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news 하이뉴스] 교실에서 가장 먼저 손을 들고 가장 큰 목소리로 말을 쏟아내는 아이가 있다. 이름은 루카.
루카는 여느 때처럼 친구의 말 한마디를 끝까지 듣지 못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려다, 갑자기 전설의 장소 '말이 많은 숲'으로 빨려 들어간다.
'말이 많은 숲' 속에서 만난 동물 친구들 역시 누구 하나 남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사자는 근육을 자랑하느라, 수탉은 라이브 방송을 켜느라, 당나귀는 '팩트체크'를 외치느라, 새는 가짜뉴스를 퍼뜨리느라 바쁘다. 푸른 달 아래 '목소리가 끊기면 사라진다'는 소문이 돌자, 동물들은 더 크게, 더 빨리 자기 말만 쏟아낸다.
〈루카의 모험〉은 무대 위 허구가 아니다. 원안과 기획을 맡은 박성진 기획프로듀서는 〈루카의 모험〉이 자신의 열 살짜리 아들을 지켜보는 것에서 시작됐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기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유튜브 이야기, 게임 이야기, 카드 이야기를 저마다 늘어놓는데, 친구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려주는 아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아이들만의 풍경이 아니었다. 회의실에서 어른들은 상대의 말이 끝나기 전에 자기 답을 준비하고, 식탁 앞에서 가족은 각자의 화면을 들여다보며 서로의 하루를 흘려보낸다. SNS와 라이브 방송, 숏폼과 알고리즘은 어른과 아이 모두에게 '더 크게, 더 빨리, 더 튀게 말하는 법'부터 가르친다. 박성진 기획프로듀서는 "아이들이 서로의 말을 듣지 못하는 것은, 아이들이 자라고 있는 어른들의 세상이 이미 그런 곳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고, 어른은 아이의 미래입니다"라고 말한다.
이미지=어린이 오페라 '루카의 모험' / 이미지 제공=콘텐츠컬처플레이스
오는 5월 2일(토) 오후 3시 제주문예회관 대극장 무대에 오르는 창작 어린이 오페라 음악극 〈루카의 모험〉은 바로 그 자각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말하기'만 배우고 '듣기'는 잃어버린 시대를 동물 우화로 비춰내는 〈루카의 모험〉은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예술진흥원이 주최·주관하고 뉴지마아트앤컬처가 제작한다. 지난해 서울 도봉구민회관에서 첫선을 보인 후, 이번 제주 공연을 위해 작품 전반을 대대적으로 리뉴얼·업그레이드했다. 장르명을 '창작 어린이 오페라 음악극'으로 새롭게 정의하고, 음악 구성·캐스팅·연출·무대 장면을 전면 재정비한 사실상의 새로운 공연이다.
〈루카의 모험〉의 정서적 핵심에는 거북이 부기 역의 베이스 김일훈이 자리한다. 무대 위에서 가장 큰 체구로 누구보다 느리고 조용한 한마디를 건네는 부기는, '가장 크지만 친구들에게 들리지 않는 존재'라는 시각적 아이러니를 통해 작품의 주제를 그대로 형상화한다. 박성진 프로듀서는 부기 캐릭터에 대해 "세상을 바꾸는 것은 가장 큰 목소리가 아니라, 가장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한 사람의 변화"라는 믿음을 담았다고 밝혔다. 결국 루카가 부기의 작은 한마디에 처음으로 귀를 기울이는 순간, 사라졌던 빛의 길이 다시 열린다.
〈루카의 모험〉의 음악적 중심축은 프랑스 작곡가 카미유 생상스(1835~1921)의 관현악 모음곡 〈동물의 사육제〉(1886)다. 피아노 두 대와 실내악 앙상블을 위해 쓰인 〈동물의 사육제〉는 사자·거북이·코끼리·백조 등 14종의 동물을 각기 다른 악기 색채와 리듬으로 묘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웅장한 '사자왕의 행진'부터 느릿한 '거북이', 우아한 첼로 독주 '백조'까지, 각 악장은 동물의 개성을 음악으로 생생하게 그려낸다. 생상스 스스로 〈동물의 사육제〉를 생전에는 공개적으로 출판하지 않을 만큼 희작(戱作)으로 여겼지만, 오늘날에는 어린이 음악 교육의 고전이자 클래식 입문의 관문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루카의 모험〉은 〈동물의 사육제〉 14개 악장 가운데 8곡을 새롭게 배치하고 우리말 가사를 붙여, 숲속 동물들의 이야기와 자연스럽게 맞물리도록 구성했다. 박성진 프로듀서는 "음악이라는 예술 자체가 '귀 기울여 듣는 즐거움'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이, 〈루카의 모험〉의 메시지와 그대로 맞물렸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 모차르트 교향곡 40번, 바흐 협주곡 5번, 슈만 〈어린이 정경〉, 멘델스존 〈노래의 날개 위에〉, 드보르작 〈유모레스크〉, 스메타나 〈몰다우〉,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 중 '축배의 노래', 요한 슈트라우스 2세 〈봄의 소리 왈츠〉 등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클래식 명곡들이 이야기 결을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든다. 강인모가 지휘하는 뉴필하모닉오케스트라 20인조가 협연하며, 막간에는 인터메조(Intermezzo)를 삽입해 음악과 춤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캐스팅 또한 이번 공연 리뉴얼의 핵심이다.
루카 역의 김예은을 비롯해 정준식(사자 레오)·백진호(당나귀 도키)·서범석(수탉 리키)·김일훈(거북이 부기)·신선희(물고기 아라)·문아향(새 피코) 등 국내 정상급 성악가 7인이 총출동한다. 캥거루 루루 역에는 뮤지컬 배우 정열, 백조 엘라 역에는 무용수 봉지은이 합류해 오페라·뮤지컬·무용이 한 무대에서 만나는 융합 무대를 완성한다. 연출·대본은 김지우, 음악감독은 최지마, 음악코치는 조선아가 맡았다.
박성진·김대염 두 프로듀서는 콘텐츠컬쳐플레이스의 공동대표로, 창작 어린이 오페라 〈신데렐라의 모래이야기〉, 가족 오페라 〈마술피리〉 등 어린이·가족 관객을 위한 오페라 제작에 꾸준히 매진해온 전문 제작진이다.
총괄을 맡은 김대염 총괄프로듀서는 "지난해 초연이 작품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무대였다면, 이번 제주 공연은 그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펼쳐 보이는 도약의 무대"라며, "국내 정상급 성악가 라인업과 20인조 오케스트라, 뮤지컬·무용 협업까지 더해 어린이 관객에게 가장 풍성한 감각적 경험을 선사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고 밝혔다.
박성진 프로듀서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공연을 마치고 객석을 나서는 아이들이 오늘 친구가 했던 말 중 가장 작고 조용했던 한마디를 떠올려주기를, 아이들 곁의 어른들이 오늘 자신이 지나쳐버린 누군가의 작은 목소리를 한 번쯤 되새겨주기를 바랍니다." 교실 속 루카는 박성진 프로듀서의 아이이기도 하고, 아이의 친구들이기도 하고, 어쩌면 〈루카의 모험〉을 찾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기도 하다. 귀를 기울이는 작은 변화가, 사라졌던 빛의 길을 다시 열어줄 것이라는 믿음, 그것이 〈루카의 모험〉이 무대에 서는 이유다.
한편, <루카의 모험>은 만 5세 이상 관람 가능하며, 제주문화예술진흥원을 통해 보다 자세한 공연 정보를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