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제형사재판소 제재 확대…한국 정부는 왜 침묵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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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제형사재판소 제재 확대…한국 정부는 왜 침묵하나

오하은 기자

기사입력 : 2026-10-18 12:58

[Hinews 하이뉴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국제형사재판소(ICC) 자체를 제재 대상으로 지정하면서 국제사법의 독립성과 국제법 질서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유럽 주요국과 일본 등이 미국의 조치에 반대 입장을 밝힌 가운데, 참여연대는 한국 정부도 ICC 지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미국에 제재 철회를 요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참여연대는 최근 성명을 통해 한국이 ICC 로마규정 당사국이자 현직 재판관을 배출한 국가임에도 미국의 제재에 대해 독자적인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ICC 가입국 의장단 명의의 공동 입장에 한국이 참여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국제사법기관의 독립성을 지키겠다는 정부 차원의 분명한 메시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국제형사재판소(ICC) 자체를 제재 대상으로 지정하면서 국제사법의 독립성과 국제법 질서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유럽 주요국과 일본 등이 미국의 조치에 반대 입장을 밝힌 가운데, 참여연대는 한국 정부도 ICC 지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미국에 제재 철회를 요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진은 연합뉴스 제공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국제형사재판소(ICC) 자체를 제재 대상으로 지정하면서 국제사법의 독립성과 국제법 질서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유럽 주요국과 일본 등이 미국의 조치에 반대 입장을 밝힌 가운데, 참여연대는 한국 정부도 ICC 지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미국에 제재 철회를 요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진은 연합뉴스 제공

미국은 지난 10월 9일 ICC 기관 자체를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앞서 재판관과 검사 등 개인을 대상으로 제재를 이어온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재판소 자체를 겨냥한 조치다. 트럼프 행정부는 ICC가 미국과 동맹국의 주권 및 이익을 위협한다는 입장을 내세워 왔다. 특히 ICC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등 이스라엘 정부 고위 인사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한 데 강하게 반발했다.

ICC는 집단살해죄와 인도에 반한 죄, 전쟁범죄, 침략범죄를 관할하는 국제재판소다. 국가 간 분쟁을 다루는 국제사법재판소(ICJ)와 달리 개인에게 중대한 국제범죄의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설립됐다. 특정 국가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무관하게 국제범죄의 책임을 규명하는 것이 핵심 역할이다.

미국의 이번 조치는 재판관 개인을 넘어 재판소의 운영과 업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파장이 크다. 국제사법기관이 정치적 압박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가 쟁점으로 떠오른 것이다. ICC와 지지국들은 제재가 재판소의 정상적인 기능을 위축시키고 국제범죄의 책임 규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반발도 이어졌다. 영국·프랑스·독일·일본 등 주요국 외무장관들은 10월 9일 공동 성명을 내고 ICC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미국의 제재에 반대하며, 제재가 재판소의 업무뿐 아니라 관계자와 그 가족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ICC 로마규정 당사국 총회 의장단도 제재 발표에 우려를 나타냈다. 의장단은 ICC와 관계자들의 독립적인 사법 기능이 방해받아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한국은 의장단 공동 입장에 참여했지만, 참여연대는 한국 정부가 별도의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참여연대가 특히 강조한 것은 한국의 국제법적 지위와 정부 대응 사이의 간극이다. 한국은 ICC 로마규정 당사국으로 국제형사사법 체계에 참여하고 있으며, 규정 성안 과정에서도 역할을 해왔다. 참여연대는 이재명 정부가 국제평화와 인도주의 원칙을 강조해 온 만큼 국제사법기관의 독립성을 위협하는 조치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명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상황도 제재의 배경으로 제시했다. 참여연대는 유엔 인권이사회 산하 독립 조사위원회가 2025년 9월 보고서에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내 행위를 집단학살로 판단한 점을 언급하며, 중대한 국제범죄에 대한 책임 규명은 국제사법기관의 본래 임무라고 강조했다. 가자지구에서 대규모 인명 피해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관련 책임자에 대한 사법적 조치를 문제 삼아 재판소를 압박하는 것은 국제법의 보편적 적용 원칙에 어긋난다는 취지다.

참여연대는 한국 정부가 미국에 ICC 제재 철회를 공식적으로 요구하고, 국제규범과 국제법 질서를 지키려는 국가들과 함께 공동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제재의 영향을 받는 ICC 재판관 등을 비롯해 국내 기관·단체·개인을 보호할 법적 수단을 검토해야 한다는 요구도 내놨다.

이번 사안은 한미관계와 국제법 수호 의무가 맞물린 외교 현안이기도 하다. 미국은 ICC의 활동이 자국과 동맹국의 이익을 침해한다고 주장하지만, ICC 지지국들은 정치적 압박이 독립적인 사법 기능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동맹 관계를 고려하는 동시에 국제조약 당사국으로서 국제사법의 독립성과 국제규범의 보편적 적용 원칙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 입장을 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참여연대는 국제규범이 강대국과 약소국, 동맹국과 비동맹국에 따라 다르게 적용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제재에 대한 한국 정부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국제법과 인도주의 원칙을 중시해 온 한국 외교의 일관성에도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참여연대는 한국 정부가 ICC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표명하고 미국의 제재 철회를 요구하는 등 국제규범 수호를 위한 외교적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오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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