌어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환자들은 치료 결과뿐 아니라 자신에게 딱 맞춤화된 경험을 원한다. 병원 마케팅은 단순히 홍보 메시지를 전달하는 차원을 넘어섰다. 흩어진 데이터 조각들을 하나로 엮어 환자가 원하는 것을 예측하고 선제적으로 응답하는 능력, 이것이 새로운 경쟁력의 중심축이 되었다.

환자들의 기대치는 이미 다른 산업의 경험에서 형성되었다. 온라인 쇼핑에서 경험한 추천 시스템, 구독 서비스의 맞춤형 알림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병원에서도 비슷한 수준을 당연하게 여긴다. 단순히 나이와 성별로 환자를 분류하는 시대는 지났다. 인공지능은 개인의 생활 패턴과 과거 의료 이용 행태를 분석해 누가 검진을 미루고 있는지, 누가 치료 계획을 중도 포기할 가능성이 높은지를 미리 포착한다. 마케팅이 예방 의료의 일부가 되는 시점에 도달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실현하려면 마케팅 부서의 역할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 더 이상 브로슈어를 만들고 광고를 집행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임상 기록, 진료 예약 데이터, 환자 만족도 조사, 재무 정보까지 병원 곳곳에 흩어진 데이터를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해야 한다. 이렇게 통합된 데이터가 인공지능 마케팅의 연료가 된다. 많은 병원이 인공지능 도입에 실패하는 이유는 기술 자체보다 데이터 관리 체계가 허술했기 때문이다. 비싼 소프트웨어를 구매하는 것보다 데이터를 제대로 정리하고 접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먼저다.

김국주 헬스인뉴스 아카데미 대표강사
김국주 헬스인뉴스 아카데미 대표강사
국내 병원들이 마주한 가장 큰 장애물은 데이터 환경의 파편화다. 환자 정보가 여러 전자의무기록 시스템에 분산돼 있고, 각 시스템은 서로 대화하지 못한다. 한 환자의 진료 이력과 행동 패턴, 결제 정보를 한눈에 보는 것이 불가능한 구조다. 병원마다 사용하는 코드 체계도 제각각이어서 데이터를 모아도 바로 쓸 수 없다. 기계학습 모델을 훈련시키기 전에 먼저 데이터를 세척하고 표준화하는 작업에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든다.

더 심각한 문제는 데이터의 질이다. 누락되거나 부정확한 정보가 섞여 있으면 인공지능은 잘못된 결론을 내린다. 환자 생애 가치나 이탈 가능성 같은 핵심 지표를 계산해도 신뢰할 수 없게 된다. 결국 마케팅 팀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화려한 개인화 전략을 짜는 것이 아니라, 지루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데이터 정리 작업에 자원을 투입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중앙 집중식 데이터 저장소를 만들어야 한다. 단순히 데이터를 한곳에 모으는 것을 넘어, 누가 어떤 목적으로 어떤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지를 명확히 정의하는 거버넌스 체계가 필요하다. IT, 진료, 마케팅 부서가 함께 참여하는 데이터 관리 위원회를 만드는 것이 현실적인 첫걸음이다.

데이터 기반을 다졌다면 이제 인공지능을 활용해 환자 여정 전체에 개입할 수 있다. 진료 전 단계에서는 임상 데이터와 행동 패턴을 분석해 특정 검사나 예방 관리가 필요한 환자군을 선별한다. 만성질환 위험도가 높은데도 정기 검진을 받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내 맞춤형 안내를 보낼 수 있다. 이는 단순한 광고가 아니라 공중 보건 차원의 윤리적 개입이기도 하다.

진료 후에는 이탈 위험이 높은 환자를 미리 파악하고 관계 유지 전략을 펼친다. 인공지능은 다음 검진 시기를 예측하거나 치료 계획 준수율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는 환자에게 적절한 시점에 알림을 보낸다. 마케팅이 사후 관리가 아니라 선제적 예방 활동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정량 데이터만이 전부는 아니다. 자연어 처리 기술은 온라인 리뷰, 상담 전화 녹음, 소셜 미디어 댓글처럼 숫자로 표현되지 않는 환자 의견을 분석한다. 여기서 서비스 공백이 어디인지, 환자들이 어떤 점에 불만을 느끼는지, 경쟁 병원과 비교했을 때 우리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읽어낸다. 대기 시간이 길어지는 패턴을 조기에 포착해 문제가 커지기 전에 자원 배치를 조정할 수 있다.

국내 병원들에게 초기 도입 비용은 여전히 큰 벽이다. 대규모 시스템을 한꺼번에 바꾸려 하기보다는 효과를 빠르게 확인할 수 있는 작은 영역부터 시작하는 것이 현명하다. 작은 규모로 먼저 도입해 성과를 입증하고 투자 타당성을 확인한 뒤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방식이다. 정부 지원 사업을 적극 활용하면 초기 부담을 줄일 수도 있다. 의료 인공지능은 이제 국가적 과제로 인식되고 있어 병원의 계획을 공중 보건 개선과 연결하면 지원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투자 효과를 입증하려면 성과 지표를 제대로 설정해야 한다. 클릭 수나 노출 횟수 같은 피상적 수치가 아니라 재입원율 감소, 예방 진료 증가, 환자 한 명 확보에 드는 비용 감소처럼 병원 경영과 직결된 지표로 평가해야 한다.

의료 데이터는 민감하다. 규제 준수와 윤리적 사용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전략의 뼈대다. 환자 정보를 마케팅에 활용할 때는 수집, 사용, 보호 전 과정에서 최고 수준의 윤리 기준을 지켜야 한다. 동의 절차와 익명화 프로세스를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인공지능이 왜 특정 치료를 권장했는지, 왜 이 환자에게 이 메시지를 보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투명성은 환자 신뢰의 토대다. 인공지능 결과에 대한 책임 소재도 분명해야 한다. 이러한 윤리적 거버넌스는 비용이 아니라 차별화 요소다.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투명하고 윤리적인 인공지능 정책을 먼저 확립한 병원은 환자 신뢰라는 무형 자산을 얻게 된다. 신뢰는 더 높은 재방문율과 브랜드 프리미엄으로 돌아온다.

결국 인공지능 시대 병원 마케팅의 성패는 최신 알고리즘 도입 여부가 아니라 데이터 인프라를 얼마나 견고하게 만들고 윤리적 기준을 얼마나 철저히 지키느냐에 달려 있다. 개인화를 단순한 메시지 기법이 아니라 데이터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로 접근하고, 윤리적 데이터 관리를 앞장서서 실천하는 병원만이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할 것이다. 인공지능은 미래의 기술이 아니다. 데이터가 정돈되고 거버넌스가 확립된 곳에서 지금 당장 작동하는 현실의 도구다.

(글 : 김국주 헬스인뉴스 아카데미 대표강사)

저작권자 © H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