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news 하이뉴스] 기업이 자금이 필요할 때 쓰는 방법 중 하나가 유상증자다. 유상증자는 회사가 새 주식(신주)을 만들어서 팔고, 그 대가로 돈을 받는 방식이다. 쉽게 말해, “회사에 새 식구(신주, 새 주식)를 들여서 돈을 모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신주를 누가 살 수 있나? 먼저 가장 일반적인 방법으로 이미 회사 주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즉 기존 주주에게 먼저 새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를 주는 ‘주주배정 유상증자’가 있다. ‘회사의 주인은 기존 주주이니, 새 주식도 먼저 살 기회를 주자’는 것인데 예를 들어 어떤 주주가 회사 지분의 10%를 갖고 있다면, 새로 발행되는 주식 중에서도 비슷한 비율만큼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하지만 주주배정 방식은 모든 주주가 새 주식을 사줄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자금을 모으는데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그 결과 회사는 ‘얼마의 돈이 실제로 들어올지’를 미리 확정하기 어렵다. 목표한 자금을 한 번에 다 모으지 못할 가능성도 크고, 절차도 오래 걸린다. 주주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공시, 기준일 설정, 청약 기간 운영, 미청약 물량 처리 등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빠르면 몇 주, 길면 한두 달 이상이 소요된다.
이와 대비되는 방식이 ‘제3자 배정 유상증자’다. 제3자 배정은 기존 주주가 아닌, 회사가 정한 특정 투자자에게만 새 주식을 파는 방식이다. 이 방식의 가장 큰 장점은 속도다. 회사는 “이 투자자가 언제, 얼마를 넣을지”를 미리 정해 놓고 한 번에 자금을 받을 수 있다. 또 단순한 돈줄이 아니라, 해외 진출을 돕거나 기술 협력을 할 수 있는 전략적 파트너를 끌어들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기존 주주와 갈등도 생긴다.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하면 기존 주주의 지분은 자동으로 줄어든다. 예를 들어 전체 주식이 100주일 때 10주를 가진 주주는 회사의 10%를 소유하고 있다. 그런데 회사가 새로 50주를 만들어 특정 투자자에게만 준다면, 전체 주식은 150주가 되고 기존 주주의 지분은 약 6.7%로 줄어든다. 이를 지분 희석이라고 한다. 문제는 기존 주주에게 이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 제3자 배정으로 주식을 받는 쪽이 경영진과 이해관계를 같이할 가능성이 있다면, 유상증자는 단순한 자금 조달을 넘어 경영권을 지키거나 강화하는 수단으로 보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상법과 법원 판례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매우 제한적으로만 허용한다. 회사의 존립이나 중대한 사업 추진을 위해 꼭 필요한 경우처럼, 명확한 경영상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고려아연 사태에서 영풍과 MBK가 문제 삼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이들은 “대규모 해외 사업이 필요하다면 그 필요성은 인정할 수 있지만, 왜 기존 주주에게 먼저 기회를 주지 않았는가”라고 묻는다. 반면 회사 측은 “시간이 촉박한 글로벌 사업에서 빠르고 확실한 자금 조달과 전략적 파트너 확보가 필요했다”고 설명한다. 같은 유상증자를 두고도 해석이 극명하게 갈리는 이유다.
그럼 구체적으로 고려아연 사태로 눈을 돌려보자.
고려아연의 최근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논란을 이해하려면, 먼저 회사의 지배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고려아연의 최대 주주는 영풍으로, 전체 발행주식의 약 30~47% 수준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MBK Partners가 약 7~8% 지분을 가지고 있어, 두 그룹이 결합하면 전체 발행주식의 약 41%, 의결권 기준으로는 약 46.7%를 차지한다.
이는 단일 최대 주주 그룹으로서 회사 경영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규모다.
이런 상황에서 고려아연은 최근 미국 테네시주 클락스빌에 대규모 비철금속 제련소를 건설하기로 했다. 이 프로젝트는 아연·구리·납은 물론, 전략광물인 안티모니와 게르마늄 등 13종의 금속을 생산하는 통합 제련소로, 초기 투자금만 약 10조~11조 원에 달하는 초대형 사업이다. 회사는 빠른 착공과 안정적 사업 추진을 위해 2025년 말 제3자 배정 방식 통한 자금 조달을 결정했다. 즉, 기존 주주가 아닌 회사가 지정한 전략적 투자자, 미국 현지 합작회사(Crucible JV LLC)에만 신주를 발행한 것이다. 회사 측은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신속하고 확실하게 자금을 확보하고, 동시에 해외 진출과 기술 협력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를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기존 주주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영풍과 MBK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가 단순한 자금 조달을 넘어 경영권 방어 수단이라는 점을 문제 삼으며, 법원에 신주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이들은 법원에 “이번 신주 발행은 절차적 정당성이 부족하고, 기존 주주의 지분 희석과 경영권 훼손 우려가 크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중앙지방법원 제50민사부(재판장 김상훈 수석부장판사)는 영풍·MBK 측이 제기한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24일 기각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기각 결정을 하면서 “이 사건 신주 발행이 다른 자금조달 방안에 비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합리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면서 “이 사건 신주 발행이 진행되면 영풍 등이 당초 예상했던 고려아연 지배권 구도에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고려아연의 지배권 구도를 결정적으로 바꾼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어 “결국 이 사건 신주 발행은 상법 제418조 2항에 따라 프로젝트 추진이라는 경영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범위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며 “오로지 고려아연 현 경영진의 경영권이나 지배권 방어라는 목적을 달성하고자 이뤄진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영풍·MBK는 같은 날 입장문을 내고 “이번 절차를 통해 제기되었던 기존 주주의 주주가치 훼손 가능성, 투자 계약의 공정성에 대한 우려, 그리고 고려아연이 중장기적으로 부담하게 될 재무적·경영적 위험 요소들이 충분히 해소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에 대해서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다만 고려아연의 제련소 건설 프로젝트를 지원할 뜻은 밝혔다. 이들은 “고려아연의 최대주주로서 고려아연의 미국 제련소건설 프로젝트가 미국뿐 아니라 고려아연과 한국 경제 전반에 실질적인 ‘윈윈’의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면서 “앞으로도 고려아연의 경영이 특정 개인이나 단기적 이해가 아닌, 전체 주주와 회사의 장기적 가치 극대화를 위해 진행되도록 모든 제도적·법적 노력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모습 (사진 = 고려아연 제공)
영풍과 MBK가 원하는 것은 경영권
자 이제 궁금한 점이 생긴다. 미국 테네시주 클락스빌에 대규모 비철금속 제련소이 건설은 고려아연에 호재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왜 대주주인 영풍과 MBK는 법원까지 가면서 일을 키운 것일까?
답은 바로 경영권이다. 고려아연 경영권 갈등은 단순한 지분 경쟁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전략적 경영권 확보를 위한 일련의 움직임에서 비롯됐다. 초기 단계에서 영풍·MBK은 시장에서 공개적으로 주식을 매입하며 경영권 영향력을 높이려 했다.
반대로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은 측은 회사가 직접 자사주를 매입해 유통 주식을 줄임으로써, 기존 지배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외부 세력의 영향이 과도하게 확대되는 것을 막고자 했다. 고려아연은 자사주를 상당량 보유하고 있어 발행주식 수와 실제 의결권 기준 지분율 사이에 차이가 존재한다. 이로 인해 겉으로 드러나는 지분 비율만으로는 실제 주주총회에서의 힘의 균형을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다. 영풍·MBK 측은 발행주식 기준으로 약 41% 수준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지만, 자사주를 제외한 의결권 기준으로는 그 비중이 더 높게 계산된다. 반대로 최 회장 측 역시 단순 개인 지분뿐 아니라 특수관계자, 우호 주주, 전략적 투자자까지 포함한 의결권 결집이 관건이 된다.
이 지점에서 국민연금의 존재감도 커진다. 국민연금은 고려아연 지분 약 4~5% 수준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특정 진영에 명확히 서기보다는 기업가치와 주주가치 훼손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해 온 기관투자자다. 경영권 분쟁 국면에서 국민연금의 의결권은 어느 한쪽을 단번에 승리로 이끌기보다는, 무리한 경영권 장악 시도를 견제하는 역할을 해 왔다. 고려아연 입장에서는 단기적인 지분 경쟁보다 대규모 해외 투자와 실질적 사업 성과를 통해 기관투자자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더 중요해지는 이유다.
여기에 미국 테네시주 클락스빌 제련소 프로젝트를 둘러싼 전략적 파트너의 등장은 갈등의 무게추를 또 다른 방향으로 이동시킨다. 고려아연은 이번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미국 현지 합작법인인 Crucible JV LLC에 신주 약 220만 주, 지분 기준 약 10% 내외를 배정했다. 이는 단순 재무적 투자자가 아니라, 미국 내 전략광물 공급망 구축이라는 명확한 목적을 가진 파트너를 경영 구조 안으로 끌어들인 사례다. 미국 정부가 전략광물 확보를 국가 차원의 과제로 설정한 상황에서, 이 프로젝트는 사업성뿐 아니라 정책적 중요성까지 함께 갖는다.
이제 시선은 다음 정기 주주총회로 옮겨가고 있다. 지분율과 의결권, 기관투자자의 판단, 그리고 미국 프로젝트의 구체적 진척 상황이 맞물리면서 고려아연의 경영권 구도는 또 한 번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번 분쟁을 통해 고려아연이 단순한 국내 비철금속 기업을 넘어 글로벌 전략광물 공급망의 핵심 플레이어로 도약하려는 방향성을 시장에 각인시켰다는 점이다. 이는 경영권 갈등의 결과와 별개로, 회사 가치 평가에서 무시하기 어려운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