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news 하이뉴스] 유리꽃 행성 '비트룸' 출신의 새잡이 파파게노가 새를 잡는 곳은 더 이상 단순한 지상의 숲이 아니다. 왕을 잃은 여왕의 슬픔으로 영원한 밤이 된 '크리스탈로스' 행성의 어두운 숲이다. 지혜의 태양이 떠 있는 황금빛 행성 '아케트'에는 성자 자라스트로가 살고, 물의 행성 '에테르노'에서 온 타미노 왕자는 우주선 불시착으로 이 거대한 은하계의 대립에 휘말린다. 모차르트의 마지막 오페라 '마술피리'가 우주를 무대로 다시 태어났다.
골든뮤직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하는 '미디어 & 샌드아트와 함께하는 가족오페라 마술피리'가 8월 13일 옥천문화예술회관을 시작으로 전국 6개 도시 투어에 나선다. 오는 9월 3일 울산학생교육문화회관, 9월 5일 남양주 다산아트홀, 9월 9일 창녕문화예술회관, 9월 18일 김제문화예술회관을 거쳐 9월 19일 국립부여박물관에서 투어를 마무리한다.
이번 투어는 작품명부터 새로 정했다. 기존의 '샌드아트와 해설이 있는 가족오페라'에서 '미디어 & 샌드아트와 함께하는 가족오페라'로 이름을 바꿨다. 단순한 표기 변경이 아니라 작품 구조 전반의 개편을 반영한 결과다. 무대막과 의상, 무대 오브제에 이르기까지 대대적으로 새로 제작했다. 무대는 작화 머리막과 다리막 세트를 겹쳐 우주의 깊이를 만들고, 그 사이에 행성 오브제를 매달아 관객이 은하계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시야를 구성한다.
가족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가족오페라 '마술피리'. "가족오페라 '마술피리'는 모차르트의 원곡을 토대로 제작되었으며 샌드아트와 미디어의 조합으로 이뤄진 무대로 환상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이미지제공=콘텐츠컬쳐플레이스)
가장 큰 변화는 영상 구현 방식이다. 이번 공연은 무대 위에서 실연되는 샌드아트 라이브 드로잉과 미디어아트 영상을 실시간으로 합성해 하나의 화면으로 완성한다. 미리 제작한 영상을 재생하거나 샌드아트를 별도 화면에 띄우던 기존 방식과 달리, 아티스트의 손이 모래를 지나간 자리에 영상이 곧바로 색과 형태를 입혀 한 장면이 된다. 제작진은 샌드아트 라이브와 미디어아트의 실시간 합성을 오페라 무대에 적용한 것은 국내 최초라고 밝혔다.
합성 큐는 모차르트 원곡의 마디 단위로 설계됐다. 서곡에서는 흩뿌려진 우주 먼지가 서서히 모여 행성의 형태를 이루고, 13~15마디에 이르러 영상이 색을 입히기 시작한다. 서곡 후반부에는 모든 행성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 무대가 암전된 뒤, 모래가 사방으로 터지는 우주 대폭발(빅뱅)과 함께 네 행성(아케트·크리스탈로스·에테르노·비트룸)이 처음보다 훨씬 거대하고 선명한 모습으로 재조합되며 극이 열린다.
공동기획을 맡은 김대염·박성진 프로듀서는 "샌드아트를 보여주는 공연도, 영상을 쓰는 공연도 이미 많다. 그런데 그 둘을 같은 화면에 겹치는 순간, 아이들은 그림이 그려지는 과정 자체를 하나의 공연으로 보기 시작한다"며, "처음 시도하는 방식이라 준비하는 내내 쉽지 않았지만, 아이들에게 한 번도 본 적 없는 장면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도전했다"고 말했다.
연출과 각색을 맡은 김지우는 원작의 이집트풍 신전 세계를 우주로 옮겼다. 인물이 속한 세계는 저마다 고유한 이름과 색을 가진 행성으로 재설정됐다. 밤의 여왕과 파미나가 있는 '크리스탈로스'는 빛을 잃은 크리스탈 결정체의 행성이고, 자라스트로의 '아케트'는 황금빛 사막과 지혜의 신전의 행성이다. 모노스타토스는 아케트 내부에 위치한 화산재와 거친 넝쿨로 덮인 어둠의 숲 '페루스'에 살며, 타미노의 '에테르노'는 물이 흐르고 하늘이 은하수인 고도 문명 행성, 파파게노와 파파게나의 고향 '비트룸'은 유리 결정체 열매와 꽃이 자라는 따뜻한 행성이다.
김지우 연출은 "235년 전 모차르트가 살던 시대(1791년)에 이집트는 고대 문명을 품은 채 베일에 싸여 있어, 작곡가가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신비로운 나라였다"며, "당시 비밀결사단인 '프리메이슨' 역시 지금도 미스터리한 존재인데, 모차르트가 오페라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그 신비로운 느낌을 지금의 관객에 맞게 '우주'로 옮겨 구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작에서는 밤의 여왕이 왜 그렇게 차가운 여자인지, 왜 하나뿐인 딸마저 도구로 이용하는 엄마로 나오는지 서사적 설명이 없는 게 늘 아쉬웠다"며, "원작에서 자세한 서사가 생략되어 있던 이 부분들을 이번 각색을 통해 새롭게 추가하고 보완했다. 배경을 우주로 바꾸면서 밤의 여왕이 왜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는지, 자라스트로가 왜 파미나를 데려갔는지 그 이유를 눈으로 보이고 느끼게끔 입체적으로 풀어냈다"고 덧붙였다.
가족오페라 '마술피리'의 김지우 연출 (사진제공=콘텐츠컬쳐플레이스)
각색은 인물 해석에도 손을 댔다. 밤의 여왕은 단순한 악역이 아니라 남편을 잃은 슬픔으로 자기 행성을 얼려버린 인물로 다시 그려진다. 자라스트로가 파미나를 데려간 데에도 깊은 의도와 이유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두 세계의 대립은 선악의 대결이 아니라 이해와 화해의 이야기로 정리된다.
해설 방식도 달라졌다. 무대 밖에서 제3자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설명하던 제3의 해설자를 없애고, 비트룸 행성의 요정인 극 중 인물 파파게나가 직접 해설을 맡는다. 특유의 밝고 친근한 캐릭터인 파파게나가 객석에서 등장해 관객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관객 반응에 따라 샌드아트가 코믹한 그림으로 대응하거나 대사를 이어간다.
제작진은 외부 설명자가 아닌 극 안의 캐릭터가 직접 이야기를 끌어가고, 파파게나를 비롯한 출연진이 객석으로 내려가 관객과의 물리적 거리를 좁힘으로써 어린이 관객이 작품과 인물에 한층 친밀감을 느끼고, 단순히 관람하는 데 머물지 않고 자신도 이 우주 모험을 함께 완성해 간다고 체감하며 오페라에 몰입하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김지우 연출은 파파게나에게 해설을 맡긴 이유에 대해 "오페라는 조용히 앉아 머리로만 감상하는 틀에 박힌 예술이 아니라, 함께 경험하고 겉으로 마음껏 표현하며 즐기는 문화라는 걸 알려주고 오페라에 대한 거리감을 줄여주고 싶었다"며, "어린이 관객에게 친근하고 밝은 이야기 친구 같은 느낌을 전하기 위해 출연진 중 파파게나가 해설자로 나서도록 구성했다"고 강조했다.
아리아는 모차르트 원곡 그대로 독일어로 부르고, 무대에는 한글 자막이 함께 오른다. 대사는 한국어다. 자막과 대사 번역도 이번에 새로 썼다. 독일어 원가사를 그대로 옮기는 대신 지금 어린이·가족 관객이 쓰는 말의 감각에 맞췄다. 파파게노가 짝을 찾으며 부르는 '연인이나 아내가 있다면(Ein Mädchen oder Weibchen)'의 자막에는 '돌을 먹어도 달콤할 테고, 100억 아파트도 부럽지 않을 텐데'와 같은 오늘의 표현이 등장하고, 타미노와 파미나가 통과하는 시련은 '거친 불과 물의 우주 시련'이라는 우주의 언어로 바뀐다. 원곡의 음악은 손대지 않으면서 이야기를 어린이 관객에게 건네는 방식이다.
지휘봉은 강인모가 잡는다. '리골레토'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팔리아치' '피가로의 결혼' '사랑의 묘약' '라 보엠' '라 체네렌톨라' 등 오페라 레퍼토리를 두루 지휘해온 그는 '마술피리'를 여러 차례 무대에 올린 지휘자이기도 하다. 미국 웨스트체스터대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사우스캐롤라이나대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자신이 창단한 뉴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동시에 김천시립소년소녀관현악단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연주는 뉴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맡는다. 관악 5인과 현악 8인에 피아노를 더한 14인 편성으로, 대극장 오케스트라의 규모 대신 무대 위 서사와 밀착해 호흡하는 실내악 편성을 택했다. 피아노는 이 작품의 음악코치를 겸한 조선아가 직접 연주한다.
주인공 타미노 역에는 독일에서 활동 중인 성악가 황병남이 나선다. 독일 데트몰트 국립음대를 거쳐 뉘른베르크 국립음대 최고연주자 과정을 마친 그는 오스트리아 페루초 탈리아비니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했고, 그리스 마리아 칼라스 국제콩쿠르와 이탈리아 모데나 파바로티 국제콩쿠르 등에서도 입상했다. 현재 독일을 중심으로 오페라 주역과 콘서트 가수로 활동하고 있어, 국내 지역 무대에서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라는 게 제작사 측 설명이다.
파미나 역은 도희선, 밤의 여왕은 구민영, 자라스트로는 김일훈이 맡는다. 파파게노 역은 김원과 정제학이 나눠 맡으며, 해설까지 겸하는 파파게나는 최윤나, 모노스타토스는 김동섭이 연기한다. 샌드아트는 최은준, 영상 디자인은 부트룸, 무대 디자인은 유다미가 맡았다.
기획·총괄은 김대염, 기획·제작 CP는 박성진이 맡았다. 두 사람은 콘텐츠컬쳐플레이스의 프로듀서로, 어린이 오페라 '신데렐라의 모래이야기'와 '루카의 모험' 등 어린이·가족 오페라 제작을 이어왔다.
제작진은 올해 투어를 새로운 형식의 출발점으로 보고 있다. 골든뮤직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올해 여섯 개 도시는 끝이 아니라 시작점"이라며 "지역마다 무대 크기도 객석 구조도 다른데, 어느 극장에서든 같은 밀도의 무대를 만들어내는 것이 올해의 과제"라고 말했다. 이어 "매년 무대를 늘려가며 어린이와 가족이 오페라를 처음 만나는 자리를 꾸준히 만들고, 언젠가는 해외 관객 앞에도 이 무대를 세우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한편, 관람 연령은 초등학생 이상으로, 미취학 아동은 입장할 수 없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각 지역별 공연장으로 문의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