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news 하이뉴스] 사회적으로 저출생 기조가 심화되고 결혼과 출산에 대한 가치관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남성의 성 건강과 피임에 대한 인식도 과거와 달라진 양상을 보이고 있다. 과거에는 피임을 주로 여성의 책임으로 돌리거나 자녀를 낳을 만큼 낳은 중장년층 부부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정관수술이, 최근에는 자녀 계획을 일찍이 마친 젊은 부부나 아이를 갖지 않는 딩크족 사이에서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가족계획의 수단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 비뇨의학과를 찾아 정관수술을 문의하는 연령대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중반으로 눈에 띄게 젊어졌다. 자녀를 한 명만 낳아 잘 키우겠다는 외동 자녀 가정이 늘어난 데다, 결혼 후에도 부부만의 삶을 즐기며 출산을 계획하지 않는 미혼 혹은 기혼 딩크족 남성들이 적극적으로 영구 피임법을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의 피임 시술이나 경구 피임약 복용에 비해 남성의 정관수술이 신체적 부담이 적고 부작용이 덜하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도 이러한 트렌드 변화에 한몫을 하고 있다.
윤지환 서울리더스비뇨의학과의원 목동점 원장
◇ 칼 안 대는 '무도 정관수술'...직장인들이 선호하는 이유
정관수술은 고환에서 생성된 정자가 정낭으로 이동하는 통로인 정관을 차단하여 정액에 정자가 섞여 나오지 못하게 하는 영구 피임 시술이다. 과거의 정관수술은 음낭 피부를 메스로 절개한 뒤 정관을 찾아 묶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수술 후 봉합과 실밥 제거가 필요했고, 통증이나 흉터에 대한 부담감이 컸다.
그러나 최근 의료 기술의 발달로 대중화된 무도 정관수술은 말 그대로 칼을 사용하지 않는다. 특수 고안된 기구를 사용해 음낭 피부에 약 2~3mm 정도의 미세한 구멍만 내고, 그 구멍을 통해 정관만을 체외로 견인하여 차단하는 방식이다. 피부를 절개하지 않기 때문에 수술 후 따로 봉합할 필요가 없고 흉터가 거의 남지 않는다.
무도 정관수술은 국소마취 하에 진행되며 시술 시간이 10분에서 15분 내외로 짧다. 통증이 적고 시술 직후 도보 귀가가 가능할 정도로 회복이 빨라 바쁜 직장인들도 별도의 휴가를 내지 않고 주말이나 퇴근 시간대를 이용해 수술을 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 수술을 부담스러워하던 젊은 남성들의 심리적 장벽이 낮아지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정력 감퇴? 정액량 감소? 정관수술을 둘러싼 오해와 사실
정관수술이 대중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남성들 사이에서는 수술 후 성 기능이 떨어지거나 정력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선이 여전히 존재한다. 대표적인 오해가 바로 ‘정관수술을 하면 발기부전이 오거나 정력이 감퇴한다’는 속설이다.
하지만 이는 의학적으로 근거가 부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발기 기능과 성욕을 담당하는 것은 고환에서 분비되어 혈관을 통해 전신으로 이동하는 남성 호르몬(테스토스테론)이다. 정관수술은 오직 정자가 이동하는 길만 차단할 뿐, 호르몬의 생성이나 분비 경로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수술 후 성 기능 저하나 정력 감퇴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되며, 간혹 느껴지는 변화는 심리적인 요인에서 비롯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 정관수술 후에도 '잔류 정자 검사'가 필요한 이유
정관수술은 현존하는 피임법 중 성공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수술 직후 곧바로 피임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많은 부부들이 이 점을 간과했다가 원치 않는 임신을 겪는 낭패를 보기도 한다.
정관을 묶고 자르더라도 이미 정관을 지나 정낭과 전립선 뒤쪽 통로에 보관되어 있던 잔류 정자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수술 직후 부부관계를 가질 경우 이 잔류 정자가 정액과 함께 배출되어 임신 가능성을 유발할 수 있다. 따라서 수술 후 최소 15회에서 20회 이상 사정할 때까지는 콘돔 등 다른 피임 도구를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
정관수술은 현대 남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경제적인 피임 수단 중 하나로 평가된다. 다만 영구적인 시술인 만큼 부부가 미래의 가족계획에 대해 합의를 이룬 후 시행해야 하며, 수술 후에는 반드시 잔류 정자 유무를 확인하는 검사까지 마쳐야 안전하고 건강한 성생활을 누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