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news 하이뉴스] 프랑스에서 시작된 청년 시위가 이탈리아와 벨기에, 스페인, 포르투갈을 거쳐 유럽 최대 경제대국 독일까지 번졌다. 독일 청년 단체 ‘Z세대가 일어선다(Gen Z steht auf)’는 2026년 10월 31일 핼러윈에 베를린, 쾰른 등 21개 도시에서 동시에 집회를 열겠다고 예고했다. 물가와 집값, 징병제 부활 움직임처럼 청년의 미래를 흔드는 문제가 소셜미디어를 타고 국경을 넘어 공동 행동으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시작은 학교 문제였다. 한 달여 전 프랑스 고등학생들이 교사 부족과 과밀 학급, 낡은 학교 시설에 항의하며 거리로 나왔다. 학내 문제에 머물던 시위는 물가와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불거진 생계비 위기와 만나 전국적인 저항으로 커졌다. 10월 17일 하루에만 최대 26만6000명이 프랑스 전역의 집회에 모였다. 학생 외에도 2018년 유류세 인상에 맞서 반정부 시위를 이끈 노란조끼 운동 세력, 노동조합, 농민, 운수·공공부문 노동자가 합류했다. 시위가 격해지자 파리 등 주요 도시에서 상점 약탈과 방화가 잇따랐고, 프랑스 당국은 10월 19일 군대를 투입하고 야간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독일 베를린 거리에서 시위대가 프랑스 학생들과의 연대를 내세우며 현수막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 이탈리아·벨기에·포르투갈 등 유럽 전체로 옮겨붙은 불길
불길은 이웃 나라로 옮겨붙었다. 이탈리아, 벨기에,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알바니아, 그리스 등에서 수만 명의 청년이 거리로 나왔다. 이탈리아 로마에서는 최대 노조인 이탈리아노동총연맹이 연 생계비·교육 시위에 10만명이 모였다. 같은 날 밤 밀라노와 토리노, 볼로냐에서는 시위대가 "프랑스처럼 행동하자", "전쟁이 아니라 학교에 돈을 써라"라고 외치며 경찰과 충돌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관 최소 141명이 다치고 미성년자를 포함한 160명이 체포됐다. 벨기에에서는 프랑스어권인 남부 왈로니아와 수도 브뤼셀의 학생들이 프랑스 학생들에 호응해 거리로 나왔다. 포르투갈 리스본과 포르투에서는 주거비 폭등에 항의하는 청년들이 광장에 텐트 수십 동을 치고 노숙 농성에 들어갔다. 네덜란드 학생들은 학비 대출에 더해 군비 증강도 문제 삼고 있다.
청년들이 거리로 나온 이유는 숫자로 드러난다. 유럽연합(EU) 통계를 인용한 스페인 일간 엘파이스에 따르면 8월 EU의 25세 미만 실업률은 15.4%로 전체 실업률 6.1%의 2.5배다. 2025년 기준 15~29세 가운데 빈곤이나 사회적 배제 위험에 놓인 비율은 24.2%로 전체 인구(20.9%)보다 3.3%포인트 높았다. 옥스퍼드대 정치학자 팀 블란다스는 유럽 고령층 비중이 2005년 17%에서 2025년 22%로 커지면서 정치권이 미래 투자보다 연금에 신경 쓴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흐름을 '제론토노믹스'(gerontonomics, 고령층 중심 경제)라고 불렀다. 여기에 안보 불안으로 재무장 기조가 강해지고 징병제를 되살리려는 움직임까지 나오자 청년층의 불안은 한층 커졌다. 에비 크라스 네덜란드 전국학생연합 위원장은 로이터에 "우리 중 누구도 전쟁터에서 싸우거나 의무 복무로 징집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크라스 위원장은 엘파이스에도 일부 청년이 40대까지 학자금 대출을 갚아야 한다며 11월 20일 대규모 학생 파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청년층의 불신은 정치 지형에서도 나타난다. 2027년 4월 대선을 앞둔 프랑스에서는 청년 유권자의 77%가 극우 국민연합(RN)이나 급진 좌파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를 지지한다. 정치권이 자신들을 대변하지 않는다고 답한 30세 미만 유권자는 프랑스 74%, 이탈리아 69%, 스페인 59%였다. 유럽학생연합(ESU)이 올해 3~5월 22개국에서 집계한 학생 시위는 54건으로, 직전 집계(13개국 31건)의 1.7배다. 레나이크 뒤몽 프랑스어권학생연맹(FEF) 회장은 "청년들은 무기력하지도, 정치에 무관심하지도 않다"며 "분노하고 있고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징병제 반대'까지 더한 독일, 21개 도시 집회 예고
독일 청년들은 프랑스에서 나온 교육·생활비 불만에 징병제 반대를 더했다. 독일은 2011년 징병제를 중단했지만 올해 1월 새 병역법을 시행하면서 18세 남성 모두에게 복무 의사를 묻는 설문 응답을 의무화했다. 2027년 7월부터는 2008년생 이후 남성이 징병 신체검사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 복무 자체는 아직 지원제이지만, 지원자가 모자라면 연방하원 의결로 의무 복무를 되살릴 수 있다.
‘Z세대가 일어선다' 공식 웹사이트에 10월 21일 기준 시위 참가를 희망한다고 등록한 사람은 1만명을 넘었다. 고등교육기관이 몰린 쾰른에서 1088명, 중규모 대학도시 빌레펠트에서 1059명이 참가 의사를 밝혔다. 독일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주도 뒤셀도르프에서는 핼러윈 집회와 별도로 '사회복지 축소 반대 및 프랑스와 연대' 집회가 신고됐다.
확산 통로는 소셜미디어다. 독일 일간 타게스슈피겔은 10월 21일 틱톡과 인스타그램에 시위를 독려하는 영상이 퍼지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 영상은 며칠 만에 조회수 100만회를 넘겼다. 조회수가 높은 한 영상은 "프랑스인들이 먼저 보여줬으니 우리가 따라 한다"며 징병제와 기름값, 집과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청년 현실, 연금 문제를 거론했다. 게시물 대부분은 평화 집회를 강조하지만, 인공지능(AI)으로 만든 이미지를 앞세워 프랑스 소요가 독일에서도 벌어지길 바라는 폭력 선동 글도 일부 돈다고 이 매체는 덧붙였다.
◇ 핼러윈과 겹친 집회, 폭력 사태 번질까 긴장하는 치안 당국
독일 치안 당국은 핼러윈 집회가 프랑스식 폭력 사태로 번질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번 시위를 조직한 단체 리더 아크람 젤로는 독일 매체에 "어떤 형태든 폭력과 분명히 거리를 둔다"며 평화 집회를 약속했다. 하지만 독일 연방내무부와 헌법수호청은 극좌 세력과 폭력배가 합법적인 학생 시위에 섞여 들어 폭동을 일으킬 위험을 크게 보고 있다. 10월 16일 베를린 프리드리히스하인의 한 김나지움(인문계 고등학교) 앞에서는 학교와 무관한 외부인 50여 명이 난입해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다 주민이 다치는 일이 이미 있었다. 플로리안 나트 베를린 경찰 대변인은 학생 시위라는 주제를 자기 이익에 악용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며 "정당한 시위인지 이용하려는 것인지 면밀히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날짜도 부담이다. 독일 주요 도시에서는 핼러윈 밤마다 청소년들이 폭죽을 터뜨리며 난동을 부리는 일이 되풀이돼 왔다. 유로뉴스에 따르면 베를린에서는 2024년 핼러윈 밤 청소년들이 바리케이드에 불을 지르고 경찰에 폭죽을 쏴 132명이 체포됐다. 슈테판 베 독일 경찰노조 베를린지부장은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에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급진 세력이 프랑스에서처럼 민주적 시위를 가로채 폭력을 부추기고 경찰을 시민의 적으로 몰아가는 구도를 만들지 못하도록 각별히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위 일정은 줄줄이 잡혀 있다. 독일의 10월 31일 집회에 이어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는 11월 11일 대규모 연대 행동이 예정돼 있고, 네덜란드에서는 11월 20일 학생 파업이 열린다. 이탈리아 노조도 같은 날 총파업을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