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전철, 한국 주식시장은 피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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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전철, 한국 주식시장은 피할 수 있을까

한국 코스피 5000 시대와 정치적 선택

이상호 기자

기사입력 : 2026-01-24 11:36

[Hinews 하이뉴스] 1980년대 후반 대만 증시는 아시아 자본시장 역사에서 가장 극단적인 과열을 겪은 사례로 남아 있다. 당시 대만 경제는 수출 호황과 경상수지 흑자를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고, 시중에는 풍부한 유동성이 공급되고 있었다. 이 자금은 부동산과 예금을 거쳐 대거 주식시장으로 유입됐다. 1986년 약 1,000선 수준이던 가권지수는 불과 2년 반 만에 1만 선을 돌파하며 약 10배 가까이 급등했다.

주가 상승 속도는 실물경제와 기업 실적의 증가 속도를 크게 앞질렀다. 1988년 기준 대만의 상장 기업 수는 188개에 불과했지만, 증권사 수는 400곳을 넘었다. 투자 대상은 제한적인 반면 거래 창구는 과도하게 늘어났고, 증권 계좌 개설과 주식 거래는 사회 전반으로 확산됐다. 직장인과 자영업자, 학생까지 단기 차익을 노리고 주식시장에 뛰어들었으며, 주식 투자는 장기 투자 수단이 아니라 일상적인 투기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당시 대만 증시는 거래 규모와 회전율에서도 이례적인 양상을 보였다. 하루 거래대금이 국내총생산(GDP)에 근접하는 날이 이어졌고, 주식 보유 기간은 수일에서 수주 단위로 짧아졌다. 기업 가치나 재무 상태보다 주가 흐름과 소문, 단기 수익 가능성이 투자 판단의 기준이 되는 현상이 광범위하게 나타났다. 시장 내부에서는 과열에 대한 경고가 반복됐지만, 주가지수 급등은 경제 성장의 성과로 인식됐고 정치권과 정책 당국은 적극적인 제동에 나서지 않았다.

전환점은 1988년 가을이었다. 대만 정부는 1989년부터 상장 주식에 대해 과세를 도입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주식 양도차익에 세금을 부과해 과도한 투기 수요를 조정하겠다는 취지였다. 당시까지 대만은 주식 거래 단계에서 세금을 부과하는 거래세 중심의 과세 체계를 유지해 왔고, 개인 투자자의 주식 양도차익에 대한 직접 과세는 없었다.

과세 방침이 발표되자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이미 기대와 투기 심리가 극단적으로 누적된 상태에서 나온 과세 예고는 투자 심리를 급격히 뒤집는 계기가 됐다. 대규모 매도 물량이 출회됐고, 상승 흐름은 단기간에 붕괴됐다. 이후 대만 증시는 장기간 침체 국면에 들어섰으며, 급등기에 시장에 유입됐던 개인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입었다. 증시 충격은 소비 위축과 실물경제 둔화로 이어졌다. 대만 사례는 자산시장 과열 국면에서 정책의 내용보다도 대응 시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이 같은 사례는 최근 한국 주식시장의 흐름과 맞물려 다시 언급되고 있다. 지난 22일 코스피 지수는 사상 처음으로 5,000선을 돌파했다. 그동안 주식시장 상황을 이유로 금융과세 정상화를 미뤄왔던 정치권의 논리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운 국면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2024년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당시 정치권의 설명은 분명했다. 금투세 도입의 타당성을 부정할 명분은 없지만, 주식시장 침체 국면에서 금융투자 소득에 대한 과세를 시행할 경우 투자 심리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시행을 유예했다는 것이었다. 당시 이재명 대통령은 당대표 시절 “원칙과 가치에 따르면 강행하는 것이 맞지만 주식시장이 너무 어렵고, 주식투자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서 폐지에 동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도 같은 논리가 반복됐다. 자본시장 밸류업에 집중하자는 입장과 함께, 금투세에 대해서는 충분한 여건이 갖춰졌을 때 보완해 시행해야 한다는 조건부 유예론이 제시됐다. 코스피 지수가 3,000선을 넘어 안정적으로 안착하고 4,000대에 진입할 경우 시장 참여자들도 새로운 과세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공개적으로 언급됐다. 즉, 금투세 폐지는 제도가 잘못돼서가 아니라 ‘시장 상황’과 ‘여건’을 이유로 한 정치적 선택이었다.

최근 한국 주식시장의 흐름과 맞물려 다시 언급되고 있다. 지난 22일 코스피 지수는 사상 처음으로 5,000선을 돌파했다. 그동안 주식시장 상황을 이유로 금융과세 정상화를 미뤄왔던 정치권의 논리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운 국면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사진 = 연합뉴스 제공)
최근 한국 주식시장의 흐름과 맞물려 다시 언급되고 있다. 지난 22일 코스피 지수는 사상 처음으로 5,000선을 돌파했다. 그동안 주식시장 상황을 이유로 금융과세 정상화를 미뤄왔던 정치권의 논리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운 국면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사진 = 연합뉴스 제공)

“금투세 도입, 이제 시행되야”

참여연대는 이와 관련해 “코스피 5000을 돌파한 지금이야말로 공평과세의 원칙을 확립하고, 주식시장의 건강한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 정부와 국회가 금융과세 정상화 논의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면서 “지금의 주식시장은 당시와 분명히 다른 국면에 들어섰다. 지수는 빠르게 상승했고, 외국인 순매수와 시가총액 확대, 개인투자 참여 확대 등 주식시장 활성화를 목표로 한 정책의 효과가 가시화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정치권 스스로 제시했던 ‘여건’이 충족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금투세는 ‘소득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조세의 기본 원칙을 금융 투자 분야에 적용하여, 펀드·주식·채권 등 다양한 금융상품 간 불합리한 과세 체계를 정비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였다”면서 “이를 폐지한 명분이 시장 상황이었다면, 시장이 활기를 넘어 과열 신호를 보이는 지금 정부와 국회가 할 일은 금투세 도입을 포함해 금융과세 체계를 정상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책 연구기관과 학계에서도 자산시장 과열 국면에서 과세 체계의 역할은 단순한 세수 확보가 아니라, 시장 구조를 안정시키는 제도적 장치라는 점을 지적해 왔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2020년과 2021년에 제출한 금융투자 과세 관련 보고서에서는 거래 단계에서 일률적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은 시장 상황과 무관하게 작동하는 반면, 투자소득에 대한 과세는 자산 가격 상승 국면에서 자연스럽게 조정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보고서들은 금융투자소득세가 거래 자체를 억제하는 제도가 아니라, 실제로 발생한 투자 이익에만 과세하는 구조라는 점에 주목했다. 주가가 횡보하거나 하락하는 국면에서는 과세 부담이 거의 발생하지 않지만, 자산 가격이 빠르게 상승해 투자소득이 누적되는 시기에는 세 부담이 함께 증가하도록 설계돼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과열 국면에서 정책 개입이 가격 급락이나 행정 규제로 나타나는 것보다, 제도적으로 완만하게 작동할 수 있는 장치라는 평가로 이어졌다.

학계 연구에서도 유사한 분석이 제시됐다. 자본시장 과세를 다룬 국내 연구들은 금융투자소득세가 손익통산과 결손금 이월공제를 전제로 설계돼 있어, 단기 가격 변동에 일희일비하는 거래보다는 일정 기간 보유를 전제로 한 투자 행태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구조라고 분석했다. 이는 단기 매매가 집중되는 과열 국면에서 투자 패턴을 직접 통제하지 않으면서도, 시장 참여 방식에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제도적 특징으로 평가됐다.

이 같은 분석은 대만 사례와 대비되며 의미를 갖는다. 1980년대 후반 대만은 주가지수 급등에도 불구하고 제도적 대응을 미루다, 거품이 임계점에 도달한 이후에야 과세 도입을 발표했다. 그 결과 과세 정책은 시장 안정 장치가 아니라 투자 심리를 급격히 위축시키는 신호로 작용했다. 정책의 내용보다 시점이 문제였다는 평가가 뒤따른 이유다.

국내 금융투자소득세 논의 역시 제도의 옳고 그름을 떠나, 도입 시점과 시장 국면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반복돼 왔다. 금투세가 처음 설계될 당시부터 정책 보고서들은 급격한 시장 침체기보다는 자산 가격 상승과 투자소득이 누적되는 국면에서 제도가 작동할 때,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과세 원칙을 구현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코스피 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현 시점은 이러한 논의가 다시 제기되는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주식시장 활성화를 이유로 과세를 유예했던 정치적 판단의 전제가 변화한 만큼, 과열과 침체를 가리지 않고 반복되는 임시적 유예가 아니라, 시장 국면에 따라 작동하는 금융과세 체계의 정상화가 필요하다는 문제 제기가 나오는 이유다.

이상호 기자

leesh@hi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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