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 의료는 ‘더하는 것’보다 ‘지키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 [박진영 원장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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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사회, 의료는 ‘더하는 것’보다 ‘지키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 [박진영 원장 칼럼]

임혜정 기자

기사입력 : 2026-01-16 10:00

[Hinews 하이뉴스] 대한민국은 이미 초고령사회에 들어섰다. 이 변화는 단순히 노인의 비율이 늘어났다는 뜻이 아니다. 노동의 속도와 주거의 형태, 돌봄의 방식이 달라지고 있으며, 의료 또한 그 거대한 흐름의 중심에 서 있다. 요즘 진료실에서 마주하는 질문 역시 분명히 달라졌다. “선생님, 치료가 되나요?”라는 물음보다 “이 나이에 그 큰 수술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라는 걱정이 먼저 건네진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80세 이상 환자가 신경외과를 찾는 일은 드물었다. 고령이라는 이유로 치료를 포기하거나 병원 방문 자체를 미루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5~6년 사이 의료 현장의 풍경이 빠르게 바뀌었다. 80대는 물론이고 90세를 넘긴 분들도 외래 진료실의 문을 두드린다. 환자 본인과 보호자들은 묻는다. “다시 제 발로 걸을 수 있을까요?” 초고령사회는 이미 통계가 아니라 의료의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고령 환자의 척추 질환은 결코 단일 문제로 설명되지 않는다. 디스크 퇴행과 석회화된 협착증, 골다공증으로 약해진 뼈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에 심혈관 질환이나 당뇨, 만성 폐질환 같은 기저질환까지 겹치면 치료 결정은 더욱 무거워진다. 많은 환자들이 “연세 때문에 수술이 어렵다”는 말을 듣고 돌아가거나 반대로 뼈를 대폭 깎아내고 금속을 삽입하는 거대한 유합술만을 유일한 선택지로 제안받는 경우가 많다.

고령 환자 진료 중인 박진영 원장
고령 환자 진료 중인 박진영 원장
필자는 오래 전부터 의문을 품어 왔다. 고령 환자에게 ‘더 크게 하는 수술’만이 과연 답일까. 나이가 많을수록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무엇을 더할 것인가’ 보다 ‘무엇을 지킬 것인가’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 바로 레스토레이션(Restoration) 개념과 Restore-then-Dock 철학이다.

기존의 치료가 뼈에 구멍을 내어 접근로를 만드는 드릴링 중심이었다면, 나의 방식은 신경을 먼저 보호하고 구조를 가능한 범위 내에서 복원한 뒤 병변에 접근하는 순서의 전환이다. 치료의 기준을 ‘나이’라는 막연한 제약에서 MRI가 보여 주는 문제의 본질로 옮기자는 뜻이다. 핵심은 ‘기술의 과시’가 아니라 환자가 평생 써 온 ‘정상 뼈와 관절을 최대한 보존’하는 데 있다.

이 접근은 수면마취 상태에서 환자의 체력적 부담을 최소화하며 진행된다. 특히 초고령 환자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척추 불안정증과 재수술 위험을 낮추는 데 초점을 둔다. 치료는 당장의 통증을 없애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치료 이후의 삶을 더 안전하게 남겨 주는 선택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방법이 없다”는 말에 좌절하다가, 마지막 희망으로 본원을 찾는 80~90대 환자들이 있다. 내가 그 동안 임상에서 정리해 온 보존·복원 중심의 치료를 통해 그 환자들이 다시 보행을 회복해 가는 과정을 나는 수없이 함께해 왔다. 그 분들이 병원을 나서며 보여 주는 가벼워진 발걸음은, 내가 선택해 온 의료의 목적과 철학이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 한 번 깊이 실감하게 한다.

초고령사회에서 필요한 의료는 더 많이 고치는 의료가 아니다. 얼마나 많은 것을 제거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끝까지 지켜냈는지가 치료의 기준이 돼야 한다. 이 판단과 경험은 의사의 개인적 노하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초고령사회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변화라면, 그에 대응하는 의료 역시 숙련의의 감각에만 의존해서는 지속될 수 없다.

그래서 필자는 영상과 구조를 기반으로 한 수학적·과학적 접근 지점을 정리하고, 이를 다음 세대 의사들에게 넘겨줄 수 있는 기술 자산으로 체계화해 가고 있다. 초고령사회에서 의료는 경험담이 아니라, 재현 가능한 기준과 그에 따른 책임 있는 선택으로 답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중심에 두는 의료,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이어질 수 있는 의료. 그것이 초고령사회에서 우리가 선택해야 할 방향이라고 믿는다.

(글 : 박진영 박진영병원 원장(신경외과 전문의))

임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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