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 있어도 아무도 몰라"…청각장애인 접근권, 의무화 전 '사각지대'

경제일반

"장비 있어도 아무도 몰라"…청각장애인 접근권, 의무화 전 '사각지대'

한난협 현장 점검 결과…설치·안내·교육 전반 부실, 11월 법 시행 후 혼란 가중 우려

함경호 기자

기사입력 : 2026-03-18 16:47

"장비 있어도 아무도 몰라"…청각장애인 접근권, 의무화 전 '사각지대'
[Hinews 하이뉴스] 오는 2026년 11월 청취보조장비 의무화 시행이 예정돼 있지만 공공시설의 현장 준비 수준이 법 시행을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한국난청인교육협회(이사장 유영설, 이하 '한난협')는 '텔레코일존 체험크루' 활동 결과를 공개하며 현장 실태 개선을 촉구했다.

체험크루는 청각장애인과 일반 시민이 함께 민원실, 공연장, 복지관, 버스정류장 등 다중이용시설에 직접 방문해 텔레코일존의 설치 여부와 실제 이용 가능성을 현장에서 점검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현장에서 드러난 실태는 충격적이었다. 시설 표지판에는 텔레코일존이 설치된 것으로 적혀 있어도 시범사업 종료와 함께 장비 운영이 끊긴 곳이 확인됐다. 실제 가동 중인 시설에서도 이용 안내판이 없고, 직원이 조작법을 몰라 장애인이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점검에 참여했던 김재덕(가명, 대구 거주 청각장애인) 씨는 "그 시설에 장비가 있다는 것을 알 방법 자체가 없었고, 직원들도 몰라서 결국 필담으로만 소통했다"며 "운영 준비 없는 제도 시행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한난협은 이번 점검에서 △낮은 설치율 △설치 공간 쏠림 △이용 안내 부재 △직원 교육 공백 △정기 점검·유지관리 시스템 미비라는 다섯 가지 문제를 핵심 과제로 지적했다. 공연장, 강의실, 대규모 민원실, 교통시설 등 이용자가 몰리는 공간에서의 음성 접근 환경 미비가 청각장애인의 사회 참여 자체를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장비 있어도 아무도 몰라"…청각장애인 접근권, 의무화 전 '사각지대'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2026년 11월부터 청취보조장비 설치가 의무화되면, 현재의 준비 부족이 그대로 노출되며 혼란이 증폭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법 시행 이후 일정 규모 이상의 공공·다중이용시설은 청취보조장비를 반드시 갖춰야 하지만, 설치 기준 이해, 예산 확보, 인력 교육 등 기본 과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채 시행일만 다가오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장총 권재현 사무차장은 "이 법의 목적은 장비를 두는 것이 아니라 청각장애인이 공공 정보에 실질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시설 안내 표준화와 직원 교육 의무화, 지속 가능한 유지관리 체계 마련이 동반되지 않으면 법 시행의 의미가 퇴색된다"고 강조했다.

한난협은 공공기관과 지자체를 향해 △설치 범위 확대 △운영 매뉴얼 정비 △정기 점검 제도화 △실태 조사 실시 △예산 선제 확보를 핵심 정책 과제로 제안할 계획이다. 체험크루 활동 역시 전국 단위로 넓혀 지속적인 현장 모니터링과 정책 제안을 병행할 방침이다.

유영설 이사장은 "공공시설에서 청각장애인이 겪는 불편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방치되기 쉽다"며 "법 시행 전까지 실질적인 준비가 갖춰지지 않으면 이번 제도 역시 또 하나의 소외를 만드는 결과로 끝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고령화에 따른 난청 인구 증가를 근거로 청취 접근성 확보가 장애인 문제를 넘어 사회 전체가 대비해야 할 과제임을 강조한다. 시민이 직접 발로 뛰는 체험 점검 모델이 이번 문제를 공론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함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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