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news 하이뉴스] 인공지능(AI) 관련 투자가 경제 성장을 견인하고 있지만, 경제 전반의 생산성 향상 효과는 아직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AI 산업의 투자 확대가 수요를 자극하는 반면, 기업의 업무 방식과 생산 구조가 바뀌면서 나타나는 효율성 개선은 제한적이라는 분석이다. 싱가포르 통화당국은 AI 투자 붐이 물가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고려해 통화정책을 신중하게 운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20일 싱가포르 통화청(MAS)에 따르면 에드워드 로빈슨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AI 기술의 빠른 확산에도 경제 전반의 생산성 개선을 확인하기에는 이르다고 평가했다. 그는 “AI는 개인용 컴퓨터와 인터넷보다 빠르게 확산되고 있지만, 경제 전반의 생산성 향상은 아직 확인하기 이르다”고 밝혔다.
20일 싱가포르 통화청(MAS)에 따르면 에드워드 로빈슨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AI 기술의 빠른 확산에도 경제 전반의 생산성 개선을 확인하기에는 이르다고 평가했다. 그는 “AI는 개인용 컴퓨터와 인터넷보다 빠르게 확산되고 있지만, 경제 전반의 생산성 향상은 아직 확인하기 이르다”고 밝혔다. 사진은 싱가포르 통화청 사이트 갈무리
AI 관련 투자가 늘어나고 반도체와 전자제품 수출이 증가하는 현상만으로 경제의 효율성이 개선됐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현재 AI 산업의 성장은 새로운 기술을 통한 생산 효율 개선보다는 투자 확대와 기존 노동력·장비의 집중적인 활용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 로빈슨의 진단이다.
AI 투자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수요와 공급 측면에서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기업들이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관련 설비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면 생산과 수출이 늘고 경제활동도 활발해진다. 그러나 이러한 투자가 노동 투입량 대비 생산량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경제의 공급 능력이 개선되는 속도보다 수요가 증가하는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 이 경우 임금과 생산비용이 상승하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로빈슨은 AI 투자 붐에 대한 판단이 통화정책의 방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봤다. AI가 경제의 생산성을 빠르게 끌어올릴 것이라는 기대만으로 물가 압력이 완화될 것으로 판단하면 정책 대응이 늦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AI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지속적으로 확인하면서 통화정책을 점진적으로 운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MAS는 올해 4월과 7월 통화정책을 긴축한 뒤 10월에는 정책 기조를 동결했다. 지난 14일 발표한 통화정책 성명에서도 AI 붐에 따른 수요 증가가 단위노동비용 상승과 경제 전반의 물가 압력으로 이어질 경우 국내 인플레이션이 지속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시아 경제는 AI 투자 확대에 따른 수혜를 받고 있다. 로빈슨에 따르면 올해 아시아 수출 성장의 70% 이상은 AI 관련 전자제품에서 비롯됐다. AI 데이터센터 구축과 고성능 반도체 수요가 늘면서 아시아의 전자제품 생산과 수출이 확대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고급 반도체와 대규모언어모델(LLM) 등 AI 기술 개발에서도 진전을 보이는 점도 주목된다. 아시아가 AI 관련 제품을 생산·수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술 개발에서도 역할을 확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첨단 전자제품의 수출 증가가 산업 전반의 생산성 개선으로 이어졌는지는 별도로 살펴봐야 한다.
로빈슨은 AI가 장기적으로 생산성을 높이려면 기술 도입과 함께 기업의 조직 운영 방식과 생산 구조도 달라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기 기술이 경제에 확산됐던 과정에 빗대 AI의 생산성 효과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견해를 제시했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더라도 이를 활용할 설비와 인프라를 구축하고 기존 업무 방식까지 바꾸는 과정이 선행돼야 경제 전반의 효율성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적절한 투자와 도입이 이뤄질 경우 AI가 연간 총요소생산성을 최대 0.6% 높일 수 있다고 추정한다. 총요소생산성은 노동과 자본 등 생산요소의 투입 증가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생산 효율의 변화를 보여주는 지표다. AI가 반복 업무를 줄이고 생산 공정을 개선해 같은 자원으로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면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이 같은 생산성 향상은 인구 고령화와 노동력 감소에 직면한 아시아 경제에도 중요하다. 노동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AI가 업무 효율을 높이고 노동력 부족을 보완한다면 성장 둔화 압력을 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AI 설비에 대한 투자 증가와 실제 노동생산성 개선 사이에는 차이가 있는 만큼, 기술 도입 이후 기업의 산출과 비용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AI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도 통화당국의 주요 판단 기준이다. 단기적으로는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설비 투자, 전문인력 확보 경쟁이 수요와 비용을 끌어올릴 수 있다. 반면 AI 활용이 산업 전반으로 확산돼 생산성이 개선되면 중장기적으로 비용 상승 압력을 낮추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생산성 개선이 나타나는 시점과 물가 압력이 커지는 시점이 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 통화정책의 판단은 한층 복잡해진다.
AI 투자가 당장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물가 압력까지 커질 경우 통화당국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MAS가 올해 두 차례 통화정책을 긴축한 뒤 10월 동결을 택한 것도 AI 투자 확대가 성장과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더 지켜볼 필요가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로빈슨은 AI 투자가 가져올 장기적인 생산성 개선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현재의 성장세만으로 경제 전반의 효율성이 높아졌다고 판단하기는 이르다는 입장이다. AI 산업의 투자 열기가 실제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질지, 그 전에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질지가 향후 통화정책의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