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변수 부상…아시아 원유 가격 하락 사이클 열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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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변수 부상…아시아 원유 가격 하락 사이클 열리나

이상호 기자

기사입력 : 2026-01-05 14:51

[Hinews 하이뉴스] 세계 원유 시장의 변방으로 밀려났던 베네수엘라가 다시 국제 에너지 시장의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세계 최대 원유 매장량을 보유한 국가라는 상징성과 달리, 생산 차질과 제재로 존재감이 약화됐던 베네수엘라 석유가 미국의 정책 변화와 지정학적 계산 속에서 재조명되면서 중국과 아시아 정유 시장 전반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약 3억 400억 배럴에 달하는 원유 매장량을 보유해 사우디아라비아를 근소하게 앞서는 세계 1위 매장국이다. 그러나 실제 생산량은 하루 약 100만 배럴 수준으로, 글로벌 생산량의 1%에 불과하다. 이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약 8% 수준이며, 생산 순위로는 세계 20위권에 머문다. 매장량의 87%를 차지하는 오리노코 벨트에서 전체 생산의 약 60%가 나오지만, 이 지역 원유의 특성이 생산 확대의 가장 큰 제약 요인으로 꼽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하기 위한 '확고한 결의' 작전 진행 상황을 참모들과 함께 지켜보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하기 위한 '확고한 결의' 작전 진행 상황을 참모들과 함께 지켜보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베네수엘라 원유는 대부분 중질유, 그중에서도 초중질유에 해당한다. 점성이 높고 유황 함량이 많아 정제 난도가 높고, 파이프라인 수송과 선적 과정에서도 희석제를 섞어야 한다. 이 때문에 고도화 설비를 갖춘 정유사만이 상업적으로 처리할 수 있으며, 생산비와 정제 비용이 상대적으로 높다. 국제 시장에서는 경질유 대비 상당한 할인 가격에 거래되지만,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정유사가 제한적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이 같은 구조적 문제는 정치·제재 리스크와 맞물리며 생산량 급감으로 이어졌다. 베네수엘라는 1970년대 하루 350만 배럴을 생산하던 주요 산유국이었고, 2010년까지만 해도 200만 배럴 수준을 유지했다. 그러나 2013년 마두로 대통령 취임 이후 국제 유가 하락, 국영 석유기업 PDVSA의 정치화, 투자 중단이 이어졌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금융 제재가 가해지면서 원유 수출과 결제 자체가 막혔다. 그 결과 생산량은 현재 수준까지 떨어졌다. 다만 2022년 말 이후 미국 정부가 셰브런의 제한적인 활동을 허용하면서 상황은 일부 변화하고 있다. 생산량은 소폭 증가했고, 베네수엘라 석유의 국제 시장 복귀 가능성도 다시 거론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트럼프 전 대통령의 마두로 체포 추진과 베네수엘라 석유시장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 의지가 더해지며, 베네수엘라는 다시 지정학적 카드로 활용되고 있다. 이는 해외 잠재 생산 옵션을 확보해 중장기적으로 에너지 가격 상승과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려는 전략적 판단으로 해석된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베네수엘라뿐 아니라 가이아나까지 동시에 관리하는 효과를 거뒀다는 평가도 나온다. 가이아나와 베네수엘라가 분쟁을 벌여온 에세퀴보 지역은 가이아나 최대 원유 생산지로, 미국계 석유기업들이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다. 베네수엘라 리스크를 통제함으로써 해당 지역의 불확실성을 낮춘 셈이다. 실제로 미국 주요 석유기업들은 미국 내 신규 유정 개발보다는 해외 자원 확보에 집중하고 있으며, 셰브런과 엑손모빌은 베네수엘라와 가이아나에서 모두 핵심 사업자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엑손모빌과 셰브런, 코노코필립스 주가가 동반 상승한 것도 이러한 기대를 반영한다.

단기적으로 이번 이슈가 국제 유가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미국의 제재가 생산량 자체보다는 항만, 선박, 결제 등 수출 경로 차단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의 원유 수출은 글로벌 물량의 약 0.7%에 불과하며, 이 중 약 80%가 중국으로 향한다. 다시 말해, 이번 사안의 직접적인 충격은 글로벌 시장보다는 중국 정유업체에 집중된다.

중국은 그동안 배럴당 10~20달러가량 저렴한 베네수엘라산 중질유를 대량으로 도입해 정유사 원가를 낮춰왔다. 특히 고도화 설비를 갖춘 국영 정유사들은 베네수엘라산을 활용해 수익성을 방어해왔다. 그러나 수출 제약이 강화되면 중국은 동일한 성상의 원유를 러시아나 중동에서 조달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원가 상승이 불가피하다. 이는 중국 내 정제 마진 압박으로 이어지고, 아시아 원유 시장 전반의 수급 구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국제 유가 상승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베네수엘라 생산이 점진적으로 회복될 경우, 미국 걸프코스트 정유사들은 저렴한 중질유를 확보해 원가를 크게 낮출 수 있다. 반면 중동 산유국들은 미국향 수출을 줄이고 아시아로 물량을 돌릴 수밖에 없다. 이는 아시아 시장 내 중질유 공급 과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최근 캐나다 중질원유가 송유관 확장을 통해 아시아 수출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는 점도 변수다.

이 같은 변화는 한국 정유업계에는 구조적인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한국 정유사들은 고도화 설비 비중이 높아 중질유 처리에 강점을 갖고 있다. 아시아 원유 공식판매가격(OSP)이 하락 국면에 접어들 경우, 원유 조달 비용은 낮아지고 정제 마진은 개선될 가능성이 크다. 단기적인 시장 변동성은 불가피하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한국과 미국 정유사가 상대적인 수혜를 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베네수엘라 석유는 단순한 산유국 이슈를 넘어,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재편과 아시아 정유 시장의 힘의 균형을 가늠하는 변수로 다시 부상하고 있다. 중국에는 부담으로, 한국에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는 이 흐름이 향후 국제 유가와 에너지 시장의 방향성을 가를 중요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이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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