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자꾸 피부로, 머리로... 반복 행동 뒤에 숨은 정신건강 문제 [이상섭 원장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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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자꾸 피부로, 머리로... 반복 행동 뒤에 숨은 정신건강 문제 [이상섭 원장 칼럼]

임혜정 기자

기사입력 : 2025-11-17 15:20

[Hinews 하이뉴스] 최근 스트레스와 불안으로 인한 정신건강 문제가 증가하면서, 피부를 반복적으로 뜯거나 머리카락을 뽑는 습관이 고민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피부뜯기장애(excoriation disorder)’와 ‘발모벽(trichotillomania)’이다. 이러한 행동들은 단순한 버릇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강박장애 스펙트럼에 포함되는 질환으로 분류된다. 대부분 불안·긴장감이 높아질 때 시작됐다가 점차 통제하기 어려운 반복 행동으로 굳어지는 특징이 있다.

피부뜯기장애는 여드름, 각질, 작은 흠집 등 피부의 미세한 변화가 신경 쓰이면서 손이 가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일시적인 안정을 얻기 위한 행동이지만, 점차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며 상처나 흉터가 생겨 외모에 영향을 주는 단계에 이르기도 한다. 발모벽 또한 비슷한 기전으로 시작된다. 스트레스가 높아지면 머리카락이나 눈썹, 속눈썹 등을 잡아당기면서 순간적으로 긴장이 완화되는 느낌을 받게 되지만, 이러한 패턴이 반복되며 강박적인 충동으로 굳어지게 된다.

피부 뜯기나 발모 행동은 단순히 ‘습관’이라고 치부하기 어렵고, 불안이 높아질 때 이를 해소하려는 방식의 하나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행동을 멈추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도 충동이 쉽게 조절되지 않는다면 이미 강박적 패턴이 형성됐을 가능성이 크다.

이상섭 성모연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이상섭 성모연정신건강의학과 원장
반복적인 피부 자극이나 발모 행동은 외부에서 보기에는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당사자에게는 큰 심리적 부담을 준다. 상처, 염증, 탈모가 눈에 띄게 나타나는 경우 사회적 위축이나 대인관계 회피로 이어질 수 있고, 이는 다시 스트레스를 높여 행동을 강화시키는 악순환을 만들 수 있다. 특히 최근 들어 행동이 급격히 늘거나 특정 스트레스 상황에서 악화된다면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스트레스·불안이 높아지는 시기에는 증상이 더 두드러지는 경향이 있다. 최근 행동 빈도가 눈에 띄게 늘었다면 정신건강 상태에 변화가 있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불면, 집중 저하, 식욕 변화 등 다른 증상들과 함께 나타난다면 단순 습관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 부담이 누적되고 있다는 신호다.

경증일 때는 행동치료만으로도 호전을 기대할 수 있다. 행동인식훈련, 습관반전기법 등은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는 행동을 자각시키고, 이를 대체할 다른 행동을 스스로 선택하도록 돕는 방식이다. 하지만 피부가 손상될 정도거나 탈모 패턴이 가능한 수준으로 진행된 경우에는 행동치료와 함께 약물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피부 손상이나 모발 손실이 생긴 경우 스스로 멈추기 어렵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이 단계에서는 치료개입이 훨씬 필요하다. 적절한 치료는 반복 행동 자체를 줄이는 것뿐 아니라, 불안을 유발하는 내면의 요인까지 함께 다룰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도움이 된다.

피부뜯기장애와 발모벽은 학업 스트레스, 직장 내 갈등, 환경 변화 등 다양한 요인과 연관될 수 있으며, 청소년과 성인 모두에서 나타난다. 증상을 단순한 ‘버릇’으로 넘기기보다 조기에 의료진과 상담하는 것이 예후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반복되는 행동이 일상에 영향을 주거나 외모 변화로 고민이 커진다면, 체계적인 검진을 통해 현재의 정신건강 상태를 점검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글 : 이상섭 성모연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임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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