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부산의 한 요양병원에서 치매를 앓던 80대 환자는 침대에 결박된 채 발견됐다. 낙상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는 병원 측 설명과 달리, 환자는 장시간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 상태에서 호흡 곤란 증세를 보였고 결국 숨졌다. 간병인과 의료진의 과실은 인정됐지만, 병원은 정상적으로 운영을 이어갔다. 환자가 사망했음에도 병원 자체를 멈출 수 있는 행정적 근거는 없었다.
2020년에는 서울의 한 정신병원 보호실에서 신체 강박 상태로 있던 환자가 사망했다. 보호실 내부에는 CCTV가 설치돼 있지 않거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고, 강박 지침이 제대로 지켜졌는지 확인할 자료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응급 상황은 즉시 인지되지 못했고, 사망 이후에야 병원의 관리 체계 부실이 드러났다. 그러나 이 사건 역시 병원 전체에 대한 행정처분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2021년 경기도의 한 요양병원에서는 폭행이 아닌 방치가 환자를 죽음으로 몰았다. 장기 입원 중이던 노인 환자의 몸에는 심각한 욕창이 생겼고, 제대로 된 치료와 간호를 받지 못한 채 패혈증으로 악화돼 숨졌다. 법원은 병원의 관리·간호 소홀을 인정했지만, 행정적으로 병원을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은 사실상 없었다.
2021년부터 2022년까지 노인학대 사건이 발생한 요양병원은 92곳에 달했지만, 이들 병원 가운데 행정처분을 받은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오히려 총 66억 원 규모의 질지원금이 지급됐다. 학대와 사망은 병원의 ‘성적표’에 반영되지 않았다. (사진 = AI 생성)
열거된 사건들의 공통점은 같다. 사고가 발생하면 종사자 개인이 처벌받고, 병원은 책임을 벗어난다는 점. 병원 평가 등급은 유지되고, 건강보험 재정과 각종 지원금은 계속 지급된다.
실제 2021년부터 2022년까지 노인학대 사건이 발생한 요양병원은 92곳에 달했지만, 이들 병원 가운데 행정처분을 받은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오히려 총 66억 원 규모의 질지원금이 지급됐다. 학대와 사망은 병원의 ‘성적표’에 반영되지 않았다.
감사원은 올해 2월 발표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정기감사 보고서에서 이 같은 문제를 공식적으로 지적했다. 요양병원에서 학대나 중대한 인권침해가 발생하더라도 이를 행정처분이나 평가에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가 미비하다는 것이다. 관리·감독의 공백은 이미 수차례 확인됐지만, 제도는 그대로였다.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한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예지 의원(국민의힘)은 요양병원과 정신병원 등 요양기관 내에서 폭행과 방임, 인권침해가 발생할 경우 병원 자체에 행정처분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국민건강보험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법안은 요양기관 종사자나 관계자가 환자에게 폭행을 가하거나 상해를 입힌 경우, 성폭력이나 성희롱 등으로 성적 수치심을 준 경우, 또는 보호·치료·간호를 소홀히 해 환자의 건강이나 안전에 중대한 해를 끼친 경우 보건복지부 장관이 해당 요양기관에 업무정지 등 행정처분을 명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아울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요양급여 적정성 평가를 의무적으로 실시하도록 해, 요양기관에 대한 관리·감독 기능을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내용도 담겼다. 이는 학대나 사망 사고 이력이 병원 평가와 재정 지원에 직접 반영될 수 있는 제도적 통로를 처음으로 여는 조항이다.
김 의원은 “현행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이 장기요양기관에서 폭행이나 방임이 발생할 경우 지정 취소나 업무정지 등 강력한 처분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반면, 병원 형태의 요양기관에는 이런 명확한 제재 기준이 없다”면서 “같은 환자 보호 시설임에도 법의 기준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위법행위로 행정처분을 받은 사항이 병원 평가등급 하향이나 지원금 지급 제외로 연계되도록 관련 규정을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