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news 하이뉴스] 최고경영책임자가 사실상 일에서 손을 놓아버린 조직이 제대로 운영될까?
그런 조직에서는 두 가지 일이 발생한다. 우선 조직이 '숨만 쉬는' 상태로 유지된다. 이미 진행되던 업무는 관성에 따라 그대로 이어가지만, 해당 업무의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개선하지도, 새로운 업무를 시도하지도 않게 된다. 특히 기존 최고경영자가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운데 새 최고경영자가 내정된 경우는 더욱 그렇다. 실무자들 입장에선 신-구권력 사이 '눈치보기'를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상황을 이용해 책임 없이 이득만을 챙기려는 '체리피커'들이 생긴다. 맛있고 탐스러운 열매가 주렁주렁 열린 나무. 현 관리자는 방치하고 있고, 새 관리자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열매를 훔쳐먹어야지. 이런 생각을 갖고 덤비는 사람이 없을 리 없다.
차기 대표이사가 취임을 앞두고 있지만, 기존 대표가 버티고 있고, 이 틈을 타서 일부 이사진이 조직 분위기를 흐리고 있는 조직, 이것이 KT의 현 주소다.
우선, 통상 연말연시에 마무리되는 조직 개편과 임원 인사가 중단됐다. 경쟁사인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가 이미 지난해 말 2026년 사업 구상을 마치고 전열을 정비한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김영섭 현 대표가 자신의 임기가 만료되는 3월까지 자리를 지키겠다고 하는 상황이니, 연말연시에 인사를 하기 몹시 애매한 상황인 탓이다. 이렇게 되면, 관성적으로 하던 일만 계속하게 된다. 문제점 개선이나 새로운 임무 시도가 될 리 없다.
이런 상황에서 KT 이사진은 지난 1월 CES 참관에 이어 2월 말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참관 일정까지 강행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뉴스 등을 통해 "임기 만료를 앞둔 선출직 공무원들이 외유성 출장을 다닌다"는 등의 비판 보도를 접한 적이 있지 않은가. 그런 외유성 출장과, 이들의 일정이 뭐가 다른가. 조직 내에선 '침몰하는 배 위에서 출장만 다니는 이사회'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
이 와중에 일부 사외이사들을 둘러싼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승훈 사외이사에 대해서는 인사 청탁 및 특정 해외 위성업체 투자 압력 의혹이 불거졌고, 조승아 전 사외이사는 겸직 논란으로 노조의 사퇴 요구를 받았다. 이사회가 CEO 고유 권한인 인사권에 과도하게 개입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노조는 "거수기를 넘어 이권 카르텔로 변질됐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임기가 남은 대표이사가 합법적으로 자신의 임기를 채우겠다는 게, 무슨 문제냐고? 맞다. 법적인 문제는 없다.
다만, 그렇게 되면, 조직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하던 일만 계속하게' 된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는 게 문제다. KT는 해킹 사태 이후 약 30만명 가입자 이탈을 겪었고, 조만간 개인정보보호위원회로부터 수백억원대 과징금 처분이 예고된 상태다. 게다가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는 KT가 지난해 3월부터 7월 사이 악성코드에 감염된 서버를 발견하고도 정부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해킹 은폐’ 의혹과, 경쟁사 SK텔레콤 유심 해킹 사태를 활용해 “KT는 안전하다”는 식의 영업을 펼쳤다는 ‘고객 기만’ 의혹에 대해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다. 창사 이래 이런 위기가 또 있을까 싶다.
"위기고 뭐고 모르겠고, 계속 버티련다" 이런 사고방식으로 손 놓고 있다가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면, 오는 3월 취임 예정인 박윤영 내정자가 오롯이 모든 문제를 수습해야 한다. 경영 공백 수습, 이사회에 대한 신뢰 회복, 인사·조직 시스템 재정비, 해킹 관련 조사와 잠재된 사법 리스크 관리까지 모두 떠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사이, KT의 경쟁력은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에 밀릴 것이라는 점은 너무나도 뻔하다.
노조에서는 "KT 이사회가 전원 사퇴해야 한다"는 요구까지 나왔다. 오죽하면 이런 주장까지 나왔을까. 책임질 의사도 능력도 없다면, 차기 책임자를 돕기라도 해야 한다. 그 조차 싫다면, 발목이나마 잡지 않아야 한다. 김 대표와 현 이사회의 아름다운 퇴장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