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news 하이뉴스] 중년 이후 갑자기 나타나는 망상, 성격 변화, 공격적 반응은 흔히 스트레스성 변화나 조현병 같은 정신질환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그러나 전홍준 건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 같은 돌발 행동이 실제로는 뇌 기능 저하의 초기 신호일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치매는 기억력부터 떨어진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지만, 임상에서는 기억력 저하 이전에 행동과 감정 조절 기능이 먼저 흔들리는 경우가 점점 더 주목받고 있다. 실제로 환자·가족이 처음으로 “이상하다”고 느끼는 지점도 단순한 건망증이 아닌 의심, 예민함, 감정 폭발, 강박적 행동 같은 변화라는 보고가 많다.
특히 ‘물건을 훔쳐갔다고 확신하는 망상’, ‘전에는 없던 의심과 난폭한 반응’, ‘집 안에 쓸모없는 물건을 쌓아두는 습관’은 초기에 흔히 관찰되는 행동 변화다. 전 교수는 “이런 증상은 우연한 성격 변화가 아니라 뇌 전두엽·측두엽 기능 저하와 관련된 경우도 있어 무심히 지나쳐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중년 이후 갑작스러운 망상·성격 변화는 정신질환이 아닌 초기 치매 신호일 수 있어 조기 감별이 중요하다. (사진 제공=클립아트코리아)
◇정신질환과 비슷해도 경과는 다르다... 신경퇴행성 변화가 관여
문제는 초기 치매 행동 증상이 조현병, 양극성 장애, 강박장애와 시각적으로 유사해 보인다는 점이다. 하지만 전 교수는 “중년 이후 갑자기 발병한다는 점, 생활 기능이 함께 떨어진다는 점, 감정 조절이 급격히 불안정해진다는 점이 치매와 정신질환의 중요한 차이”라고 설명한다.
치매 초기에는 여러 인지 영역이 미세하게 흔들리기 때문에 가족이 “예전과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다. 반면 정신질환은 발병 시기, 증상 조합, 약물 반응 패턴이 다르다.
최근 진단 기술이 발전하며 이러한 감별은 더 정교해지고 있다. 뇌 MRI·PET-CT에서의 조기 변화, 혈액 기반 바이오마커, 정교한 신경인지검사 패턴 분석 등이다.
이들은 기존에 ‘성격 문제’ 정도로 여겨지던 증상 뒤에 뇌 기능 저하가 존재한다는 근거를 제공하면서 진단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전홍준 건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오진 시 치료 방향도 달라져... 항정신병약 장기 투여는 악화 위험
전 교수는 치매 초기 행동 증상이 정신병적 장애로 오해돼 치료 방향이 잘못 설정되는 현실을 우려한다. 그는 “원인이 치매인데 항정신병약만 사용하면 부작용이 커지고, 오히려 기능 저하가 더 빠르게 진행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치매 행동 증상은 뇌 신경망의 진행성 변화가 원인인 만큼, 치료도 근본 원인에 맞춰야 한다.
최근에는 알츠하이머병의 핵심 병리인 아밀로이드 단백질을 표적하는 항체치료제가 도입되면서, 조기 진단의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
이 치료제는 일부 환자에서 질병 진행 속도를 늦추는 역할을 할 수 있어, 초기 치료 개입의 임상적 의미가 확대되고 있다.
전 교수는 “치매를 조기에 발견하면 비약물적 접근과 약물치료 모두에서 선택지가 넓고 효과도 유의미하다”고 설명했다.
◇‘갑자기 변했다면’ 성격 탓 아닌 뇌 변화... 가족의 관찰이 단서 된다
중년 이후 돌발적 행동 변화는 단순한 스트레스 반응이나 성격 문제로 보기 어렵다.
전 교수는 “가족이 가장 먼저 변화를 알아채지만, ‘성격이 예민해졌나 보다’, ‘일시적인 스트레스겠지’라고 넘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뇌 기능 변화는 일상의 작은 습관 변화, 의사결정 방식의 흔들림, 감정 조절 어려움처럼 드러나는 경우가 많아 가족의 관찰이 매우 중요하다.
전 교수는 “바뀐 행동을 부정적으로 해석하기보다 원인을 평가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정확한 진단은 이후 치료 전략과 삶의 질을 결정짓는 중요한 시작점”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