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 여제’ 부상, 전방십자인대 위험과 복귀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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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 여제’ 부상, 전방십자인대 위험과 복귀 기준

임혜정 기자

기사입력 : 2026-02-12 09:00

[Hinews 하이뉴스] ‘스키 여제’ 린지 본은 전방십자인대 완전 파열 진단을 받고도 올림픽 출전을 강행했다. 그러나 출발 13초 만에 넘어져 헬기로 긴급 이송되는 장면은 전 세계에 생중계됐고, 관중석은 침묵에 잠겼다. 의료 현장에서 바라보면, 이는 단순한 개인의 의지 문제가 아니라 전방십자인대 파열 이후 치료 전략과 복귀 기준을 다시 묻게 하는 사례다.

이동원 건국대병원 스포츠 수술·통증 클리닉장은 “이번 사례는 결심이 아니라 조건의 문제다. 전방십자인대 파열 후 비수술적 복귀가 가능한지는 무릎이 실제로 기능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전방십자인대 파열, 통증 없어도 위험

전방십자인대는 허벅지뼈와 정강이뼈를 연결하며, 무릎이 앞뒤로 어긋나지 않도록 잡아주는 핵심 안정 구조물이다. 파열 직후에는 극심한 통증과 부종이 나타나지만, 2~3주 정도 지나면 통증과 부기가 상당 부분 가라앉는다. 이때 많은 환자가 “생각보다 안 아프네, 자연 치유된 건가?”라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통증이 줄어든 것은 단순히 급성 염증이 가라앉은 것이고, 무릎 구조적 불안정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전방십자인대 파열 후 복귀는 의지 아닌 객관적 기능과 과학적 평가로 결정해야 한다. (사진 제공=클립아트코리아)
전방십자인대 파열 후 복귀는 의지 아닌 객관적 기능과 과학적 평가로 결정해야 한다. (사진 제공=클립아트코리아)

평소 걷거나 계단을 오를 때는 주변 근육이 임시로 무릎을 잡아주므로 정상처럼 느껴지지만,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이나 점프 착지, 충돌 상황에서는 무릎이 속수무책으로 뒤틀리며 반월 연골판 손상, 관절연골 손상, 조기 퇴행성관절염 등 2차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동원 교수는 “린지 본의 비극은 이러한 시나리오가 극단적으로 나타난 사례”라고 말했다.

MRI에서 ‘완전 파열’로 보인다고 해서 모든 환자가 곧바로 수술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MRI는 구조를 보여주지만, 실제 움직임 속에서 무릎이 얼마나 안정적인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이동원 교수는 “진료실에서는 영상보다 먼저 무릎 동요, 관절 부종, 근력 회복 정도, 관절 가동 범위, 단일 다리 점프와 착지 동작, 신경근 제어 능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고 설명했다.

전방십자인대가 없어도 일상생활은 물론 고강도 스포츠까지 복귀하는 ‘코퍼(Coper, 적응자)’ 그룹이 존재한다. 반대로, 무릎이 자꾸 무너지는 느낌이 들거나 이전 활동 수준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논 코퍼(Non-Coper)’에게는 조기 수술적 치료가 필요하다. 이동원 교수는 “코퍼 여부는 결과가 아니라 조건으로 결정된다. 충분한 근력 회복, 신경근 조절 훈련, 객관적 기능 검사를 모두 통과한 경우에만 비수술적 접근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실제 대규모 코호트 연구에서는 6m 한 발 뜀뛰기, 일상생활 기능 점수(KOS-ADLS), 무릎 자신감 지수, 무릎 어긋남 횟수 등 네 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 코퍼로 분류된다.

◇안전한 스포츠 복귀, 과학적 기준 필수
린지 본이 위험했던 이유는 이미 여러 차례 무릎 손상과 인대 재건술을 겪은 상태였다는 점이다. 무릎 주변 근육과 신경계의 보상 능력이 상당 부분 소진된 상황에서, 시속 130km 활강을 수행하는 알파인 스키 종목 특성이 더해졌다. 고속 상태에서 단일 다리에 체중이 실리고, 깊지 않은 무릎 굴곡에서 회전 모멘트와 전방 전단력이 동시에 발생한다.

이동원 교수는 “보호대는 심리적 안정에는 도움이 되지만, 순간적인 회전력과 전단력을 막아주지는 못한다. 신경과 근육의 연결 고리가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복귀는 안전벨트 없이 고속 주행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이동원 건국대병원 스포츠 수술·통증 클리닉장
이동원 건국대병원 스포츠 수술·통증 클리닉장

비수술적 치료는 단순히 쉬는 선택이 아니다. 관절 부기 조절과 대퇴사두근 재활에서 시작해 신경근 훈련과 협동 훈련, 착지·방향 전환 동작 교정까지 이어진다. 연구에 따르면 초기에는 논 코퍼였던 환자들도 이러한 기능 회복 프로그램을 거치면 상당수가 기능적 코퍼로 전환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정도면 된다’라는 주관적 판단은 재부상의 지름길이다.

스포츠 복귀를 결정할 때는 객관적 수치로 판단해야 한다. 복귀 전 확인해야 할 기준은 다음과 같다. 대퇴사두근·햄스트링 근력은 건강한 다리 대비 90% 이상 회복, 한 발 점프 테스트(4종)는 양쪽 대비 90% 이상 + 무릎 안쪽 꺾임 없이 착지, 국제무릎기능평가설문지(IKDC) 주관적 무릎 평가 93점 이상, 심리적 준비도: 무릎에 대한 불안·두려움 없이 전력 동작 가능, 무릎 무너짐(Giving Way) 0회.

현재까지 근거에 따르면, 전방십자인대 단독 파열, 코퍼로 선별된 경우, 체계적인 재활 프로그램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는 환경과 의지가 있는 환자, 상대적으로 활동 수준이 낮거나 중년 이상인 환자가 비수술적 접근에 적합하다. 이동원 교수는 “린지 본 사례가 보여주듯, 전방십자인대 파열 직후 통증이 줄면 다 나은 것처럼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 순간이 가장 위험하다. MRI가 아니라 기능적 안정성에 대한 과학적 검증이 치료 방향과 복귀 시점을 결정한다”고 강조했다.

임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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