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산업과 2대주주 트러스톤자산운용의 갈등이 결국 형사 고소로까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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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광산업과 2대주주 트러스톤자산운용의 갈등이 결국 형사 고소로까지 번졌다.

이상호 기자

기사입력 : 2026-09-29 13:03

[Hinews 하이뉴스] 태광산업과 2대주주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의 갈등이 지배구조 논쟁을 넘어 형사 고소로까지 확대되면서 재계와 자본시장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태광산업은 최근 자사의 경영 및 이사회 운영을 문제 삼아 공개서한을 보낸 트러스톤자산운용 황성택 대표와 이성원 대표 등 관계자 3명을 명예훼손 및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고, 트러스톤은 회사가 제기된 의혹에 대한 실질적인 설명 대신 형사 절차를 선택했다며 맞서고 있다. 통상 기관투자자가 특정 기업의 경영과 지배구조에 문제를 제기할 경우 주주서한이나 주주총회, 이사회 등을 통해 공방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에서 이번 사안이 형사 사건으로 번졌다는 사실 자체도 상당한 파장을 낳고 있다.

이번 갈등의 중심에는 태광그룹 내부의 경영협의체가 있다. 트러스톤은 태광그룹 경영협의회가 법률상 회사의 의사결정기관이 아님에도 그룹의 주요 경영 현안에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해왔으며, 그 과정에서 태광산업 이사회가 독립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구조였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반면 태광산업은 경영협의회가 이미 2025년 8월 경영지원협의체로 명칭을 변경했고, 계열사 사이의 업무 조율과 경영 지원을 위한 조직일 뿐 이사회를 대신해 독자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리거나 계열사에 지시하는 권한을 가진 조직은 아니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논란의 초점은 협의체라는 조직이 존재했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해당 조직이 실제 회사의 경영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권한과 영향력을 행사했느냐에 맞춰지고 있다. 이사회 안건이 공식적으로 상정되기 전에 별도의 논의가 있었는지, 그 과정에서 투자나 인사 등 주요 현안의 방향이 사실상 결정됐는지, 사외이사들이 협의체와 별개로 안건을 검토하고 수정할 수 있었는지 등이 향후 사실관계를 판단하는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태광산업과 2대주주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의 갈등이 지배구조 논쟁을 넘어 형사 고소로까지 확대되면서 재계와 자본시장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태광그룹 홈페이지 갈무리
태광산업과 2대주주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의 갈등이 지배구조 논쟁을 넘어 형사 고소로까지 확대되면서 재계와 자본시장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태광그룹 홈페이지 갈무리


김기유 전 의장 해임 이후에도 이어진 협의체 운영
태광그룹의 경영협의체 논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김기유 전 경영협의회 의장의 역할과 해임 이후의 상황을 함께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의 경영 공백 기간 동안 그룹 안팎의 주요 현안에 관여했던 김 전 의장은 미등기 임원 신분으로 인사와 자금, 신규 사업 등 그룹 전반의 경영 현안을 사실상 총괄했다는 평가를 받아왔으며, 태광그룹은 2023년 8월 김 전 의장을 해임한 뒤 그가 계열사를 통해 부당한 대출을 지시하고 횡령 및 배임을 저질렀다는 취지로 검찰에 고발했다.

김 전 의장이 해임된 이후 트러스톤이 주목한 부분은 경영협의회의 존속 여부였다. 태광산업 설명에 따르면 김 전 의장이 물러난 뒤에도 경영협의회는 한동안 운영됐고, 2025년 8월에 이르러서야 경영지원협의체로 명칭이 바뀌었다. 트러스톤은 이 같은 과정을 놓고 과거 김 전 의장 시절 그룹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비공식 의사결정 구조가 명칭만 바뀐 채 이어진 것은 아닌지 확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트러스톤이 태광산업 이사진을 상대로 제기한 질의도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협의체의 운영 규정은 무엇인지, 이사회 안건이 상정되기 전에 협의체에서 별도의 논의가 있었는지, 협의체에서 결정된 내용을 이사회가 사실상 추인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지는 않았는지, 사외이사들이 협의체의 논의와 관계없이 안건을 독립적으로 검토하고 수정하거나 보류할 수 있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황성택 대표는 그동안 한국 자본시장의 저평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이해관계를 조정할 수 있는 이사회가 필요하고, 그 출발점은 이사회의 실질적인 독립성 확보라는 취지의 주장을 지속적으로 내놓은 바 있다. 이성원 대표 역시 과거 주주서한 등을 통해 이사회와 주주총회가 소수주주의 권리를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법적 책임을 지는 등기이사 외에 별도의 실권자나 비공식 조직이 주요 경영 판단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라면 이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트러스톤 측이 이번 사안에서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도 조직의 명칭이나 형식이 아니라 실질적인 권한의 문제다. 경영협의회가 경영지원협의체로 이름을 바꿨다고 해서 논란이 자동으로 해소되는 것은 아니며, 실제로 누가 투자 방향을 정하고 주요 경영 현안을 조율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사회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자료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자사주 교환사채와 대규모 투자, 이사회 판단 과정도 쟁점

경영협의체를 둘러싼 논란은 태광산업이 최근 몇 년 동안 추진한 주요 경영 의사결정과 맞물리면서 더욱 커지고 있다. 태광산업은 2024년 6월 회사가 보유하고 있던 자사주를 활용해 약 3186억원 규모의 교환사채를 발행하기로 결의했으며, 당시 활용 대상이 된 자사주는 전체 발행주식의 24.4%에 달했다. 이후 같은 해 7월에는 약 1조5000억원 규모의 투자 계획과 함께 애경산업 인수 추진 방침까지 발표하면서 자본시장에서 회사의 대규모 자금 집행과 경영 판단 배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자사주를 활용한 교환사채 발행은 당시 시장에서 적지 않은 논란을 일으켰다. 자사주는 일반적으로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소각 여부와 함께 검토되는 자산인 만큼 이를 활용해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기존 주주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놓고 시각이 엇갈렸고, 경영권과 연결된 지분구조 변화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회사의 의사결정 과정이 충분히 공개됐는지를 둘러싼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트러스톤이 관심을 갖는 지점도 결국 이사회가 어떤 과정을 거쳐 해당 안건들을 심의했느냐에 있다. 자사주 활용과 대규모 투자처럼 회사의 중장기 가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을 이사회가 독립적으로 검토했는지, 사전에 그룹 차원의 협의가 이뤄졌다면 그 협의가 단순한 의견 교환 수준이었는지 아니면 사실상 결론을 정해놓는 과정이었는지에 따라 이사회 독립성에 대한 판단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태광산업은 모든 주요 경영 결정이 이사회의 권한 아래 적법한 절차를 거쳐 이뤄졌다는 입장이다. 회사 측은 투자나 자금조달과 관련된 안건 역시 법률적 검토와 재무적 검토를 거쳤으며, 경영지원협의체는 계열사 간 협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무적인 사안을 조율하는 역할을 했을 뿐 이사회에 특정 결론을 강요하거나 독자적인 결정권을 행사한 조직은 아니었다고 설명한다.

결국 양측이 같은 자료를 두고도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 중요한 것은 실제 문서와 회의 기록이다. 협의체가 어떤 의제를 다뤘는지, 회사 내부에서 어떤 보고가 이뤄졌는지, 이사회 안건이 어떤 경로로 만들어졌는지, 사외이사들이 별도의 검토를 통해 의견을 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면 지금까지 양측이 주장해온 내용의 상당 부분이 구체적인 사실관계로 좁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상법상 사실상 이사 책임까지 이어질까

이번 분쟁이 단순한 주주와 회사 사이의 경영권 갈등으로 끝날지 여부는 상법상 책임 문제로 연결될 가능성에도 달려 있다. 현행 상법에는 회사의 업무를 집행할 권한이 없는 사람이 이사에게 업무 집행을 지시한 경우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이사와 같은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하도록 하는 규정이 마련돼 있다. 이른바 ‘사실상 이사’에 대한 책임 규정으로, 외형상 등기이사가 아니더라도 실질적으로 회사의 경영 판단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한 취지다.

다만 실제 법적 분쟁에서 이 조항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특정인이 이사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지시를 했는지, 그 지시가 실제 회사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쳤는지 등을 입증해야 한다. 기업 내부에서 비공식적으로 이뤄지는 회의와 보고, 구두 지시 등이 모두 문서로 남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실제 책임 소재를 가리는 과정은 간단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트러스톤이 회계장부와 이사회 의사록 등의 열람·등사를 요구할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공개된 공시자료만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내부 의사결정 과정과 안건 검토 경위를 직접 확인해 협의체와 이사회의 관계를 파악하겠다는 취지다. 트러스톤은 회사의 답변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 주주대표소송이나 임시주주총회 소집 청구 등 추가적인 주주권 행사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태광산업은 트러스톤이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근거로 회사의 정상적인 경영 활동에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석유화학 업황이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대규모 투자가 필요할 수 있는데, 투자와 자금조달 같은 경영 판단을 비공식 조직과 연결해 문제 삼는 방식이 경영진의 의사결정을 지나치게 위축시킬 수 있다는 논리다.

이번 형사 고소를 두고도 양측의 입장은 첨예하게 갈린다. 태광산업은 회사의 명예와 업무를 침해할 수 있는 허위 또는 사실과 다른 주장에 대해서는 법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입장인 반면, 트러스톤은 주요 주주가 회사의 지배구조와 경영 현안에 대해 질의하고 설명을 요구하는 과정 자체를 형사 문제로 가져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취지로 맞서고 있다.

결국 향후 경찰 수사와 법원의 판단 과정에서 어느 정도까지 내부 경영자료가 확인될지가 이번 분쟁의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수사 과정에서 경영협의체와 관련된 회의자료나 보고서, 이사회 안건 작성 과정 등이 확인될 경우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그룹 내부 의사결정 구조가 구체적으로 드러날 가능성도 있다. 반대로 협의체가 실제로 계열사 간 실무적인 협업과 지원에 한정된 역할을 했고 최종적인 경영 판단은 이사회가 독자적으로 내렸다는 점이 확인된다면 트러스톤이 제기한 의혹 역시 상당 부분 사실관계를 다시 따져볼 필요가 있다.

태광산업과 트러스톤의 갈등은 결국 한쪽이 제기한 의혹과 다른 쪽의 반박을 넘어, 대기업집단에서 이사회가 명목상의 의결기구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최종 의사결정 주체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둘러싼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회사의 공식 조직과 비공식 협의체 사이에 어떤 역할 분담이 있었는지, 주요 투자와 자금조달 결정이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등기이사와 사외이사들이 어느 수준의 독립적인 판단을 했는지는 앞으로 관련 자료와 수사 결과를 통해 확인될 사안이다.

주주와 회사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주장 자체가 아니라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기록이다. 태광산업이 형사 고소라는 강한 대응에 나선 만큼 향후 수사 과정이 오히려 회사 내부의 의사결정 구조를 들여다보는 계기가 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트러스톤 역시 주주권 행사를 계속 이어가겠다는 입장인 만큼 이번 분쟁은 일회성 공방으로 끝나기보다 태광산업의 지배구조와 이사회 운영 방식을 둘러싼 장기적인 논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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