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news 하이뉴스] 병원 마케팅 실무자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비슷한 고민을 듣게 된다. “데이터로 환자를 분석하는 게 중요하다는 건 알겠어요. 그런데 숫자로만 사람을 보면 환자를 상품처럼 취급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의료인으로서 지켜야 할 윤리와 성과를 내야 하는 현실 사이에서 느끼는 갈등이 그대로 묻어난다.

그런데 과연 데이터는 환자를 차갑게 대하는 도구일까. 오히려 데이터는 환자가 우리에게 말을 거는 방식 그 자체가 아닐까. 환자는 검색어로, 클릭으로, 머문 시간으로 이미 자신의 불안과 기대를 표현하고 있다. 데이터는 병원이 환자를 분석하는 도구가 아니라, 환자가 병원에게 보내는 언어다.

40대 남성 환자가 밤 11시에 허리 통증을 검색한다. 이것은 말이다. “낮 동안 참았지만 이제는 뭔가 해야겠어요”라는 말이다. 병원 홈페이지에 들어갔지만 5초 만에 나갔다. “여기는 내가 원하는 답이 없어요”라는 말이다. 대신 네이버 지식인에서 비슷한 증상을 겪은 사람들의 질문과 답변을 18분 동안 읽었다. "의사 선생님의 학력보다 나와 같은 사람들의 경험이 더 믿음이 가요"라는 말이다.

일주일 뒤, 예약했다. “이제 믿어볼게요”라는 말이다. 이 환자는 단 한 번도 병원에 전화로 문의하지 않았다. 말을 안 한 게 아니다. 데이터라는 언어로 계속 말하고 있었다. 검색어는 불안을, 체류 시간은 신뢰를, 이탈은 실망을, 저장은 고민을, 예약은 결심을 말한다.

김국주 헬스인뉴스 아카데미 대표강사
김국주 헬스인뉴스 아카데미 대표강사
병원 홈페이지를 열면 흔히 이런 문구를 본다. 첨단 의료 장비, 풍부한 수술 경험, 환자 맞춤 진료 시스템. 하지만 환자는 정말 이런 말을 듣고 싶어 했을까.

한 정형외과가 블로그 게시물 조회수를 분석했다. 병원이 공들여 작성한 최신 수술 기법 소개보다,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한 글은 무릎 수술 후 언제쯤 계단을 오를 수 있는지에 관한 내용이었다. 환자들은 데이터로 말하고 있었다. “선생님의 실력은 믿어요. 그런데 제 일상은 언제 돌아올까요?”

다른 소아과는 네이버 플레이스 리뷰를 분석했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는 친절함, 자세한 설명, 짧은 대기 시간이었다. 환자들은 데이터로 말하고 있었다. “전문성은 당연하고, 저는 존중받고 싶어요”

조회수 4천500회에 평균 체류 시간이 18초인 콘텐츠가 있다. 다른 콘텐츠는 조회수 650회이지만 평균 체류 시간이 3분 40초다.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일까. 당연히 후자다. 조회수가 적어도 환자가 끝까지 집중해서 읽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한 병원이 월 250만 원을 광고에 투입해 신규 환자 85명을 유치했다. 5개월 뒤 추적 조사를 해보니 재방문한 환자는 18퍼센트에 그쳤다. 반면 블로그와 유튜브 콘텐츠로 유입된 환자들은 재방문율이 52퍼센트에 달했다. 광고는 빠른 유입을 만들지만, 콘텐츠는 환자의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관계를 만든다.

재방문율 52퍼센트는 단순한 충성도를 넘어, 병원의 서비스 품질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다. 핵심 성과 지표는 과거의 성적을 매기는 점수판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이다.

AI 기반 시스템은 환자와 병원이 만나는 방식을 바꾸고 있다. 예약 관리, 복약 알림, 초기 상담을 담당하는 AI 챗봇은 밤 11시에 허리 통증을 검색하는 환자의 불안을 즉시 해소하는 접점이 된다. AI 기반 시스템을 도입한 병원들은 관리 업무가 평균 25퍼센트 줄어드는 효과를 경험한다.

마케팅 자동화 영역에서도 AI는 실시간으로 환자의 디지털 행동을 분석해 실행 가능한 전략을 제시한다. 특정 환자가 고난도 시술 관련 콘텐츠에서 2분 넘게 머물렀다면, AI는 이 환자를 잠재력 높은 리드로 분류하고 해당 의료진 소개나 예약 안내를 자동으로 제공한다.

딥러닝 기반 영상 재구성 기술을 적용한 최신 CT 장비는 방사선 노출을 최대 70퍼센트까지 줄이면서도 고해상도 이미지를 제공한다. 병원이 환자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약속을 기술로 증명하는 것이다.

데이터는 병원의 신뢰를 만드는 투명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지난 1년간 2천800명의 환자가 방문했고, 그중 74퍼센트가 재방문했습니다라는 객관적 수치는 우수한 의료 서비스라는 추상적 표현보다 훨씬 강력하다.

하지만 데이터를 다룰 때는 엄격한 법적 책임이 따른다. 의료법상 환자의 치료 경험담을 광고에 활용하는 행위는 금지되며, 허위 후기를 올리는 자문자답형 마케팅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 원 이하의 벌금 대상이다.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환자의 개인정보는 목적 달성 후 즉시 파기해야 하며, 웹사이트 방문 기록은 통신비밀보호법상 3개월 동안만 보존된다.

AI가 데이터를 분석하고, 알고리즘이 콘텐츠를 추천하는 시대다. 하지만 그 모든 기술의 중심에는 여전히 사람이 있다. 데이터를 해석하는 사람, 전략을 수립하는 사람, 환자의 언어를 이해하려는 사람.

데이터는 환자를 숫자로 환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환자를 말하는 주체로 세운다. 그들이 어디에서 불편을 느끼는지,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어떤 순간에 신뢰를 갖게 되는지 말하게 한다. 데이터는 환자의 목소리를 듣게 하는 통로다.

병원 마케팅에서 데이터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하지만 데이터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데이터는 환자의 언어이고, 그 언어를 통해 신뢰를 쌓는 도구이며,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나침반이다.

AI 시대 병원 마케팅의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경청이다. 환자가 데이터로 무엇을 말하는지, 그 언어를 얼마나 진지하게 배우려 하느냐가 병원의 미래를 결정한다. 데이터는 환자를 숫자로 보는 게 아니다. 환자가 우리에게 말을 거는 가장 정직한 언어다.

(글 : 김국주 헬스인뉴스 아카데미 대표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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