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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일제 넘어 하청 연대…람보르기니의 실험

오하은 기자

기사입력 : 2026-10-20 12:31

[Hinews 하이뉴스] 람보르기니가 임금삭감 없는 주4일제를 도입한 데 이어 물류 협력업체 노동자 302명에게까지 단체협약을 확대했다. 앞서 SUV 모델 우루스(Urus)의 생산 확대 과정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 300여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개별 사업장의 고용과 노동시간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원청의 교섭력을 활용해 협력업체 노동자의 노동조건까지 개선한 사례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부설 민주노동연구원은 20일 발표한 워킹페이퍼 '담장을 넘는 노동, 지역을 바꾸는 연대: 이탈리아노총 금속노조 볼로냐 지역지부 사례를 중심으로'에서 이탈리아노총(CGIL) 산하 금속노조(FIOM) 볼로냐 지역지부의 교섭 전략을 조명했다. 정경은 연구자가 작성한 이번 보고서는 람보르기니 사업장에서 이뤄진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임금삭감 없는 주4일제 도입, 물류 협력업체와의 공급망 협약을 주요 사례로 제시했다.

보고서가 주목한 것은 노동조합의 교섭 범위가 단계적으로 확대됐다는 점이다. 생산 확대를 고용 안정으로 연결하고, 노동시간 단축을 협약으로 구체화한 뒤, 원청의 교섭 성과를 물류업체 노동자에게까지 확장했다. 노동조합이 개별 기업의 임금과 근로조건을 협상하는 조직을 넘어 지역 산업과 공급망 전체의 노동조건을 다루는 주체로 역할을 넓혔다는 분석이다.
람보르기니가 임금삭감 없는 주4일제를 도입한 데 이어 물류 협력업체 노동자 302명에게까지 단체협약을 확대했다. 앞서 SUV 모델 우루스(Urus)의 생산 확대 과정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 300여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개별 사업장의 고용과 노동시간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원청의 교섭력을 활용해 협력업체 노동자의 노동조건까지 개선한 사례다. 사진은 람보르기니 이탈리아 공장의 모습.
람보르기니가 임금삭감 없는 주4일제를 도입한 데 이어 물류 협력업체 노동자 302명에게까지 단체협약을 확대했다. 앞서 SUV 모델 우루스(Urus)의 생산 확대 과정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 300여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개별 사업장의 고용과 노동시간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원청의 교섭력을 활용해 협력업체 노동자의 노동조건까지 개선한 사례다. 사진은 람보르기니 이탈리아 공장의 모습.

우루스 생산 확대 계기로 비정규직 300여 명 정규직 전환

FIOM 볼로냐의 교섭 사례는 2015년 람보르기니의 우루스 생산 확대 과정에서 시작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FIOM은 FIM·UILM 등 다른 금속노조와 함께 2015년 5월 22일 생산성 협약을 체결했다. 당시 협약에는 하청·외주 구조의 투명성 확보와 공급망 단체협약 적용, 기술 분야 재하도급의 3년 내 폐지 등이 포함됐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 안정도 주요 의제였다. 노동자 명부를 관리하고 비정규직 인력을 우루스 생산 관련 채용 인력으로 통합하는 방안을 추진한 결과, 2016년 11월까지 누적 300여 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기업의 생산 확대가 반드시 안정적인 일자리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생산량이 늘어나도 비정규직이나 외주 인력에 대한 의존이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FIOM 볼로냐는 생산 확대에 따른 고용 수요를 정규직 전환과 연결하고, 외주 구조 개선까지 교섭 의제로 다뤘다.

이 사례는 이후 노동시간 단축과 공급망 연대로 교섭 범위가 확대되는 출발점이 됐다. 보고서는 기업의 경영 상황과 생산계획을 노동자의 고용 안정에 연결하고, 원청과 하청의 노동조건 격차를 교섭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했다.

13개월간 35차례 교섭…주4일제 찬성률 96~97%

람보르기니의 임금삭감 없는 주4일제는 장기간의 교섭과 조합원 의견 수렴을 거쳐 도입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사업장 단일 교섭대표 위원회(RSU)는 2022년 4월 실시한 설문조사를 계기로 노동시간 단축 교섭을 본격화했다. 2022년 11월부터 2023년 12월까지 약 13개월 동안 공식 교섭 35차례, 기술위원회 회의 9차례, 전체 총회 12차례가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8시간 전면 파업도 벌어졌다.

노사가 마련한 방안은 임금을 삭감하지 않으면서 직종별 특성에 맞춰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방식이었다. 모든 직무에 동일한 근무 형태를 일괄 적용하기보다 생산 현장의 업무 특성과 운영 조건을 고려해 구체적인 방안을 조율했다.

2023년 12월 7일 실시된 노동자 직접 비밀투표에서는 투표율이 70%를 넘었고, 찬성률은 96~97%를 기록했다. 장기간의 교섭과 현장 의견 수렴을 거쳐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합의를 끌어낸 것이다.

이탈리아에서는 1993년 노사정 합의를 통해 노동자들이 선출하는 RSU가 제도화됐다. RSU는 산별 단체협약을 보충하는 사업장 단위 교섭을 담당한다. 산업별 협약이 정한 기본 틀 안에서 개별 기업의 생산 방식과 노동환경을 반영한 합의를 추진할 수 있는 구조다.

FIOM 볼로냐는 이러한 제도적 기반을 활용해 노사 공동 기술위원회와 협의 체계를 운영했다. 보고서는 람보르기니의 사례가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의제뿐 아니라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현장 조합원의 참여와 민주적 의사결정이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원청 단체협약 활용해 물류 노동자 302명까지 확대

람보르기니 사례에서 또 다른 주목할 부분은 물류 협력업체 노동자에게까지 교섭 성과를 확장했다는 점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FIOM 볼로냐는 람보르기니 원청 단체협약에 포함된 외주위원회(Commissione appalti) 조항을 활용해 물류업체 슈넬레케 이탈리아(Schnellecke Italia)와 협약을 체결했다. 2025년 10월 17일 체결된 협약은 노동자 302명을 대상으로 하며, 노동자 투표에서 96.6%의 찬성률을 기록했다. 협약은 2026년 1월 1일부터 시행됐다.

예를 들어 완성차 공장에서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복지 개선을 위한 협약을 체결하더라도, 부품이나 물류를 담당하는 협력업체 노동자에게 그 성과가 자동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원청과 협력업체는 고용관계가 분리돼 있고, 각 사업장의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교섭 구조도 다르기 때문이다.

FIOM 볼로냐는 원청 단체협약에 마련된 외주 관련 조항을 활용해 이러한 한계를 넘어섰다. 원청 노조가 확보한 교섭력을 협력업체의 노동조건 개선에 연결하고, 슈넬레케 노동자 302명을 포괄하는 별도 협약을 체결했다.

이는 하청·물류 노동자들이 별도의 직접 행동에만 의존하지 않고도 원청의 교섭 구조를 통해 노동조건 개선을 추진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다만 모든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 단체협약이 자동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이번 사례에서는 원청 단체협약의 외주위원회 조항과 노동조합의 조직력, 실제 교섭 과정이 결합해 협약 적용 범위를 넓혔다.

보고서는 이를 기업 내부의 교섭 성과를 공급망으로 확장한 사례로 평가했다. 노동조건을 해당 노동자가 소속된 업체만의 문제로 보지 않고, 원청의 생산과 외주 구조까지 연결해 접근했다는 것이다.

지역사회 연대에 젠더·기후·디지털 의제까지

민주노동연구원은 FIOM 볼로냐의 교섭 성과가 지역 산업의 특성과도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자동차와 기계산업이 밀집한 볼로냐에서 노동조합은 개별 기업과의 교섭뿐 아니라 지방정부, 대학, 시민사회 등 지역 주체들과 연계를 추진해왔다.

FIOM은 1901년 6월 창립한 이탈리아 최초의 산별 금속노조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조합원은 약 27만6000명으로 추산되며, 산별 단체협약이 적용되는 금속산업 노동자는 약 160만 명에 달한다. FIOM 볼로냐 지역지부는 조합원 1만8095명을 조직하고 있다.

보고서는 지역 조직이 전국 조직의 하부 단위에 머무르지 않고 지역의 산업정책과 고용 문제에 개입하는 전략적 행위자로 성장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에밀리아로마냐 지역의 노사정 협력 전통과 지방정부와의 신뢰 관계가 람보르기니의 고용·노동시간 협약을 뒷받침한 조건이라는 설명이다.

교섭 의제도 임금과 고용을 넘어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성별 임금 격차와 고용상 차별은 사업장 단위의 보충 교섭에서 다뤄야 할 과제이며, 기후변화와 디지털 전환 역시 산업구조와 직무, 고용 안정성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노동조합의 의제로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FIOM 볼로냐가 기후운동 경험이 있는 청년 활동가를 간부로 채용하고 기후와 노동을 연결하는 의제를 모색한 사례도 소개했다. 노동조합이 기존 조합원의 임금과 고용 문제뿐 아니라 청년 노동자의 삶과 연결되는 의제를 다룰 때 조직의 세대교체와 사회적 영향력 확대를 함께 추진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민주노총 “공급망 교섭 제도화하고 지역 조직 역량 키워야”

민주노동연구원은 이번 보고서에서 한국 노동운동의 과제로 지역 단위 교섭 역량 강화와 원·하청 공급망을 포괄하는 교섭 구조의 제도화를 제시했다.

보고서는 “한국 대기업·공공기관 사업장 단체협약에 공급망까지 확대하는 외주위원회 조항을 추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원청 노동조합이 확보한 교섭 성과를 협력업체 노동자에게까지 연결할 수 있도록 제도적 통로를 마련해야 한다는 취지다.

또한 “지역 조직의 전략적 행위자화”를 주요 과제로 꼽으며 지역 노동조합이 지방정부와 기업, 대학, 시민사회와 협력해 일자리 유치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조직 내부의 역량 강화도 강조했다. 보고서는 람보르기니 RSU의 높은 협약 찬성률과 장기간의 교섭 과정을 들어 공급망 연대와 지역사회 의제 확장은 현장 조합원의 신뢰와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에 기반해야 지속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젠더 평등과 기후·돌봄·디지털 전환 등 새로운 사회적 의제를 노동조합의 교섭 대상으로 확장하는 것도 과제로 제시했다.

민주노동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공급망 연대를 단체협약에 제도화”하고 “내부 역량 축적이 외부 연대의 전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람보르기니 사례가 보여주듯 노동조합의 역할은 개별 사업장의 임금과 고용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협력업체와 지역사회까지 노동조건 개선의 범위를 넓히는 방향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오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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