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news 하이뉴스]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맞이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함께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 보호자라면 한번쯤 하는 고민이 있을 텐데, 바로 중성화수술이다. 수술이라는 단어에서 오는 막연한 불안감, 그리고 생식 기능을 없앤다는 윤리적 고민이 맞물리면서 결정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수의사의 시각에서 중성화수술은 단순히 번식을 막는 행위가 아니라, 반려견과 반려묘의 평생 건강을 위한 의료적 선택이다.
중성화수술은 암컷의 경우 자궁과 난소를, 수컷의 경우 고환을 제거하는 수술이다. 이를 통해 생식 관련 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 수술 시기는 보통 생후 6개월 전후가 권장되며, 반려동물의 건강 상태와 체중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중성화수술을 가장 큰 이점은 질병 예방이다. 암컷의 경우, 자궁축농증, 자궁종양, 난소낭종, 유선종양과 같은 질환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 특히 자궁축농증은 중성화수술을 하지 않은 노령견, 노령묘에게 흔히 발생하며, 자궁 내부로 세균이 침투하면서 고름이 자궁 안에 고이는 상태이다. 내부 압력 상승과 독소 흡수로 인해 패혈증과 신부전으로 빠르게 진행될 수 있어, 응급 수술이 아니면 생명을 지키기 어렵다.
남황재 동대문 페트로 동물병원 원장
난소낭종은 난포가 배란되지 않고 남아 지속적으로 커지는 질환이다. 장기적으로는 호르몬 분비 이상으로 발정이 비정상적으로 길어지거나 가짜임신(pseudopregnancy) 증상이 반복된다. 낭종이 커지만 복부 팽만, 식욕부진, 체중 증가 등의 증상이 동반되며, 내분비 교란으로 자궁축농증이 2차적으로 발생하기도 한다.
유선종양은 중성화 여부에 따라 발생률 차이가 가장 뚜렷한 질환이다. 특히 반려견의 유선종양은 전체 종양 중 약 50% 이상을 차지하며, 이 중 절반 가량이 악성이다. 첫 발정 이전에 중성화수술을 하면 유선종양 발생 확률이 0.5% 미만으로 낮아지지만 두 번째 발정 이후에는 약 26%, 세 번째 이후에는 40% 이상으로 급격히 증가한다. 호르몬의 자극이 유선세포 증식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고양이의 경우에도 중성화를 하지 않은 암컷의 약 80~90%가 악성 유선종양으로 진단되며, 전이 속도도 매우 빠르다.
수컷 반려동물에서도 예방 가능한 질환이 많다. 전립선비대증은 고령의 수컷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질환으로, 테스토스테론이 전립선의 세포 증식을 촉진하면서 비대가 일어나고 요도 압박으로 인해 배뇨 곤란, 혈뇨 등의 증상이 동반된다. 하지만 중성화수술을 하면 전립선이 50% 이상 축소되고, 증상이 현저히 완화된다.
고환암은 특히 잠복고환에서의 발병률이 높다. 잠복고환은 고환이 정상적으로 음낭에 내려오지 못하고 복강 내나 서혜부에 머무는 상태를 말한다. 정상보다 높은 체온에 노출된 고환은 세포 손상이 반복되면서 변성이 일어나고, 그 결과 종양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행동학적으로도 중성화수술은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 수컷 반려견의 경우 테스토스테론의 영향으로 나타나는 과도한 마킹, 공격성, 발정, 탈출 시도 등이 현저히 줄어든다. 호르몬 분비가 감소하면서 불필요한 긴장과 경쟁 행동이 완화되고, 사회적 상호작용이 안정적으로 변화한다. 수컷 고양이의 경우에는 영역 표시를 위한 스프레이 행동이 대표적이다. 이는 발정기나 다묘 환경에서 흔히 나타나는데, 중성화 후 약 80~90%의 개체에서 빈도나 강도가 현저히 줄어든다는 보고가 있다. 또한 다른 수컷 고양이에 대한 공격성이나 발정기에 따른 야간 울음도 눈에 띄게 완화된다.
암컷에서도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난다. 발정 주기 동안 호르몬 변화로 인해 불안, 울음, 식욕부진, 교배 요구 행동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데, 중성화 후 이런 증상이 사라지고 정서적 안정이 유지된다. 특히 고양이의 경우 발정 시 울음소리가 커서 보호자의 수면에 방해가 되거나, 교배 스트레스 때문에 체중이 급격히 줄어드는 경우가 많다. 수술 후에는 이런 스트레스 요인이 사라지고 전반적인 컨디션이 안정된다.
수술을 마친 후에는 회복기의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부분의 반려견과 반려묘는 수술 다음 날부터 빠르게 회복하지만, 마취의 여운으로 일시적인 식욕 저하나 무기력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런 경우 억지로 먹이기보다는, 따뜻한 환경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게 하는 것이 좋다. 수술 부위를 핥지 않도록 엘리자베스 칼라나 회복복을 착용하고, 실밥 제거 전까지는 격한 움직임이나 목욕을 피해야 한다. 상처 주변이 붓거나 분비물이 보인다면 바로 병원을 방문해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안전하다.
식사량은 수술 전보다 약간 줄이는 것이 좋다. 중성화 후에는 에너지 요구량이 감소하므로, 이전과 동일한 양을 급여하면 체중이 쉽게 증가할 수 있다. 지방 함량이 낮은 사료로 바꾸거나 간식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비만을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반려견은 산책과 놀이 시간을 꾸준히 유지하고, 반려묘는 장난감이나 캣타워를 이용해 활동량을 높여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
수의사의 입장에서 중성화수술은 단순히 생식 기능을 없애는 행위가 아니다. 반려동물이 호르몬의 영향을 받지 않고 더 편안하게 살아가도록 돕는 과정이다. 발정으로 인한 스트레스, 예기치 못한 질병, 행동 문제로 인한 갈등이 줄어들면 보호자와 반려동물 모두의 삶이 훨씬 안정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술을 했으니 끝났다’가 아니라, 그 이후의 생활 관리다. 먹는 것, 움직이는 것, 마음의 변화까지 살펴보는 보호자의 세심한 관심이 반려동물의 건강을 오래 지켜준다. 중성화수술은 보호자와 반려동물 모두에게 더 평화로운 일상을 만들어주는 시작점이다. 그 시작이 조금 두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수의사는 그 길을 함께 걸어주는 동반자라는 점을 기억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