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수출이 사상 최대 수준의 실적을 기록하며 연간 1조 달러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인공지능(AI) 산업 확산에 따른 반도체 수요 증가가 수출을 끌어올린 결과다. 그러나 수출 실적 개선이 국내 제조업 전반의 경영 회복과 고용 확대, 내수 활성화로 이어지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 호황과 다른 산업의 체감경기 사이에 온도 차가 나타나면서 국내 경제의 성장 구조를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내 수출이 사상 최대 수준의 실적을 기록하며 연간 1조 달러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인공지능(AI) 산업 확산에 따른 반도체 수요 증가가 수출을 끌어올린 결과다. 그러나 수출 실적 개선이 국내 제조업 전반의 경영 회복과 고용 확대, 내수 활성화로 이어지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 호황과 다른 산업의 체감경기 사이에 온도 차가 나타나면서 국내 경제의 성장 구조를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진은 연합뉴스 제공
산업통상부가 지난 1일 발표한 '2026년 10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액은 1152억8000만달러로 전년 동월보다 93.7% 증가했다. 월간 기준 역대 두 번째 실적이다. 올해 1~10월 누적 수출액은 9300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0.6% 늘었다. 연간 수출 1조달러 달성까지 남은 금액은 700억달러다. 정부는 11월 중 연간 수출 1조달러 돌파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수출 증가를 견인한 품목은 반도체다. 10월 반도체 수출액은 564억4000만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259.4% 증가했다. 전체 수출액의 약 49%에 해당하는 규모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이어지면서 고성능 메모리와 서버용 반도체 수요가 확대된 영향이다. 산업통상부는 “반도체의 높은 가격과 물량이 동시에 유지되면서 수출 증가세가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이 같은 수출 호황이 국내 산업 전반의 경기 개선으로 연결되고 있느냐다. 수출액은 기업이 해외 시장에서 거둔 실적을 보여주는 지표지만, 국내 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생산과 투자, 고용, 협력업체의 수익성 등 여러 경로를 거쳐 나타난다. 대기업의 반도체 수출이 늘어났다고 해서 관련 중소기업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같은 폭으로 증가하거나 제조업 전반의 채용이 확대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산업별 경기 전망에서도 차이가 나타난다. 산업연구원이 업종별 전문가 12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11월 제조업 업황 전망 전문가 서베이지수(PSI)는 102를 기록했다. 기준치 100을 웃돌았지만 전월 전망치인 113보다 11포인트 하락했다. 세부 업종별로는 반도체가 159로 높은 수준을 보인 반면 자동차는 93, 화학은 89, 섬유는 93에 그쳤다. 기계와 소재 분야도 각각 97과 95로 기준치를 밑돌았다.
수출 통계와 업황 전망이 서로 다른 흐름을 보인다는 점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0월에는 20대 주요 수출 품목 가운데 18개 품목의 수출이 증가했다. 자동차와 철강, 전기기기, 바이오헬스 등도 증가세를 나타냈다. 하지만 업종별 전문가 조사에서는 자동차와 화학 등 일부 산업의 향후 업황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했다. 수출액 증가가 산업 현장의 수익성과 향후 경기 기대까지 동일하게 개선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특히 반도체 산업의 성과가 국내 공급망에 어느 정도 전달되는지가 중요하다. 반도체 생산에는 장비와 소재, 부품, 전력, 물류 등 다양한 산업이 연결돼 있다. 생산량과 설비투자가 확대되면 관련 업체의 납품과 기술 개발 기회도 늘어날 수 있다. 그러나 공급망에 참여하는 기업마다 기술 수준과 거래 구조, 가격 협상력에 차이가 있어 수출 대기업의 실적 개선이 협력업체의 수익성으로 이어지는 정도는 달라질 수 있다.
고용 역시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반도체 산업의 설비투자가 증가하더라도 자동화와 생산성 향상이 동시에 진행되면 투자 규모만큼 신규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을 수 있다. 반도체 대기업의 실적 개선이 국내 고용시장 전체의 회복으로 연결되려면 장비·소재 기업의 생산 확대와 전문인력 채용, 지역 산업의 투자 증가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국내 경제가 반도체 호황 이후에도 성장세를 유지하려면 산업 구조의 다변화도 필요하다. 반도체에 집중된 수출 성장 동력을 전기기기와 바이오헬스, 정밀기계, 소프트웨어 등으로 넓히고 중소·중견기업이 자체 기술력을 바탕으로 공급망에서 더 높은 부가가치를 확보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단순히 수출 규모를 키우는 것보다 수출로 발생한 이익이 국내 생산과 투자, 임금과 소비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강화하는 일이 중요하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도 최근 출간된 ‘2027 한국경제 대전망’에서 반도체 호황 이후 국내 경제의 성장 방향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허 교수는 2027년 한국경제의 성패가 반도체 호황의 규모 자체보다 성과를 경제 전반으로 확산시키는 능력에 달려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수출 증가가 국내 부가가치 창출과 고용, 소비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를 회복해야 한다”면서 “사업의 방향과 투자는 기업이 결정하지만, 정부는 산업정책을 통해 '반도체 다음에 대한민국이 잘하는 것이 또 있다'는 중장기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