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주민 예술로 바라본 공존의 가치, 인류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향한 메시지

‘현대 커미션(Hyundai Commission)’은 현대자동차와 테이트 미술관이 2014년부터 이어온 협력 프로그램으로, 현대미술의 발전과 대중화를 위해 매년 테이트 모던의 대표 전시장인 터바인 홀(Turbine Hall)에서 새로운 작가의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 프로젝트다.
2015년 아브라함 크루즈비예가스(Abraham Cruzvillegas)를 시작으로, 2016년 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 2017년 수퍼플렉스(SUPERFLEX), 2018년 타니아 브루게라(Tania Bruguera), 2019년 카라 워커(Kara Walker), 2021년 아니카 이(Anicka Yi), 2022년 세실리아 비쿠냐(Cecilia Vicuña), 2023년 엘 아나추이(El Anatsui), 2024년 이미래(Mire Lee)에 이어 올해는 마렛 안네 사라(Máret Ánne Sara)가 열 번째 현대 커미션 작가로 참여한다.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러시아에 걸친 사프미(Sápmi)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미(Sámi) 선주민 출신인 사라는 순록 목축과 자연의 순환을 중심으로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탐구해온 작가다. 사미 공동체는 오랜 세월 자신들의 전통과 문화를 이어오며, 인간과 자연이 상호 의존하는 삶의 방식을 유지해왔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첫 영국 개인전으로, 사라 작가는 자신의 경험과 정체성을 바탕으로 사미 사회가 직면한 생태 문제를 예술적으로 조명한다. 전시 주제인 ‘모든 생명체의 연결과 상호 작용’을 통해 미래 세대를 위한 공존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전시 제목 ‘Goavve-Geabbil’은 두 작품 ‘Goavve-’(2025)와 ‘-Geabbil’(2025)의 결합어로, 동물과 자연의 경계를 허물며 선주민의 지혜와 실천이 현대사회 속에서 가지는 의미를 상징한다.
입구에 설치된 ‘Goavve-’(2025)는 순록 가죽을 전력 케이블로 엮어 만든 대형 조형물로, 28m 높이의 규모를 자랑한다. ‘Goavve’는 기후 변화로 인해 지면이 얼어붙어 동물들이 먹이를 찾지 못하는 현상을 뜻하는 사미어다. 작품 속 순록 가죽은 전통과 생명의 힘을, 케이블은 산업화와 개발로 인한 생태계 변화, 그리고 이주와 소멸의 역사를 상징한다.
작가는 이 작품을 순록에게 바치는 기념비로 표현하며, “기후 변화로 희생된 생명에 대한 애도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생명체 간의 상호 의존성과 공존의 가치를 환기한다.
터바인 홀 안쪽에 설치된 ‘-Geabbil’(2025)은 순록의 코 구조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미로형 설치물이다. 관객은 통로를 따라 이동하며 사미 문화와 정체성을 체험하게 된다. ‘Geabbil’은 유연성과 적응을 뜻하는 사미어로,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한다.
전시 공간 일부에는 순록 가죽과 뼈가 사용돼, 순록이 사미 공동체에서 생존과 생활의 근간을 이루는 존재임을 상징한다. 작가는 이를 통해 “어떠한 것도 낭비하지 않고 모든 생명과 자원을 존중하는 사미의 전통적 가치”를 표현했다.
향과 소리를 활용한 다감각적 연출도 이번 전시의 특징이다. 사라 작가는 사프미 지역의 향과 식물, 전통 음악 ‘요이크(Joik)’, 그리고 공동체 원로들의 구전 지식을 사운드로 담아 관람객이 사미 문화의 뿌리를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이번 전시는 테이트 모던 국제 미술 큐레이터 헬렌 오말리(Helen O’Malley)와 해나 고얼리즈키(Hannah Gorlizki)가 공동 기획했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공존의 가치를 주제로 한 이번 현대 커미션 전시가 인류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지혜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현대자동차는 테이트 미술관과의 파트너십을 2036년까지 연장했으며, ‘현대 커미션’ 외에도 ‘현대 테이트 리서치 센터: 트랜스내셔널’을 후원하고 있다.
2019년 설립된 현대 테이트 리서치 센터는 테이트 모던, 테이트 브리튼, 테이트 리버풀, 테이트 세인트 아이브스 등 네 개의 미술관이 국제적 관점에서 다양한 미술사를 연구·전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송소라 하이뉴스(Hinews)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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