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news 하이뉴스] 하청 노동자가 산업현장에서 목숨을 잃었을 때 원청 기업의 경영진은 어디까지 책임져야 할까. 위험한 작업을 하청업체에 맡겼다는 이유만으로 원청 대표에게 모든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원청이 책임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 사고가 발생한 작업을 누가 통제했고, 위험을 줄일 권한과 자원을 누가 갖고 있었는지에 따라 책임의 범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이 사업장의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유해·위험 요인을 확인해 개선하도록 의무를 부과한다. 도급·용역·위탁 관계에서도 사업주나 법인이 시설과 장비, 장소 등을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책임이 있다면 법이 정한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부담할 수 있다.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보호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법 시행 이후에도 원청 경영진의 형사책임을 둘러싼 법정 공방은 계속되고 있다. 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만으로 경영책임자의 의무 위반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검찰은 경영책임자가 부담하는 구체적인 의무와 이를 이행하지 않은 사실을 입증해야 하고, 법원은 사고 당시의 작업 구조와 위험에 대한 인식, 안전관리 조치 등을 따져 판단한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문제는 원청과 하청의 업무가 분리돼 있어도 위험을 통제하는 권한은 한쪽에 집중될 수 있다는 점이다. 원청이 설비와 작업 공간을 관리하고 작업 일정과 공정을 결정하는데, 하청업체에는 현장 안전관리 책임만 맡겨지는 구조라면 사고를 막을 실질적인 권한과 법적 책임이 서로 어긋날 수 있다.
지난 2021년 2월 1일 강남구 테헤란로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기술지부 조합원들이 정부 여당과 발전5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은 연합뉴스 제공
김용균 사망사고가 남긴 질문
원청 책임 논란을 상징하는 사건은 2018년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한 고 김용균 씨 사망사고다. 당시 24세였던 김씨는 한국서부발전의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로, 석탄 운송용 컨베이어벨트 주변에서 작업하다 숨졌다. 위험한 설비를 점검하는 작업에 필요한 안전조치와 2인 1조 근무 원칙이 제대로 지켜졌는지를 놓고 사회적 비판이 일었다.
사고 이후 원청의 산업안전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졌고, 산업안전보건법 개정과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정작 김씨의 사망사고 재판에서 원청 대표의 형사책임은 인정되지 않았다. 대법원은 2023년 12월 업무상과실치사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병숙 전 한국서부발전 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당시 재판에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지 않았다. 법 시행 이전에 발생한 사고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판결을 중대재해처벌법 아래에서도 원청 대표가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다만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작업에 어느 정도 관여했는지, 대표이사에게 어떤 안전 의무를 인정할 수 있는지 입증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점은 드러났다.
법 시행 이후에도 원청 경영진의 책임이 모든 사건에서 동일하게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2026년 8월에는 SK 계열사인 SK멀티유틸리티의 대표가 하청 노동자 사망사고와 관련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확정받았다. 재판에서는 사고 원인과 경영진의 예방조치 의무가 쟁점이 됐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더라도 사고 발생 자체가 곧 경영책임자의 유죄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반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유죄가 선고된 사건 가운데 하청업체 노동자가 사망한 사건도 적지 않다. 법원이 원청 경영책임자의 의무 위반을 인정하는 경우도 있는 만큼, 원청이라는 지위만으로 책임을 일률적으로 부정하거나 인정할 수는 없다. 실제로 누가 위험을 통제했고, 필요한 안전조치를 마련할 권한이 있었으며, 법이 요구하는 의무를 이행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따지는 것이 중요하다.
계약서에 나눈 책임, 현장에서는 작동하나
산업현장에서 원청과 하청은 계약을 통해 업무 범위와 책임을 나눈다. 하지만 계약서에 안전관리 책임을 하청업체가 부담한다고 적었다고 해서 원청의 법적 의무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작업 장소와 설비를 누가 관리하는지, 작업 방식과 순서를 누가 결정하는지, 위험요인을 발견했을 때 누가 개선을 지시할 수 있는지 등 실제 운영 구조를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원청이 가동 중인 설비의 사용 여부를 결정하고 정비 작업의 일정을 통제한다면, 하청업체가 독자적으로 위험을 제거하기 어려운 상황이 생길 수 있다. 하청 노동자가 위험을 발견해도 설비를 멈추거나 작업 일정을 바꿀 권한이 없다면 안전수칙을 지키라는 지시만으로는 사고를 막기 어렵다.
문제는 안전관리 비용과 작업 시간도 계약 구조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하청업체가 낮은 단가와 촉박한 공기에 맞춰야 하는 상황에서 안전 인력과 설비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면 위험은 현장 노동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 원청이 하청업체에 안전수칙 준수와 교육을 요구하면서도 이를 위한 비용과 시간을 계약에 반영하지 않는다면, 안전관리 체계는 서류에만 남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정비·보수 작업은 생산공정이 진행되는 공간에서 이뤄지거나 여러 업체의 노동자가 동시에 투입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작업 순서와 설비 가동 상태, 위험구역에 대한 정보가 제대로 공유되지 않으면 한 업체의 실수가 다른 업체 노동자의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각 업체가 개별적으로 안전교육을 실시하더라도 현장 전체를 아우르는 작업계획과 위험 통제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예방 효과는 제한적이다.
원청과 하청의 책임을 구분하는 기준이 명확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원청이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설비와 작업환경의 위험을 하청업체가 독자적으로 해결하도록 요구해서는 안 된다. 동시에 하청업체도 작업자 교육과 보호구 지급, 작업 절차 준수 등 자신에게 부과된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책임을 한쪽에 몰아주는 방식이 아니라 각 주체가 실제로 통제할 수 있는 위험을 관리하도록 해야 한다.
처벌만큼 중요한 것은 위험을 없앨 권한
중대재해처벌법을 둘러싼 논쟁은 경영책임자의 처벌 수위에 집중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고를 줄이려면 유죄와 무죄를 가리는 사후 절차뿐 아니라 위험이 발견됐을 때 실제로 작업을 중단하고 개선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법적 책임을 강화하더라도 현장에서 위험을 제거할 권한과 비용이 확보되지 않으면 예방 효과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기업이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갖췄는지를 확인하는 방식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조직도와 매뉴얼, 교육 기록이 존재하는지에 그치지 않고 위험성 평가에서 확인된 문제가 실제로 개선됐는지, 작업자가 위험을 보고했을 때 조치가 이뤄졌는지, 원청과 하청이 작업 정보를 공유했는지를 살펴야 한다. 사고가 발생한 뒤 서류를 확인하는 것보다 사고 이전에 위험을 줄이는 조치가 작동했는지 확인하는 데 감독의 무게를 둬야 한다.
소규모 하청업체에 안전관리 의무를 요구하면서 이를 수행할 인력과 재원을 확보하기 어렵게 만드는 구조도 함께 살펴야 한다. 안전관리 비용을 계약 단계에서 반영하고, 위험도가 높은 작업에는 충분한 인력과 작업 시간을 보장하며, 위험을 발견한 노동자가 불이익을 걱정하지 않고 작업 중지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원청의 책임을 명확히 하는 것과 하청업체의 안전관리 역량을 높이는 일은 함께 추진돼야 한다.
법의 취지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자를 찾아 처벌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기업의 의사결정 단계에서부터 안전을 비용이나 생산 일정에 밀리는 항목으로 취급하지 않도록 만드는 데 있다. 원청과 하청 사이에 계약과 업무 분담이 존재하더라도, 그 구조가 위험을 방치하는 이유가 돼서는 안 된다.
김희란 변호사(법무법인 대운)는 하청 노동자 보호와 관련해 “하청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생명·신체의 안전을 온전히 보호하기엔 여전히 한계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원청의 책임을 둘러싼 법적 판단이 이어지는 가운데, 현장에서 위험을 통제할 수 있는 주체가 실질적인 예방조치를 이행하도록 만드는 일이 중대재해를 줄이는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