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환경에서 의사가 온라인에 남긴 글 한 문장이 환자의 첫인상을 좌우한다. 한 환자는 허리 통증 때문에 정형외과를 찾으며 여러 의사의 온라인 글을 비교했다. “척추관협착증 3주 완치”라고 장담하는 의사와 “통증의 원인을 함께 찾아 치료하겠다”고 말하는 의사 중 후자를 선택했다. 확신보다는 진정성에 마음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의료 AI가 놀라운 발전을 보이고 있지만, 환자들의 선택 기준은 여전히 기술력이 아닌 신뢰다. 구글의 Vertex AI는 환자 기록을 종합 분석해 의사의 정보 검색 시간을 대폭 줄여주고, 일부 연구에서는 챗GPT가 의사보다 더 정확한 답변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스탠포드 대학 연구팀은 AI 상담 챗봇이 알코올 중독이나 정신분열증 환자에게 잘못된 조언을 하거나, 자살 위기 상황에 부적절하게 반응할 위험을 경고했다. AI는 데이터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고 통계적으로 가장 흔한 답변만 제공할 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의사의 글쓰기가 중요해진다. 환자들이 의사에게 바라는 것은 정확한 데이터가 아니라 자신의 상황을 이해해주는 공감과 위로다. AI가 정보를 제공한다면, 의사의 글은 희망과 안심을 전한다. 더욱이 평균 7분이라는 짧은 진료 시간 안에는 환자의 모든 궁금증을 해결하기 어렵다. 글쓰기는 이 시간적 한계를 극복하는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다.

이런 방식은 환자가 “내 생활 패턴을 정확히 아는구나”라고 느끼게 하면서, 동시에 치료 지시사항의 이행률을 높인다. 의학적 정확성을 유지하면서도 환자의 실제 생활 맥락 안에서 실행 가능한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핵심이다.
병원을 처음 알게 되는 순간부터 단골 환자가 되기까지, 환자의 마음은 계속 변한다. 각 단계마다 필요한 글쓰기 접근법도 달라져야 한다.
탐색 단계에서는 “여기 전문가가 있구나”라는 발견을 목표로 한다. 환자들은 증상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만나는 의사의 글에서 첫인상을 받는다. 블로그에 “목디스크 초기 증상이 궁금한 직장인을 위한 자가진단법”처럼 구체적 대상을 명시하고, 검색 알고리즘을 고려한 키워드를 자연스럽게 포함시킨다.
신뢰 단계에서는 “이 의사는 나를 이해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한다. “어깨가 아픈 30대, 왜 스마트폰을 의심해야 할까”처럼 연령대와 라이프스타일을 연결한 제목으로 개인화된 접근을 보여준다. 일반적인 의학 정보 대신 특정 상황의 환자가 겪는 고민을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결정 단계에서는 “여기서 치료받겠다”는 확신을 준다. “무릎 관절내시경 수술, 입원 없이 당일 귀가가 가능한 이유”처럼 환자가 실제로 궁금해하는 실용적 정보를 제공한다. 수술 성공률 같은 추상적 수치보다는 회복 기간, 일상 복귀 시점 등 환자 중심의 구체적 정보에 집중한다.
추천 단계에서는 “주변에 소개하고 싶다”는 만족도를 만든다. “관절염 환자인 제 어머니가 6개월 만에 계단 오르기에 성공한 재활 운동법”처럼 의사의 개인적 경험과 전문 지식을 결합해 진정성을 보여준다.
효과적인 글쓰기를 위한 구체적 원칙도 명확하다. 첫째, 의학 용어는 반드시 일상 언어로 번역한다. “급성 위장염”을 “배탈”로, “고혈압”을 “혈압이 높은 상태”로 풀어쓴다. 둘째, 공감 표현은 구체적 상황을 언급한다. “힘드시겠어요”보다는 “밤잠 설치며 걱정 많으셨을 텐데,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처럼 환자의 실제 경험을 반영한다.
의료 정보 제공 시에는 반드시 “본 내용은 일반적인 정보이며, 개인별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정확한 진단과 치료는 전문의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라는 안전장치를 명시한다. 특히 “스스로 진단하지 마세요”, “임의로 약물을 중단하지 마세요”처럼 행동 금지 사항을 명확히 제시한다.
AI가 제공하는 표준화된 의학 정보와 달리, 의사의 글은 ‘맥락화된 지혜’를 전달해야 한다. 같은 고혈압이라도 20대 직장인과 60대 은퇴자에게는 완전히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AI는 통계적 평균값을 제시하지만, 의사는 개별 환자의 생활 환경과 심리상태까지 고려한 맞춤형 조언을 제공할 수 있다.
글쓰기는 환자에게는 치료 과정의 이해와 불안 해소를 주지만, 의사에게는 진료 철학을 정리하고 환자와의 소통 방식을 개선하는 성찰 도구가 된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내가 환자에게 정말 필요한 말을 하고 있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결국 글을 통해 만나는 의사들은 단순히 질병을 진단하는 사람이 아니라, 환자의 삶 전체를 이해하려는 동반자가 된다.
의료 AI 시대에 의사의 글쓰기는 기술과 인간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정확한 의학 정보는 AI가 제공하지만, 그 정보를 환자 개인의 삶에 맞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은 의사의 몫이다. 정보의 정확성은 AI에게 맡기고, 정보의 적용과 해석은 의사의 경험과 통찰로 승부하는 것이 바로 의료 AI 시대에 의사의 글쓰기가 가져야 할 차별화 전략이다. 진료실 안팎에서 환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새로운 의료의 모습이 지금 시작되고 있다.
(글 : 김국주 헬스인뉴스 아카데미 대표강사)
임혜정 하이뉴스(Hinews)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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