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불청객 경조증, 들뜬 기분 뒤에 숨은 양극성장애의 함정 [조현식 원장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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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불청객 경조증, 들뜬 기분 뒤에 숨은 양극성장애의 함정 [조현식 원장 칼럼]

김국주 기자

기사입력 : 2026-02-12 12:39

[Hinews 하이뉴스] 만물이 소생하고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봄은 흔히 희망과 설렘의 계절로 통하지만, 양극성장애(조울증)를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봄은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주의의 계절’이기도 하다. 일조량이 급격히 늘어나고 활동량이 많아지는 환경적 변화가 뇌의 생체 리듬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어 감정의 진폭을 위로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실제로 의학계에서는 봄철을 조증이나 경조증 삽화가 가장 빈번해지는 시기로 꼽는다. 특히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경조증(Hypomania)’은 환자 스스로나 주변인들이 병적인 상태임을 인지하지 못한 채 일상적인 활력으로 오해하고 지나치기 쉬워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양극성장애는 단순히 기분이 좋고 나쁨을 반복하는 상태를 넘어, 비정상적으로 기분이 들뜨는 조증과 깊은 무력감에 빠지는 우울증이 교차하는 정신질환이다. 그중에서도 경조증은 조증보다는 증상이 가볍지만 평소의 상태와는 확연히 다른 고조된 기분이 지속되는 상태를 말한다. 봄의 화사한 기운과 맞물려 나타나는 경조증은 초기에는 그저 ‘컨디션이 좋아졌다’거나 ‘자신감이 생겼다’는 긍정적인 신호로 착각하기 쉽다. 잠을 적게 자도 피곤함을 느끼지 못하고, 평소보다 말이 많아지며, 새로운 일을 벌이고 싶은 의욕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고조된 에너지는 이성적인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충동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조현식 성모연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조현식 성모연정신건강의학과 원장

봄이 되면 일조량의 변화로 인해 뇌의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 분비가 활발해지는데, 기분 조절 기능이 취약한 양극성장애 환자들은 이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 에너지가 과잉 분출될 수 있다. 문제는 경조증이 사회적 기능에 심각한 타격을 주는 완전한 조증 단계에 이르지 않기 때문에, 환자 본인은 이를 병이 아닌 최상의 컨디션으로 오해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적절한 조절 없이 경조증 시기를 보내게 되면 이후 필연적으로 깊은 우울증 삽화가 찾아오는 ‘추락’의 과정을 겪게 된다.

그렇다면 봄철에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경조증의 신호에는 무엇이 있을까. 가장 대표적인 특징은 수면 욕구의 감소다. 평소보다 서너 시간 적게 잤음에도 불구하고 낮 동안 전혀 피곤하지 않고 에너지가 넘친다면 의심해 봐야 한다. 또한 사고의 속도가 빨라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목소리가 커지고 대화를 주도하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평소보다 지출이 과도하게 늘어나거나, 지나치게 낙관적인 태도로 무모한 계획을 세우는 것 역시 전형적인 증상 중 하나다. 본인은 유쾌하다고 느끼지만 주변 사람들로부터 “요즘 너무 들떠 보인다”거나 “예민하고 화를 잘 낸다”는 피드백을 자주 듣는다면 이는 단순한 기분 전환이 아닌 경조증 삽화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증상을 방치했을 때의 결과에 대해서도 조 원장은 우려를 표했다. 경조증은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롤러코스터에서 가장 높은 지점에 도달한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정점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려올 때의 경사는 급격해지며, 이는 곧 일상생활을 마비시키는 중증 우울증으로 이어진다. 특히 봄철의 들뜬 분위기 속에서 본인의 증상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약물 복용을 임의로 중단하거나 불규칙하게 복용할 경우 재발의 위험은 더욱 커진다. 따라서 양극성장애를 관리 중인 환자라면 봄철에 느껴지는 과도한 활력을 경계하고, 주기적인 상담을 통해 기분 도표를 점검하는 태도가 필수적이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많은 환자들이 봄에 느끼는 고양된 기분을 잃고 싶지 않아 치료를 멀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경조증은 ‘빌려온 에너지’와 같아서 반드시 나중에 우울감이라는 이자로 되갚게 된다. 만약 평소보다 생각이 너무 많아져 잠들기 어렵거나, 감정 조절이 마음대로 되지 않고 충동적인 욕구가 강해진다면 주저하지 말고 전문의를 찾아야 한다. 안정적인 기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봄을 즐길 수 있는 가장 건강한 방법이다.

결국 봄철 양극성장애 관리의 핵심은 ‘중용’에 있다. 지나친 활발함이 일상을 잠식하기 전, 자신의 내면을 세심히 들여다보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용기가 필요하다. 성모연정신건강의학과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환자들이 계절의 변화 속에서도 감정의 균형을 잃지 않도록 체계적인 약물치료와 인지행동치료를 병행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봄날의 따스함이 독이 아닌 득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 상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전문적인 시각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글 : 조현식 성모연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김국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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