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news 하이뉴스] 반려동물의 구강은 단순히 씹는 기관이 아니다. 강아지와 고양이, 즉 반려견과 반려묘에게 구강은 전신 건강과 직결되는 중요한 관문이다. 그러나 보호자가 직접 들여다보기 어렵고, 통증을 쉽게 표현하지 않는 반려동물의 특성 때문에 치과 질환은 항상 뒤늦게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 동물병원에 내원하는 반려동물 치과 질환 중 상당수는 이미 만성 단계로 진행된 경우가 많으며, 그 출발점에는 대부분 치석이 자리하고 있다.
치석은 치아 표면에 남은 음식물 찌꺼기와 세균이 결합해 형성된 치태가 침 속 무기질과 만나 굳어진 상태를 말한다. 치석 표면에는 수많은 세균이 서식해 잇몸을 지속적으로 자극한다. 이로 인해 염증을 유발해 치과 질환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가장 흔하게 관찰되는 질환은 치은염이다. 치은염은 잇몸이 붓고 붉어지며, 양치나 식사 중 출혈이 나타난다. 이 단계에서는 비교적 통증이 크지 않아 보호자가 놓치기 쉽다. 만약 계속 방치될 경우 염증이 치아 뿌리쪽으로 진행돼 치주염으로 이어진다. 치주염은 치아를 지지하는 치조골이 파괴되는 질환으로, 치아 흔들림, 심한 구취, 만성 통증을 동반한다. 한번 손상된 치조골은 자연 회복이 어렵기 때문에 조기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경훈 광교 이리온 동물병원 원장
강아지에게는 치은염, 치주염 외에도 치근단농양이 자주 발생한다. 치근단농양은 치아 내부 감염이 뿌리 끝까지 진행돼 고름이 차는 상태로, 얼굴 한쪽이 붓거나 눈 아래 구멍이 생기는 증상이 보여 단순 안과 질환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 치아 내부와 턱뼈까지 영향을 미치는 심각한 질환으로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역시 장기간 방치된 치석과 치주염이 핵심 요인이다.
고양이의 경우 치과 질환 양상이 조금 다르다. 반려묘에게 특히 흔한 질환이 바로 구내염이다. 고양이 구내염은 잇몸뿐 아니라 입안 점막 전체에 염증이 퍼지는 만성 질환으로, 심한 통증 때문에 식사를 거부하거나 침을 과도하게 흘리는 증상을 보인다. 단순 염증을 넘어 면역 반응과도 깊이 연관돼 있으며, 치석과 세균 자극이 염증을 악화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다.
또 하나 반드시 짚어야 할 고양이 치과 질환은 치아흡수성병변이다. 이는 치아 구조가 내부에서부터 서서히 파괴되는 질환으로, 초기에는 외관상 정상처럼 보이기 때문에 발견이 어렵다. 그러나 진행될수록 극심한 통증을 유발하며, 음식 섭취 시 고통스러운 반응을 보이거나 한쪽으로만 씹는 행동이 나타난다. 치아흡수성병변 역시 정확한 원인은 아직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지만, 만성 염증과 치석, 구강 내 세균 환경이 주요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반려동물의 다양한 치과 질환은 각기 다른 이름과 증상을 가지고 있지만, 공통된 출발점은 치석이다. 치석은 단순히 미관상의 문제가 아니라, 세균 저장소이자 만성 염증의 근원이다. 더 큰 문제는 이 염증이 구강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구강 내 세균은 혈관을 통해 전신으로 퍼질 수 있으며, 심장, 신장, 간 등 주요 장기에 부담을 준다. 반려견과 반려묘의 만성 신장질환이나 심장 질환 관리 과정에서 구강 상태를 함께 점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치석은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많은 보호자가 스케일링만 떠올리지만, 그 이전 단계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양치질이다. 양치질은 이미 굳어진 치석을 제거하는 방법은 아니지만, 치태 단계에서 세균과 음식물 찌꺼기를 제거해 치석 형성을 늦추는 가장 기본적인 관리법이다. 반려동물 전용 치약과 칫솔을 사용해 하루 한 번, 최소 주 3회 이상 시행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특히 어린 강아지와 고양이 시기부터 양치 습관을 들이면 성묘, 성견이 된 이후 스케일링 주기를 늦출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보호자가 완벽한 양치 관리를 유지하기는 어렵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스케일링이다. 스케일링은 전신 마취 후 스케일러를 사용해 치아 표면과 잇몸 아래에 붙은 치석을 제거하는 치료다. 단순히 보이는 치아만 닦는 것이 아니라, 치주 포켓 내부의 치석과 세균까지 정리하는 것이 핵심이다. 스케일링을 통해 염증의 원인을 제거해야만 치은염과 치주염의 진행을 막을 수 있다.
스케일링은 예방 목적의 치료이자, 이미 발생한 치과 질환의 악화를 막는 중요한 관리 수단이다. 특히 고양이 구내염이나 치아흡수성병변이 있는 경우, 스케일링과 정밀 치과 검사는 이후 치료 방향을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치과 방사선 촬영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치아 뿌리 상태를 확인하는 과정 역시 매우 중요하다.
반려동물의 치과 질환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치석이 쌓이고, 염증이 반복되며, 통증이 누적되는 긴 과정을 거쳐 드러난다. 모든 반려동물의 구강 건강 관리는 선택이 아니라 기본이다. 일상에서는 양치질로 치석 형성을 줄이고, 정기적인 동물병원 검진과 스케일링을 통해 치과 질환을 조기에 차단하는 것, 이것이 반려견과 반려묘의 삶의 질을 지키는 가장 현실적이고 확실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