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의 지정학...독점에서 파동, 그리고 탈탄소 패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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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의 지정학...독점에서 파동, 그리고 탈탄소 패권까지

송소라 기자

기사입력 : 2026-07-06 12:20

[Hinews 하이뉴스] 현대 산업 사회의 골격은 석유라는 고밀도 인화성 자원의 안정적인 공급망 위에 건설되었다. 석유는 단순한 상거래용 원자재의 지위를 넘어, 글로벌 통화 질서와 군사력의 배치, 그리고 개별 국가의 거시경제적 생존 조건을 규정하는 지정학적 핵심 변수다.

■근대 석유 산업의 성립과 내연기관 체제로의 구조적 전이


석유가 자본주의 시장의 핵심 원자재로 포섭된 계기는 185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티투스빌에서 에드윈 드레이크가 감압식 유정 굴착 기술을 고안해 낸 순간부터다. 초기 석유 시장은 포획량 감소로 한계 생산 비용이 급등하던 고래 기름을 대체하는 등유 중심의 단순 조명용 시장에 불과했다. 그러나 20세기 초 플랫베드식 대량 생산 체제인 포드주의의 확산과 내연기관의 급격한 보급은 석유의 수요 곡선을 수직에 가깝게 변동시켰다. 결정적인 지정학적 전환점은 1911년 영국의 윈스턴 처칠 해군장관이 주도한 해군 군함 선박 연료의 전면 대치(석탄에서 석유로의 전환)였다. 석탄에 비해 에너지 밀도가 약 2배 높고, 급유 시간이 짧으며, 연기가 적어 전술적 우위를 제공하는 석유는 국가 안보의 핵심 전술 자원으로 격상되었다. 이로 인해 대량의 원유 확보 능력은 제1·2차 세계대전의 승패를 가르는 변수가 되었으며, 세계 경제의 헤게모니는 석탄 기반의 영국식 제국주의에서 석유 기반의 미국식 자본주의로 급격히 재편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전후 글로벌 석유 공급망을 완벽하게 통제한 것은 ‘세븐 시스터즈(Seven Sisters, 7공주)’로 명명된 초국적 거대 석유 자본 카르텔이었다. 엑손, 모빌, 소칼, 텍사코, 걸프오일 등 미국계 5개사와 영국계 BP, 영국·네덜란드 합작의 로열더치쉘로 구성된 이들은 1928년 스코틀랜드 아크나카리 성에서 비밀 생산 쿼터제와 시장 분할을 골자로 하는 아크나카리 협정을 체결하며 본격적인 독점 체제를 공고히 했다.

이들의 핵심 지대 추구 메커니즘은 탐사·채굴부터 수송·정제·유통에 이르는 가치 사슬 전체를 완벽하게 장악하는 수직 계열화였다. 이들은 중동과 중남미의 신흥 유전 지대에서 원천 채굴권을 독점한 뒤, 명목상의 공시가격을 인위적으로 낮게 책정하여 자원 보유국에 지급할 로열티와 세금을 최소화했다. 대신 정제 및 유통 단계에서 마진을 집중시키는 방식으로 부를 본국으로 송환했다. 1950년대까지 이 카르텔은 전 세계 원유 매장량의 85% 이상, 중동 지역 생산량의 99%를 통제하며 일종의 초국가적 에너지 정부로 군림했다. 자원 보유국들의 주권적 저항은 철저히 무력화되었다. 1951년 이란의 민족주의 성향 정치가 모하마드 모사데크 총리가 영국 앵글로-이रानी안 석유회사의 자산을 국유화하자, 세븐 시스터즈는 국제 유통망과 유조선 선단을 전면 보이콧하는 공조에 나섰다. 이란의 세입이 붕괴되자, 미국 중앙정보국과 영국 비밀정보부는 1953년 아약스 작전을 감행해 군사 쿠데타로 모사데크 정권을 축출하고 팔레비 왕정을 복권시켰다. 이는 자본 카르텔과 서방의 군사 패권이 결탁해 자원 민족주의를 진압한 대표적인 구조적 폭력이었다.

자원 민족주의의 결집과 유가 충격의 정치경제학

오일 메이저의 독점력은 1960년 바그다드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라크, 쿠웨이트, 베네수엘라 등 5개국이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결성하면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1970년대 들어 독립계 중소 석유회사들이 성장하고 메이저의 매장량 지배력이 60%대로 하락하자, 산유국들은 단순한 로열티 수취자에서 벗어나 가격 결정권을 직접 행사하겠다는 자원 민족주의의 전면화를 선언했다.

1973년 10월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하자, 아랍 산유국 중심의 OAPEC은 서방의 친이스라엘 노선에 타격을 주기 위해 원유 생산량을 매월 5%씩 감산하고 수출 제한을 단행했다. 1973년 10월 배럴당 3달러 선에 불과했던 아라비안 라이트의 기준 유가는 불과 3개월 만인 1974년 1월 11달러 선을 돌파하며 세 배 가까이 폭등했다. 이 유가 충격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방 자본주의의 장기 호황을 가탱해 온 저원가 구조의 종말을 고했다.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유발된 비용인상 인플레이션이 공급 능력 저하와 맞물리면서 서방 경제는 생산 감소와 고물가가 결합된 구조적 스태그플레이션에 직면했다. 특히 1971년 금태환 정지(닉슨 쇼크)로 고정환율제가 무너진 상황에서 폭등한 원유 결제 대금은 오직 미국 달러로만 지급되는 구조를 형성했다. 산유국들이 벌어들인 막대한 '페트로달러'가 다시 미국 금융 시장으로 유입되면서, 미국의 달러 패권이 역설적으로 재공고히 되는 구조적 결과가 나타났다.

1978년 12월 이란 혁명으로 친미 팔레비 왕정이 붕괴하고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반미 이슬람 신정 체제가 수립되었다. 이 과정에서 세계 원유 공급의 약 10%를 차지하던 이란의 원유 생산이 전면 중단되었으며,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의 발발은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 위험을 극대화했다. 제1차 파동의 여파로 이미 배럴당 13달러 선으로 격상되어 있던 유가는 사재기 수요와 공급 불안 심리가 겹치며 1980년 배럴당 35달러에서 최고 40달러 선까지 수직 상승했다. 전 세계는 공급망의 작은 균열만으로도 실물 경제 전체가 마비될 수 있다는 에너지 종속의 위험성을 다시 한번 체감했다.

원유 수입 의존도가 100%였던 대한민국 경제에 두 차례의 오일쇼크는 단순한 경기 위축을 넘어 외환 보유고의 고갈과 산업 기반의 와해를 촉발한 실존적 위기였다. 1973년 말 미국계 걸프와 칼텍스 등 국내 정유 공장의 지분을 쥔 오일 메이저들이 원유 배당 물량을 일방적으로 20~30% 감축하면서 한국은 극심한 에너지 배급제 상황에 직면했다. 1973년 3억 달러 수준이던 원유 수입액은 1974년 11억 달러로 1년 만에 두 배 이상 급증했다. 당시 한국의 총수출액이 44억 달러 규모였음을 감안하면, 전체 수출로 벌어들인 외화의 4분의 1을 오직 원유 대금 결제에만 투입한 셈이다. 무역수지는 1973년 10억 달러 적자에서 1974년 24억 달러 적자로 급격히 악화되었다. 원가 압박이 전 산업으로 전이되면서 1974년 국내 소비자물가상승률은 30.4%에 달했고, 도매물가는 42% 이상 치솟는 초인플레이션을 기록했다. 가동률 하락과 원자재 확보 실패로 실질 국민총소득 성장률이 급락하면서 한국 경제는 첫 번째 스태그플레이션 터널을 통과해야 했다. 더 치명적인 궤멸은 제2차 오일쇼크기였다. 1970년대 후반 박정희 정부가 자주국방과 수출 구조 고도화를 명분으로 추진한 중화학공업(철강, 비철금속, 조선, 기계, 화학, 전자) 투자는 대규모 에너지 과소비형 구조였다. 유가 폭등은 가동 비용의 기하급수적 상승과 글로벌 수요 둔화라는 쌍둥이 악재로 이어졌다. 1970년대 내내 연평균 10% 안팎의 고도성장을 구가하던 한국 경제는 1980년 실질 GDP 성장률 -5.2%를 기록했다. 이는 대한민국 현대 경제사상 최초의 역성장이었다. 1980년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다시 28.7%로 치솟았고, 실업률은 5.2%로 급증했다. 창원기계공업단지와 여천석유화학단지의 가동률은 30~40%대로 폭락했다. 대규모 설비 투자를 위해 차입한 외채의 이자 부담을 이기지 못한 중화학 기업들이 연쇄 부도 위기에 직면하면서, 대한민국은 1981년 대외 부채 324억 달러를 기록해 세계적인 부채국으로 전락했다. 마산·창원·부산 지역의 가동 중단과 노동자 임금 체불, 실직 사태는 1979년 부마항쟁의 강력한 경제적 기저 원인으로 작용했으며, 결국 유가 충격으로 촉발된 거시경제의 파국은 유신 체제의 물리적 종언과 신군부 주도의 중화학공업 투자 조정(강제 통폐합)이라는 정정 불안으로 이어졌다.
현대 산업 사회의 골격은 석유라는 고밀도 인화성 자원의 안정적인 공급망 위에 건설되었다. 석유는 단순한 상거래용 원자재의 지위를 넘어, 글로벌 통화 질서와 군사력의 배치, 그리고 개별 국가의 거시경제적 생존 조건을 규정하는 지정학적 핵심 변수다. <사진=연합뉴스>
현대 산업 사회의 골격은 석유라는 고밀도 인화성 자원의 안정적인 공급망 위에 건설되었다. 석유는 단순한 상거래용 원자재의 지위를 넘어, 글로벌 통화 질서와 군사력의 배치, 그리고 개별 국가의 거시경제적 생존 조건을 규정하는 지정학적 핵심 변수다. <사진=연합뉴스>

현대 석유 지정학의 변곡점: 셰일 혁명과 호르무즈 해협의 갈등 구조

두 차례의 구조적 유가 충격을 경험한 글로벌 경제는 중동 의존도를 분산시키기 위해 북해, 알래스카, 멕시코만 등 비OPEC 지역의 신규 유전 개발에 천문학적인 자본을 투입했다. 21세기 에너지 지형의 패러다임 시프트는 미국의 '셰일 혁명'에 의해 완성되었다. 수평시추 기술과 수압파쇄 공법의 결합은 과거 경제성이 없어 방치되던 셰일층의 원유와 가스를 대량으로 추출해 냈다. 이로 인해 미국은 하루 원유 생산량 1,300만 배럴을 돌파하며 세계 최대의 산유국으로 전환되었고, 중동의 리스크가 글로벌 유가에 미치는 물리적 전이 압력은 과거에 비해 일부 분산되었다.

그러나 중동의 지정학적 요충지, 특히 전 세계 해상 원유 수송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Strait of Hormuz)은 여전히 글로벌 공급망의 가장 취약한 '병목 지점(Chokepoint)'으로 기능하고 있다. 최근 발생한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기와 물류 제한 조치는 이를 명확히 방증한다. 이란과 서방, 그리고 걸프 산유국 간의 국지적 갈등이 격화될 때마다 이란은 해협 통항권 유조선을 나포하거나 해협 폐쇄 카드를 꺼내 들며 세계 경제를 압박해 왔다.

실제로 최근 이란 관련 리스크로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량이 급감하고 물류 동맥경화가 심화되었을 때, 브렌트유 가격은 배럴당 120달러선까지 치솟으며 과거 오일쇼크의 악몽을 재현하는 듯했다. 다만 이후 미국과 이란 간의 종전 양해각서(MOU) 추가 협상 진전, 사우디아라비아의 홍해 우회 항로 활성화, 쿠웨이트의 수출 정상화 및 UAE의 수출 확대가 맞물리며 해협 통항량은 하루 30~60척 수준으로 회복되었다. 여기에 OPEC+가 생산 쿼터를 늘리는 증산 기조로 돌아서면서 유가는 다시 70달러선 안팎으로 급격히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이는 호르무즈 해협의 물리적 지배력이 유가 등락을 결정하는 핵심 지정학적 레버리지임을 보여주는 최신 실증 사례다.

전통적인 석유 지정학적 위기가 반복되면서 인류는 석유를 대체할 구조적 대안, 즉 '에너지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석유 경제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는 크게 세 가지 축으로 전개된다.

첫째는 태양광, 풍력, 수력 등 재생에너지의 확충이다. 발전 단가의 하락(Grid Parity 도달)과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규제 장치가 결합되면서 글로벌 전력망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둘째는 수송 부문의 탈석유화를 이끄는 전기차(EV)와 배터리 산업의 폭발적 성장이다. 최대 원유 소비국인 중국 등이 석유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전기차 보급 가속화 정책을 전개하면서 석유의 구조적 수요 둔화 시점(Peak Oil)이 앞당겨지고 있다. 셋째는 화석연료를 대체할 궁극의 청정 에너지원으로 꼽히는 수소(Hydrogen) 생태계의 구축과 기저부하를 담당할 차세대 원자력 발전(SMR 등)의 재조명이다.

그러나 이러한 에너지 전환 역시 또 다른 한계와 지전략적 갈등을 유발한다. 재생에너지는 기후 조건에 따른 간헐성(Intermittency) 문제를 완벽히 해결하지 못해 여전히 화석연료 기반의 백업 전력을 필요로 한다. 무엇보다 배터리와 재생에너지 설비 제조에 필수적인 핵심 광물(리튬, 코발트, 니켈, 희토류 등)의 공급망이 특정 국가에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어, 과거의 '석유 패권'이 '핵심 광물 패권(자원 민족주의 2.0)'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도 지배적이다.

결국 현재의 글로벌 석유 시장은 '미국(셰일 자본) vs OPEC+ (사우디·러시아 연합) vs 글로벌 탈탄소 전환'이라는 세 갈래 축이 대립하는 다원화된 삼각 패권 구도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원유는 단기적인 대체재 확산 압박 속에서도 여전히 글로벌 통화 공급망과 국제 정치 역학 관계의 균형추를 맞추는 고도의 지전략적 자산으로서 다가올 미래에도 긴밀히 기능할 것이다.

송소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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